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상… 민폐여행… 내맘대로 독립잡지 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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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G 상상마당서 기획전

서울 마포구 서교동 KT&G 상상마당 2층 갤러리를 찾은 관람객이 전시된 독립잡지를 살펴보고 있다. 전시는 다음 달 11일까지 열린다. KT&G 상상마당 제공
서울 마포구 서교동 KT&G 상상마당 2층 갤러리를 찾은 관람객이 전시된 독립잡지를 살펴보고 있다. 전시는 다음 달 11일까지 열린다. KT&G 상상마당 제공
궁상, 잉여, 옛 여자친구, 병맛….

요즘 대한민국 청춘의 우울하거나 발랄한 삶을 상징하는 이 키워드들을 다룬 잡지가 많다. 어린이 손바닥 크기부터 펼치면 벽걸이 달력만 한 것까지 판형도 다양하다. 디자인도 각양각색이어서 심지어 매번 제호만 남기고 디자인을 새로 바꾸는 잡지도 있다.

다음 달 11일까지 서울 마포구 서교동 KT&G 상상마당에서 열리는 ‘제4회 KT&G 상상마당 어바웃북스’에서 만날 수 있는 180여 종의 독립잡지다. 한 여행 잡지의 책장을 펼쳤더니 현지에서 공짜 밥 먹는 법을 소개하는 ‘민폐여행 tip’이 실려 있다. 책장을 더 넘기니 밀양 송전탑 현장 르포도 소개해 놓았다. 이런 주제를 다룬 잡지를 과연 누가 볼까 싶지만 대부분 5000∼1만5000원의 유료인데도 많게는 1000부가 나가는 잡지도 있다.

독립잡지를 글자 그대로 정의하면 광고주의 입김에서 벗어나 내용의 독립을 추구하는 잡지. 하지만 현장에선 홀로 또는 몇 명이서 저마다 좋아하는 주제를 파고들어 보통 매호 100∼1000부를 정기적으로 찍어내는 잡지면 모두 독립잡지라고 부른다.

‘제4회 KT&G 상상마당 어바웃북스’에 소개된 독립잡지들.
‘제4회 KT&G 상상마당 어바웃북스’에 소개된 독립잡지들.
2000년대 이후 약 500종이 등장한 것으로 추산되는 독립잡지의 성장세가 주목받고 있다. 독립잡지를 유통하는 전문서점이 전국 20여 곳에 이른다. 대형 서점, 온라인 서점에도 일부 독립잡지가 입점했다. 공짜로 독립잡지를 홍보해주고 판매도 돕는 ‘독립잡지유통조합’도 활약 중이다. 문화예술 전반을 다루는 격월간 ‘싱클레어’는 14년째 장수하고 있다.

독립잡지의 경쟁력은 다양한 주제, 세련되고 파격적인 편집, 사소한 취향을 파고드는 디테일, 독특한 문체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해 가을 창간한 ‘보편적인 여행잡지’의 경우 1000부를 찍은 창간호가 50부만 남기고 다 팔렸다. 올봄에 나온 2호는 1000부 중 700부 이상 팔렸다. 단순한 여행 목적지 소개보다는 새로운 여행방법과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사람들을 주 독자층으로 삼았다.

대학생들이 주축이 돼 만든 잡지 ‘NO-NAME’. 인터넷 신조어 ‘병맛’(‘병신 같은 맛’의 줄임말로 어떤 대상이 황당하고 형편없다는 부정적 뜻도 있지만 기발하고 창의적이란 의미로도 쓰임)에서 착안해 ‘병신 같지만, 멋있어’란 슬로건을 내걸었다. 유료 판매를 시작한 4호에는 디자인 패션 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20대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았다. 김예림 편집장(24·여)은 “광고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가 보여주고 싶은 작업을 모두 잡지에 담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소소한 개인사도 타인의 공감을 얻으면 잡지가 된다. ‘9여친’(옛 여자친구란 뜻) 1집은 ‘솔직하고 수치스러운 청춘’을 내세웠다. 박영경 9여친북스 대표(26·여)는 “이별 후 울컥한 순간, 폭풍감성으로 썼던 (나 자신과 주변 사람의) 일기나 글을 잡지에 담았다”고 했다. 그저 일기처럼 읽히지만 100부가 팔려 나갔다.

독립잡지 제작 길라잡이 강좌나 워크숍도 인기다. 6년째 강연을 진행해온 ‘싱클레어’ 김용진 편집장은 “수강생 중 절반이 첫 잡지를 내고 다시 그중 절반은 이를 이어가고 있다”며 “출판물을 만드는 편집 프로그램과 디지털 프린팅 기술 보급으로 한 명 또는 두세 명으로 구성된 작은 집단도 잡지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독립잡지#제4회 KT&G 상상마당 어바웃북스#싱클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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