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스트레스’ 펴낸 철학자 탁석산 씨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31일 03시 00분


“우리사회 행복집착증 심각… 행-불행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행복 스트레스야말로 행복의 장애물이라고 강조하는 철학자 탁석산 씨. 창비 제공
행복 스트레스야말로 행복의 장애물이라고 강조하는 철학자 탁석산 씨. 창비 제공
“종교처럼 떠받드는 행복이 사실 텅 빈 개념일 수도 있고, 필요에 따라 악용돼 인생을 헛수고로 끝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철학자 탁석산 씨(55)가 맹목적으로 행복에 집착하는 현상을 분석한 ‘행복 스트레스’(창비)를 최근 출간했다. 그는 한국인들의 심리를 꿰뚫어 보는 책 ‘한국인의 정체성’ ‘한국인은 무엇으로 사는가’로 화제를 모았었다.

30일 만난 탁 씨가 이번에 던지는 화두는 행복이 신화가 되어버린 오늘날 과연 누가, 언제, 왜 행복을 퍼뜨렸을까라는 질문이다. “가정의 행복을 위해 회사에서 평생 일한 사람들이 왜 은퇴 후 공허함을 느낄까요. 회사는 ‘노동의 대가로 돈을 지급한다’는 말 대신 교묘하게 ‘행복’을 내세우고 있어요.”

그는 멘토들이 범람하고, ‘아프니까 ○○이다’라는 식의 말이 유행어가 되고, 종교인들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요즘 세태에 대해 “한마디로 현대인들의 행복 스트레스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지금 통용되는 행복 개념은 근대의 산물이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최상의 좋음’을 의미하는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로 행복론을 제시했지만, 이는 ‘신의 은총’ ‘운’과 비슷한 뜻으로 불가항력적인 힘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인간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계몽주의의 믿음이 근대사회를 지배한 뒤 신의 자리를 차지한 키워드가 개인적 쾌락의 의미를 내포한 행복이라는 것이다.

“‘국가가 개인의 행복을 보살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가 내포된 개념의 행복은 200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가 행복을 측정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었고, 민주주의의 평등 개념 때문에 행복 신화가 모두에게 퍼진 겁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행복을 어떻게 만나야 할까. “행복 아니면 불행이라는 이분법의 틀에 갇힌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정부와 종교, 사회와 개인 전체가 행복에 집착하는 모습은 정상이 아닙니다. 좀처럼 얻기 어렵고, 얻었다 해도 지속하기 어렵기 때문에 누구나 강박적으로 ‘행복 스트레스’를 지닐 필요는 없습니다.”

탁 씨는 행복지상주의를 해결할 방법은 의외로 가까이에 있다고 했다. “행복의 구성단위를 개인, 이웃(가까운 사람들), 사회로 나눠 보는 관점이 필요합니다. 동료나 친구와 피상적인 관계를 맺지 않고, 적극적으로 삶의 경험을 나눠야 합니다.”

송금한 기자 email@donga.com
#행복 스트레스#탁석산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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