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글로벌 북 카페]소설 ‘1984’ 같은 감시사회… 주요 인물들은 모두 마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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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42개국 판매… 영화로도 제작되는 샐리 그린의 ‘하프 배드’

한국에선 청소년소설의 영향력이 그리 크지 않지만 영국에선 ‘잘 만든 청소년소설(‘Young Adult’의 약자인 YA로 부른다) 하나가 출판사 전체를 먹여 살린다’라는 우스갯말이 있을 정도로 그 파워가 거세다.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나 스테프니 메이어의 ‘트와일라잇’, 수잰 콜린스의 ‘헝거 게임’이 모두 YA였음을 상기해 보라.

영국의 펭귄 출판사는 지난해 3월 이탈리아 볼로냐 도서전 기간에 전직 회계사였던 샐리 그린(사진)의 첫 작품 ‘하프 배드(Half Bad)’의 콘셉트만 보고 과감히 100만 파운드(약 17억 원)의 선인세를 걸고 3부작의 저작권을 사들였다. 당시 출판관계지는 ‘출판계의 신데렐라 스토리’로 보도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1년이 지난 현재 이 책의 저작권은 전 세계 42개국에 계약됐고, 21세기폭스사가 영화화를 결정했다.

소설의 배경은 인간과 마녀족(witch)이 공존하는 현대의 영국. 마녀족은 선한 흰 마녀족과 사악한 검은 마녀족으로 나뉜다. 흰 마녀족은 검은 마녀족이 흑마법을 써서 세상을 어지럽히고, 흰 마녀족을 없애려 한다며 검은 마녀족의 준동을 감시한다. 주인공인 열여섯 살 소년 네이선은 검은 마녀족 중 가장 힘이 센 마커스가 겁탈한 흰 마녀에게서 태어난 혼혈아. 하프 배드는 검은 마녀족과 흰 마녀족의 혼혈인 네이선을 지칭한다. 네이선의 어머니는 마커스에게 겁탈당한 수치심과 그에게 남편마저 살해당한 괴로움을 참지 못하고 자살한다.

마녀족은 17세가 되면 부모로부터 한 가지씩 재능을 물려받는데, 재능을 물려받지 못하면 죽는다. 흰 마녀 협회는 마커스가 아들에게 재능을 물려주기 위해 언젠가 나타나리라 예상하고, 네이선을 엄중히 감시한다. 그들의 계획은 마커스가 나타났을 때 마커스와 네이선, 둘 다 죽이는 것.

가정과 학교에서 ‘왕따’인 네이선은 그에게 저주받은 운명을 안겨준 생부 마커스를 증오한다. 17세 생일을 앞둔 그는 몸속에 위치 추적 장치까지 삽입되고 가족과 격리된 채 24시간 감시를 받는다. 네이선은 이런 상황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몇몇 흰 마녀족의 양심고백을 듣게 된다. 사실 검은 마녀족이 극악무도한 존재라는 것은 조작된 것이며 마커스와 네이선의 어머니는 서로 사랑했던 사이란 것이다. 혼란에 빠진 네이선 앞에 마커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펭귄사의 편집주간 벤 홀스렌은 “이 소설은 ‘마녀판 1984’이다. 주요 인물들이 마녀라는 점을 제외하면 사실상 소설은 현대의 영국을 그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는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미래 전체주의 체제의 섬뜩한 모습을 그렸다. ‘하프 배드’ 역시 자의적 목적으로 개인을 감시하고 자유를 제한하는 사회체제와 그 체제가 심어준 왜곡된 정보를 진실로 믿고 살아가는 마녀들이 실감나게 묘사돼 있다. 과연 하프 배드가 YA의 한계를 뛰어넘어 세계적 히트작이 된 트와일라잇과 헝거 게임의 계보를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런던=안주현 통신원 jenniifera@usborne.co.uk
#하프 배드#샐리 그린#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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