“산중불교를 대중불교로… 음악만한 게 없더군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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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째 山寺음악회 여는 봉화군 청량사 ‘28년 주지’ 지현 스님

《 경북 봉화군 명호면 청량산 자락의 청량사. 벼르고 별러야 가는 곳이다.
서울에서 청량산 도립공원까지 4시간, 다시 1시간 산행을 해야 다다를 수 있다.
그래도 한번 가면 꼭 다시 찾는다는 곳이 청량사다.
1986년 눈 크고 헌칠한 29세의 청년, 아니 스님이 이곳을 찾았다.
그의 입에서 한숨이 나왔다. 말이 절이지 쓰러져 가는 전각만 남은 폐사지에 가까웠다.
건강이 좋지 않은 은사 스님의 요양에 좋을 것 같아 주지로 부임했지만 너무 외져 은사를 다른 곳으로 모셔야 했다.
“임기 4년은 채워야 하는데”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     
      

청량사의 하늘과 바람, 볕을 벗 삼아 유유자적한 한때를 보내는 지현 스님(왼쪽). “산사음악회가 세월호 참사 이후 실의에 빠진 분들에게 희망을 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게 스님의 말이다. 산사음악회를 찾아 사찰 구석구석에 자리를 잡은 관객들. 청량사 제공
청량사의 하늘과 바람, 볕을 벗 삼아 유유자적한 한때를 보내는 지현 스님(왼쪽). “산사음악회가 세월호 참사 이후 실의에 빠진 분들에게 희망을 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게 스님의 말이다. 산사음악회를 찾아 사찰 구석구석에 자리를 잡은 관객들. 청량사 제공
○ 청량사와의 약속

일주일쯤 지났을까. 청량사 본사인 고운사 주지 근일 스님이 사탕 한 봉지를 들고 젊은 주지를 찾아왔다. “‘애기’ 같은 사람이 살 수 있을까”라며 걱정하던 노스님이다.

그로부터 28년. 애기 같던 지현 스님(57·조계종 총본산 성역 총도감)은 30년 가까이 청량사를 지키고 있다. 조계종 총무부장과 불교문화사업단장 등 굵직한 소임을 맡아 큰 사찰 주지를 맡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다 마다했다. 지현 스님은 “큰 사찰 주지 자리와는 인연도 없고, 원하지도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지금도 가끔 청량사 신도들에게 ‘청량사에 계속 있어도 되겠느냐’고 묻는다고 했다. 스님은 “청량사 사람들이 저를 싫다고 하지 않는 한 계속 지킬 것”이라고 했다.

○ 청량사의 약속

2001년 산사음악회를 처음으로 시작했다. 아름다운 산사를 지역문화공간으로 만들어 모든 사람이 함께 누리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음악회 얘기를 꺼냈더니 “스님, ‘택도 없어예’”라는 반응들이 나왔다. 누가 산골 오지에, 그것도 해발 650m까지 발품을 팔면서 오겠느냐. 할매들 몇십 명 모아 놓고 음악회 열 거냐….

스님은 소리꾼 장사익을 섭외한 뒤 “관객 한 명이 오더라도 음악회를 연다”고 둘이서 약속했다. 가수 한영애와 안치환도 합류했다. 첫 음악회 날, 평탄한 자리가 별로 없어 엉덩이 붙이기도 힘든 이곳에 3000명 넘게 몰렸다. 이후 봉화군에 수해가 났을 때와 신종플루가 유행했을 때를 빼곤 음악회는 어김없이 개최되고 있다.

왜 산사음악회였을까? “산중불교를 대중불교로, 받는 불교에서 주는 불교로 바뀌어야 한다는 게 제 소신입니다. 음악은 무엇보다 사람을 끄는 힘이 있어요.”

올해 음악회는 4일 오후 7시 청량사 경내에서 ‘꿈이 있어 아름다운 세상’이란 주제로 열린다. 가수 인순이 홍경민 마야, 팝페라 가수 정태옥 오윤석이 출연한다. 청량사 신도로 구성된 둥근소리 합창단도 소리를 보탠다.

○ 아이들과의 약속

스님은 가끔 아이들과 손가락 다짐을 나눈다. “너, 나중에 커서 여자(남자) 친구 생기면 꼭 스님에게 인사시켜야 한다.”

지현 스님은 청량사로 내려가자마자 어린이 포교에 나섰다. 스님은 산사에서 신도를 기다리는 대신 마을회관과 논두렁에서 ‘찾아가는 법회’를 열었다. 경운기 탄 신도들이 삼삼오오 모였고, 부모 손을 잡은 아이들도 따라왔다.

요즘은 일요일마다 청량사에서 여는 어린이 법회에 70여 명이 참석한다. “어린이들은 불교와 우리 농촌의 미래죠. 주지 초년병 시절 만난 아이들이 어른이 됐어요. 벌써 주례만 30쌍이나 했습니다. 허허.”

9세에 출가한 스님은 부처님과 무슨 약속을 했을까.

“젊었을 때는 그냥 바쁘게만 살았는데, 요즘은 ‘내가 잘 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사춘기’가 왔나 봅니다, 하하. 그러면 절도 한 번 더 하고 그래요. 나중에 죽을 때 ‘아까운 스님 돌아가셨네’ 하는 소리는 나와야 하는데….”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청량사#지현 스님#산사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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