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올가을 이 남자와 데이트 어때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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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 만점 연애 0점의 괴짜 과학자, 좌충우돌 반쪽 찾기… 로맨틱 소설
◇로지 프로젝트/그레임 심시언 지음·송경아 옮김/410쪽·1만3000원/까멜레옹

평생의 반려자란 완벽한 상태로 나를 ‘찾아와 주는’ 존재가 아니라 상대에 맞춰 나를 변화시켜 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게티 이미지
평생의 반려자란 완벽한 상태로 나를 ‘찾아와 주는’ 존재가 아니라 상대에 맞춰 나를 변화시켜 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게티 이미지
폴 오스터의 소설 ‘달의 궁전’에는 좋은 연애 상대를 야구의 캐치볼을 잘하는 사람에 빗대 설명하는 대목이 나온다. 훌륭한 캐치볼 상대는 설령 내가 던진 공이 조금 빗나가도 요령 있게 잡아주고, 자신이 던질 차례에는 내가 쉽게 잡게끔 내 글러브 안에 쏙 들어오는 공을 던져준다. 이런 상대와 함께라면 비록 지금은 내가 서툴러도 더 나은 공을 던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남녀 간의 연애에서 상대를 배려하는 유연함이 얼마나 중요한 덕목인지 명쾌하게 보여주는 비유다.

여기 캐치볼 상대로 0점짜리 남자가 있다. ‘스펙’만으로는 어디 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다. 이름은 돈 틸먼. 유전학을 전공한 대학교수이니 머리 좋은 것은 설명이 필요 없고 틈틈이 격투기로 다진 다부진 몸은 몸짱 수준이다. 서른아홉이란 나이와 ‘모태 솔로’라는 사실이 마음에 걸리지만 공부하는 사람들이 혼기를 놓치는 일이야 다반사이니 결격 사유까지는 아니다. 술 마시기를 즐기되 건강을 생각해 절제할 줄 알고 담배는 일절 손도 안 댄다. 게다가 바닷가재 요리 정도는 눈 감고도 하는 이 남자, 누가 채가기 전에 얼른 내 남자로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치명적 단점이 있으니 너무도 이성적인 원칙주의자라는 것. 살구 맛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는 소개팅 상대에게 “사람의 혀는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만나면 냉각돼 맛을 구분할 수 없으니 아무 맛 아이스크림이나 먹어도 된다”며 과학 지식을 자랑하는 건 애교 수준이다. 모든 여성을 나이와 체질량지수로 분류해 면전에서 ‘뚱뚱하다’고 면박을 주지를 않나, 분 단위로 돌아가는 자기 스케줄이 조금만 헝클어져도 얼굴에 못마땅한 표정을 못 감춘다. 자신의 두뇌 구조가 연애에 적합하지 않게 ‘배선’돼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다.

그런데 평생 짝 없는 고무신처럼 살 것 같은 이 남자. 자신을 바꿔볼 생각은 않고 ‘세상 어딘가에 나에게 딱 맞는 여자가 있을 것’이라며 수많은 여성에게 설문지를 돌려 완벽한 아내 후보자를 추려내겠다는 ‘아내 프로젝트’(맙소사!)를 시작한다. 장장 16쪽에 달하는 설문지 항목을 훑어보자. 키, 몸무게, 체질량지수, 지능지수(IQ) 기입은 기본, 술과 담배는 일절 해서는 안 되고 화장이나 장신구 착용도 금지다. 약속시간은 늦지도 이르지도 않게 딱 맞춰야 하고, 고기를 먹는 자기 식성을 고려해 채식주의자도 탈락이다. 이쯤 되면 톱스타 여배우와의 결혼이 훨씬 쉬워 보인다. 이 남자 정말 결혼할 생각이 있는 걸까?

아내 프로젝트에 인생 다걸기를 하던 그는 동료 교수인 진이 소개해 준 게이바에서 일하는 여성 로지와의 만남을 통해 극적인 변화를 맞게 된다. 아내 프로젝트의 설문지 기준으로는 미달임에 분명하지만, 생의 매 순간 진실하고 자연스러운 감정에 스스로를 내맡길 줄 아는 로지의 모습에서 설명하기 힘든 매력을 느낀 돈은 자신의 유전학적 지식을 활용해 로지의 친아버지를 찾아주는 ‘아버지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이 책의 재미는 주인공 돈이 로지와 함께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랑비에 옷 젖듯 조금씩 보여주는 변화에 기인한다. 하늘처럼 떠받들던 스케줄과 원칙들에 너그러워지고, 일상을 헝클어 놓는 로지와의 만남을 ‘비이성적으로’ 즐기는 자신에게 어리둥절해하고, 이제 그녀를 위해 자신을 변화시키는 노력을 하는 그의 모습은 사랑에 빠진 우리의 모습을 비추는 자화상이다. 점점 가까워지던 이 둘의 관계는 아내 프로젝트의 설문지 조건을 100% 만족하는 여성 비앙카가 등장하면서 균열의 조짐이 나타난다.

호주 출신으로 컴퓨터시스템 컨설팅 회사를 경영한다는 작가는 대학에서 영화 시나리오 강의를 들으며 이 소설의 뼈대가 되는 시나리오를 썼다. 시나리오가 원작인 소설답게 읽는 내내 머릿속에는 지적이고 유쾌한 로맨틱 코미디 한 편이 상영되는 기분이다. 괴짜 영혼의 내 반쪽 찾기를 그렸다는 점에서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나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여러 장면이 떠오르는 대목도 많다.

연애도 결혼도 결국 ‘지금 그대로의 너’를 사랑하기 위해 나를 변화시켜 가는 긴 여정이다. 이를 외면한 채 내게 꼭 맞는 완벽한 상대가 다가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독자들에게 꼭 일독을 권한다. 지난달 미국에서 출간되자마자 인터넷서점 아마존이 선정하는 ‘이달의 최고 책’에 뽑혔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로지 프로젝트#로맨틱 소설#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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