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채로운 사운드… 가을의 감성 가득

  • 동아일보

에피톤 프로젝트 3집 ‘각자의 밤’

‘여자친구 음악.’

이건 ‘에피톤 프로젝트’를 잘 설명하는 말이다. (20, 30대) 여자친구가 좋아하고, 여자친구와 헤어진 다음에 더 즐겨 듣게 되는 감상적(感傷的)인 음악 말이다. 건반으로 연주되는 예쁘장하고 몽롱한 반복 악절을, 섬세하게 세공돼 미묘한 느낌을 주는 전자음이 장식하고, 소심하되 호소력 있는 목소리가 얹히는 방식. 단5도나 장7도의 화성 연쇄가 만드는 아련한 ‘에피톤 코드’는 반복됐고, 노랫말 사전엔 ‘나’ ‘너’ ‘우리’ ‘봄’ ‘기억’이 들어찼다.

에피톤의 전작들은 대규모 홍보 없이 2만 장 넘게 팔렸다. ‘인디 음악계 토이(유희열)’란 별칭을 얻은 그는 이승기의 앨범을 프로듀스하고 김완선, 2AM, 백아연에게 곡을 주며 주류 가요계 턱밑에 상륙했다.

작곡가 차세정(30)이 이끄는 이 1인 프로젝트가 16일 낸 3집 ‘각자의 밤’(사진)은 단번에 심장을 움켜쥐지 않는다. ‘선인장’ ‘이화동’(앨범 ‘유실물 보관소’·2010년)에 필적할 멜로디는 없다.

선율이 귀에 달라붙는 시간은 예민한 1집, 뭉툭했던 2집의 중간쯤 걸린다. 록밴드처럼 ‘쿵! 딱!…’ 투박하게 전진하는 드럼 리듬이 네온사인처럼 사각대던 에피톤 초기의 전자음 편곡을 밀쳐낸 앨범 전반부는 당황스럽다. 실제 악기의 비중과 부피를 전작(‘낯선 도시에서의 하루’·2012년)보다도 더 늘렸다. ‘친퀘테레’에서 재즈피아니스트 송영주, 플라멩코 기타리스트 박주원이 솔로를 주고받는 대목이 극단적 예다.

‘인디’라 부르기 민망한, 더 다채롭고 부유해진 편곡이 주는 효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환상곡’ ‘플레어’ ‘시월의 주말’의 리듬 반전, 관악기(트럼펫 트롬본)의 사용 같은 새 시도는 유연하다. 가장 돋보이는 노래는 조바꿈과 멜로트론 소리로 꿈같은 분위기를 극대화한 ‘플레어’다. 여성보컬 선우정아, 아진, 손주희도 제 몫을 한다. ‘나의 밤’ ‘미움’ ‘회전목마’가 보여준 친숙하되 비틀린 ‘에피톤식’ 감성은 인상적이다.

경력 초기에 감성적인 컴퓨터 음악의 상투성을 벗어나지 못했던 차세정을 돋보이게 한 건 아마추어리즘마저 장점으로 만든 섬세한 소리 세공 능력, 음악적 감수성이었다. 팬들은 그 빛나는 순간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 상관없다. 컴퓨터 음악가란 직함을 멀리 던진 차세정의 새 여정은 지켜볼 만하다. 두근두근 지수 ♥♥♥♡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에피톤 프로젝트#각자의 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