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뒷談]제작비 절반 수출-PPL로 충당… 한류 거품 꺼지자 ‘쪽박’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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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학PD 죽음으로 몬 기형적 드라마 외주제작 구조

김종학 PD가 연출한 TV 드라마 작품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MBC ‘수사반장’과 ‘여명의 눈동자’, SBS ‘모래시계’, MBC ‘태왕사신기’. 카메라 모니터에 잡힌 작품은 SBS ‘신의’. 동아일보DB
김종학 PD가 연출한 TV 드라마 작품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MBC ‘수사반장’과 ‘여명의 눈동자’, SBS ‘모래시계’, MBC ‘태왕사신기’. 카메라 모니터에 잡힌 작품은 SBS ‘신의’. 동아일보DB
김종학 PD(62)의 죽음 뒤에는 SBS 드라마 ‘신의’(2012년)가 있다. ‘신의’ 제작 후 김 PD는 여러 송사에 휘말렸다. 드라마 종영 후 배우와 스태프는 출연료와 인건비를 받지 못했다. 주연 배우인 김희선은 1억3600만 원의 잔금을 못 받아 소송을 내 승소했다. ‘모래시계’로 대표되는 명콤비 김 PD와 송지나 작가의 재결합에 한류스타 김희선 이민호의 출연으로 방송 전부터 화제를 모았던 ‘신의’가 출연료 미지급 논란을 빚자 많은 이가 의아해했다. ‘대체 얼마나 망했기에….’

사실 ‘신의’는 성과로만 보면 망한 드라마가 아니다. 이 작품은 당시 10% 안팎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방송사 관계자는 “요즘은 드라마가 15%를 넘으면 잘됐다고 본다. 10% 시청률을 실패라고 할 순 없다”고 말했다. ‘신의’의 판권은 일본과 동남아 여러 국가에 수출돼 40억 원이 넘는 수익을 올렸다. 간접광고(PPL) 협찬 수입도 적지 않았다.

문제는 이 같은 수익에도 불구하고 제작비가 지나치게 높았다는 점이다. 24부작인 ‘신의’의 회당 제작비는 5억5000만 원으로 총제작비가 130억 원이 넘는다. 지상파 미니시리즈의 회당 제작비는 3억∼5억 원 수준이다. SBS는 방영권을 제외한 나머지 저작권을 넘겨주는 대가로 제작사에 실제작비의 절반이 안 되는 58억 원(회당 2억4000만 원)을 지불했다. 나머지는 김 PD 측이 판권 수출과 PPL 등으로 조달하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김 PD는 MBC ‘태왕사신기’ 때도 어려움을 겪었다. ‘태왕사신기’는 2008년 방영 당시 30%대 시청률을 기록했고 해외 판권 수입을 포함해 400억 원을 벌어들였다.

그러나 이 작품의 실제작비는 500억 원이 넘었고 당시 김 PD가 대표로 있던 제작사인 김종학프로덕션은 100억 원이 넘는 손해를 입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따 세운 회사의 지분을 내놓고 회사를 떠났다.

‘태왕사신기’ 후유증은 오래갔다. 지난해 4월에도 ‘태왕사신기’ 드라마 세트장 제작비와 대여금 등 2억6500만 원을 갚지 않아 피소됐다. 방송가에선 그가 새 드라마의 제작비를 과거 작품에서 진 빚을 갚는 데 ‘돌려막기’ 식으로 이용했으며 “‘태왕사신기’에서 곪기 시작한 문제가 ‘신의’에서 터졌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성공한 드라마 PD조차 끊임없이 자금 압박에 시달려야 하는 시스템은 모순적이다. 그러나 한국 방송가에서는 이 같은 일이 비일비재하다. 김 PD의 죽음을 계기로 현재 국내 드라마 제작 시스템의 문제를 짚어 봤다.

제작비 거품

“현재 국내 드라마 제작비는 기형적이다. 산업 규모에 비해 제작비 거품이 많이 끼었고, 그중 대부분이 작가와 배우에게 지불된다. 드라마가 성공해도 제작자는 쪽박을 차는 이유다.”(성준기 동아방송예술대 콘텐츠학과 교수)

천정부지로 오른 제작비는 드라마 제작 생태계를 위협하는 요소로 꼽힌다. 2000년대 초반까지 1억 원이 채 되지 않았던 지상파 미니시리즈 회당 제작비는 10년 사이 3∼5배로 뛰었다.

높은 제작비는 외주 제작사에 치명적이다. 현재의 선(先)편성, 후(後)제작 시스템에서는 방송사가 책정해 놓은 제작비에 제작사가 맞춰야 하는 게 일반적이다. 제작비가 부족하더라도 나머지 비용은 제작사가 PPL, 해외 판권 판매 등을 통해 충당해야 한다. 그러나 신생 업체나 마케팅 역량이 부족한 제작사의 경우 이조차 쉽지 않다.

제작비는 2003년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엄청난 수익을 거둔 이후 급등했다. 한류시장을 바라보고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제작사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배우의 출연료와 작가 원고료가 뛰어올랐기 때문이다.

현재 출연료와 작가원고료는 드라마 실제작비의 60∼70%를 차지한다. 미국과 일본은 25∼30% 선으로 한국의 절반 수준이다. A급 스타는 미니시리즈 회당 수천만 원의 출연료를 받는다. ‘태왕사신기’에서 배용준은 회당 2억5000만 원, ‘아이리스1’(2009년)의 이병헌은 1억 원, ‘대물’(2010년)에서 고현정이 5500만 원, ‘도망자 Plan.B’(2010년)의 비(정지훈)는 5000만 원을 받았다.

최근에는 특히 작가들의 고료가 많이 올랐다. 김수현은 회당 5000만 원을 넘게 받는다. 김은숙, 문영남, 박상연, 김영현 같은 A급 작가들의 고료도 3000만∼5000만 원이다. A급 스타 한두 명에 A급 작가를 쓸 경우 이것만으로도 회당 1억∼2억 원의 제작비가 필요한 셈이다.

한 드라마 외주제작사 대표는 “과거에는 방송사가 지급하는 금액으로 제작비의 80∼90%를 충당했지만 현재는 출연료를 채우기도 버겁다”고 전했다.

드라마 편성권을 쥐고 있는 방송사가 스타 배우와 작가 위주로 편성을 내주는 것도 이들의 몸값을 부풀리고 있다. 성준기 교수는 “선진국은 배우가 지나친 출연료를 요구하면 방송국 차원에서 거부한다. 반면 한국 방송사들은 외주제작사를 선정할 때 작품의 의도나 제작사의 제작 능력을 검토하기보다는 특정 스타를 끼고 있는 작품을 편성하고, 심지어 제작비 보전도 없이 제작사에 무리한 스타급 캐스팅을 요구한다”고 지적했다.

후진적 경영

故김종학 PD
故김종학 PD
“냉정하게 말하면 연출자가 제작을 맡았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연출자로서 한없이 욕심을 부리고 싶기 마련이다.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이 불가능하다. 과거의 불도저 방식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지상파 방송국 프로듀서 A 씨)

김종학 PD는 국내 프리랜서 PD 1호이자 외주제작사 1세대로 꼽힌다. 그는 MBC ‘여명의 눈동자’(1991년) 방영 이후인 1995년 방송사에서 나와 독립 제작사인 제이콤을 세웠다.

1990년대 초는 외주 제작 시스템이 도입된 시기다. 1993년 외주 제작 편성 비율은 3%대(현재 30∼40%대, 드라마는 70∼80%대). 1200개가 넘는 외주제작사가 난립하는 현재와 달리 당시는 김 PD처럼 지상파 방송국 출신 스타 PD가 운영하는 소수의 외주제작사들이 드라마 제작을 독점했다.

김 PD는 제작사를 세운 이후에도 꾸준히 연출가로서 작품 활동을 했다. 그는 송지나 작가와 함께 ‘모래시계’(1995년)로 히트를 쳤지만 차기작 ‘백야 3.98’(1998년)에서는 실패를 맛봤다. 김 PD는 1999년 자신의 이름을 건 ‘김종학 프로덕션’을 세우고 ‘고스트’(1999년) ‘대망’(2000년) 등을 내놨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이어 ‘태왕사신기’로 재기를 시도했지만 역시 사업 면에서는 실패했다.

‘신의’의 제작사는 ‘신의 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문전사)’다. 신의 문전사의 대표는 전모 씨지만 김 PD가 실질적인 제작을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전사는 일반 제작사가 아닌 특수목적 법인으로 특정 프로젝트의 시작과 함께 출범해 프로젝트가 끝나면 해산되는 페이퍼컴퍼니다. KBS ‘각시탈’ ‘직장의 신’ ‘추노’, SBS ‘시크릿가든’ ‘보스를 지켜라’ 등 최근 인기를 끈 드라마 중에는 이처럼 작품 이름을 앞세운 문전사 제작 드라마가 많다.

문전사는 신생 업체라도 좋은 콘텐츠를 만들 가능성이 있으면 투자를 받기 쉽다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문전사에 참여한 제작사가 사업 관리를 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신의 문전사’처럼 부실한 제작사가 큰 프로젝트에 참여해 문제를 일으킬 소지도 있다.

문제갑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정책의장은 “문전사는 시장 진입은 쉽지만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책임이 명확하지 않을 때가 많다”며 “방송사가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문전사를 비롯한 외주 제작 시스템을 악용하는 탓에 부실한 제작사가 난립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흔들리는 일본 한류


“일반적으로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는 드라마 저작권은 대부분은 방송사 몫이었다. 보통 해외 판권 정도만 외주제작사와 방송사가 나누는 구조인데 최근에는 일본 시장에서의 한류가 예전 같지 않다. 위기론이 나오는 이유다.”(한국콘텐츠진흥원 B 씨)

제작사 증가의 원인이 된 한류가 부메랑이 되어 제작사의 발등을 찍고 있다. 특히 한류 드라마 붐의 중심축이던 일본 시장의 침체는 방송사와 제작사 모두에 큰 타격이다. 한류 관련 DVD 시장이 급격히 축소되고, 높은 제작비로 인해 드라마 판권 가격이 오른 데다 엔화 약세 현상이 지속되자 일본 시장에서도 한국 드라마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과거 한류 스타가 등장한 DVD가 일본에서 10만 장 가까이 팔린 것과 달리 지난해 장근석이 출연한 ‘사랑비’의 DVD는 1만 장 판매에 그쳤다”고 전했다.

최근 한일 관계가 약화되면서 신규 팬 유입도 줄었다. 지난해 8월에는 일본 시청자들이 후지TV의 한류 방송 편성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도 벌였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3, 4년 안에 거품 소멸로 공멸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송병준 그룹 에이트 대표는 “일본 시장이 무너질 경우 내수 시장이라도 탄탄해야 하는데 현재 드라마 제작비 구조는 국내 시장에 맞지 않게 과하다. 그 리스크를 제작사가 고스란히 안고 있다”고 우려했다.

해결책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제작비를 현실화할 수 있도록 배우나 작가 몸값에 대한 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또 후진적 제작 구조를 개선하고 부실한 외주제작사를 걸러 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나 업계의 자정 작용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백승혁 한국콘텐츠진흥원 박사는 “해외에서는 배우의 출연료나 제작비 내용이 공개되고 이에 대한 여론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지만 한국에서는 제작비와 관련해 공개되는 내용이 거의 없다”면서 “제작비 내용 공개와 함께 표준제작비 산정으로 제작비를 정상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방송프로그램·방송출연 표준계약서안’ 제정 작업을 시작했다. 표준계약서에는 방송사와 제작사 간 합리적인 수익 분배와 제작비 지급, 분쟁 조정 절차 등이 포함될 예정이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김종학PD#제작비#외주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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