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을 때 도전하고 싶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4일 03시 00분


11월 개막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 주역 탤런트 류수영

“잊혀지는 건 순식간이다. 인기를 얻으려 애쓰는 건 좋은 대본에 대한 갈망 때문이다.” 데뷔 이후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류수영은 “군대 다시 가서 얻은 체력으로 물 들어왔을 때 열심히 노 젓겠다”고 말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잊혀지는 건 순식간이다. 인기를 얻으려 애쓰는 건 좋은 대본에 대한 갈망 때문이다.” 데뷔 이후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류수영은 “군대 다시 가서 얻은 체력으로 물 들어왔을 때 열심히 노 젓겠다”고 말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우수와 냉소를 머금은 스타는 많다. 밝고 선한 인상으로 사랑받은 남자 연예인이 최근 누가 있었던가. TV 예능프로그램 ‘일밤-진짜 사나이’에서 ‘긍정왕’ 캐릭터로 인기를 얻은 류수영(34)은 뜻밖의 좋은 패를 받아든 배우다. 그는 다음 달 1일 개막하는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에서 주인공 도박꾼 스카이 역으로 첫 무대 연기에 도전한다.

뜻밖의 ‘베팅’을 한 그에게 물었다. 데뷔 14년 만에 처음 얻은 큰 인기를 TV와 영화에 쏟아붓지 않은 선택, 후회하지 않겠느냐고.

“(명지대) 경영학과 출신이다. 전통 무예 동아리에서 저녁마다 불 뿜고 바위 깨고 쌍절곤 휘두르다 KBS ‘캠퍼스 영상가요’에 불려나가 1등을 먹었다. 그걸 본 SBS 최영인 PD가 ‘잘생긴 학생, 부산 가서 곰장어 먹고 오면 백화점 상품권 줄게’ 하고 불러서 ‘최고의 밥상’에 나갔고, 또 그걸 본 송창의 PD의 파일럿 드라마에 출연했다. 아르바이트로 방송에 데뷔해 직업을 얻었다. 연기의 뿌리, 무대에 대한 갈망은 당연히 언제나 품고 있었다.”

―소속사에서 걱정할 텐데.

“물론이다. 분위기 좋을 때 확 치고 나가라는 조언도 들었다. 2005년 출연한 드라마 ‘열여덟 스물아홉’에서 잘나가던 배우가 인기를 잃은 뒤 연극 무대에 서는 장면이 있었다. 그때 생각했다. 무대가 도피처가 아니란 걸 보여 주고 싶다고. 사랑받을 때 도전하고 싶었다. 물론 군인으로 사랑받고 있지만. 하하.”

―배우가 원래 꿈은 아니었나 보다.

“어릴 때부터 손으로 뭐든 잘 만들었다. 사춘기 때 집에 가다 울적하면 찰흙 하나 사서 뭐든 빚었다. 그러면 스트레스가 풀렸다. 뒤늦게 미대에 가려 했는데 아그리파를 그리면 줄리안이 돼 버려 포기했다. 대학 때 소속사 제의 받고 3개월 고민했다. 미대도 못 갔고, 졸업해 취직할 자신도 없었다. 아버지께 3년만 열심히 해보겠다 말씀드렸다. 2000년 레지던트 2번 역 맡은 ‘깁스 가족’이 첫 드라마다.”

―2년 반 만에 신인상 타고 3년째에 조연상을 받았다.

“배움 없이 현장에서 시작한 탓에 허점투성이다. 기술이 없으니 날것을 끄집어내 쓰는 수밖에 없었다. 무대 연기는 걷는 법부터 다르다. 드라마는 허리 위 동작, 표정, 눈빛으로 많은 표현을 할 수 있다. 무대는 늘 전신 샷이다. 카메라 위치 생각하면서 움직이는 연기에는 익숙하지만 온 사방에 앉은 관객에게 균일한 감흥을 줄 동작에는 초보다. 잠도 잘 안 온다.”

―무대 경험은 전혀 없었나.

“경찰 연극단으로 군 복무하면서 처음 무대에 섰다. 시골 장애인복지관 돌아다니며 공연했다. 그곳 관객들의 솔직한 반응을 접하고 함께 있던 (조)승우 조언 들으면서 배운 게 적잖다. 드라마 촬영장에서는 내가 뭔가 질문하면 사람들이 불안해한다. 뮤지컬에서는 누구에게나 맘 놓고 물어볼 수 있다. 같은 역을 연기하는 배우들 보면서 조언도 주고받는다. 드라마에서 경험할 수 없는 큰 공부다.”

―전에는 왜 지금만큼의 인기를 얻지 못했을까.

“말런 브랜도가 주연한 1955년 영화 ‘아가씨와 건달들’을 3번 봤다. 이 일을 잘해 나가려면 결국 얼마나 자기만의 매력을 드러내느냐가 관건이란 걸 깨달았다. 나는 운동하듯 너무 순진하게 덤볐다.”

―건실한 청년 이미지로 얻은 인기, 버겁지 않나.

“전에는 목욕탕에서 누군가 아래위를 훑어보면 슬쩍 인상 쓰면서 분위기를 잡았다. 이제는 무조건 밝게 인사한다. 산에 가면 어르신들이 수고 많다며 안아 주신다. 내가 이런 이야기 들을 자격이 있나. 물음표가 500개였다. 그런데 점점 익숙해졌다. 주변의 시선이 사람의 인격을 만든다는 걸 실감한다. 뭐든 꼬아 보지 않으려 노력하고 욱하는 성질 두 박자 정도 늦춘다. 그러다 보니 바닥에 깔려 있던 인격이 조금은 채워지는 기분이다. 고마운 일 아닌가.”

: : i : :

2014년 1월 5일까지 서울 강남구 BBC씨어터. 이지나 연출, 김다현 송원근 김지우 이하늬 박준규 이율 출연. 5만∼13만 원. 1588-0688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뮤지컬#아가씨와 건달들#류수영#진짜 사나이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