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는 떠나지만 또다른 꿈 펼칩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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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1일 서울 예술의전당서 마지막 ‘백조의 호수’ 무대 서는 발레리나 강예나

서울 능동 유니버설발레단의 어수선한 연습실에서 수석무용수 강예나는 사진촬영 장
소를 주저 없이 결정했다. 연습실 구석 그랜드피아노 위로.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그의 표정과 포즈에 감탄이 절로 터져 나왔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서울 능동 유니버설발레단의 어수선한 연습실에서 수석무용수 강예나는 사진촬영 장 소를 주저 없이 결정했다. 연습실 구석 그랜드피아노 위로.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그의 표정과 포즈에 감탄이 절로 터져 나왔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발레리나 강예나(38)에게 ‘백조의 호수’는 기회의 문을 여러 차례 열어줬던 작품이다. 러시아 키로프 발레단에 속했던 스무 살 때, 주역으로 3막 전막을 처음으로 공연한 무대가 유니버설발레단(UBC) 대만 투어의 백조의 호수였다. 이 덕분에 이듬해인 1996년 UBC에 솔리스트로 입단했고 1997년 최연소 수석무용수라는 기록을 남겼다.

1998년 UBC의 첫 미국 투어 때 그는 맨해튼 시티센터 극장에서 백조로 날갯짓했다. 이를 지켜본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관계자는 “당장 계약하자”고 연락을 해왔다. 한국인 최초로 ABT에 입단한 직후 연습 중 왼쪽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면서 거칠 것 없던 인생이 멈췄다. 무릎을 수술하고 2년 뒤 그는 백조의 호수로 다시 무대에 올랐다.

그런 그가 다음 달 11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마지막 백조의 춤을 펼친다. 현재 국내 발레계 수석무용수 중 맏언니인 그가 은퇴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26일 서울 능동 유니버설발레단에서 만난 그가 말했다. “아직 은퇴시기를 못 박은 건 아니지만 마지막 백조의 호수는 분명한 일이기에 요즘 혼자서 몸을 풀 때 가끔 눈물이 나요. 무대에서 관객을 보면 코끝이 찡해질 것 같아요. (은퇴는) 너무나 당연한 자연의 섭리니까 인생 제2악장을 앞두고 있다는 데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백조의 호수에서 주역 발레리나는 숭고하고 가녀린 백조 오데트, 요염하면서 도도한 흑조 오딜을 오가며 1인 2역을 소화해야 한다. 강예나는 카리스마 넘치는 자태로 발레 팬들에게 인기가 높다. 이번 무대에서는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수석발레리노 에반 매키가 그와 짝을 이루는 지크프리트 왕자로 출연해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안무는 충분히 소화하지만 기교적인 면에서 후배들을 따라가려는 건 미련한 일이고요. 연기력과 깊이 있는 해석으로 승부하려고 합니다. 흑조의 32바퀴 푸에테(연속회전)처럼 강도 높은 동작도 많지만 이번만큼은 힘들기보다는 소중하고 새롭게 다가오네요.”

그가 발레와 더불어 살아온 지 스물여섯 해. 차분히 은퇴를 준비하면서 그는 ‘내가 가장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이 뭘까’를 고민했다. 그 결과, 그는 최근 자신의 이름을 딴 무용복 브랜드 ‘예나라인’을 만들어 디자이너 겸 사업가로 한발 내디뎠다.

“가르치는 일에는 전혀 뜻이 없었고 무용복 디자인을 꼭 해보고 싶었어요. 발레만 하다가 동대문시장 다니면서 원단 흥정도 하고, 구청과 세무서 다니면서 행정적인 처리도 하다 보니 프리마 발레리나가 아니라 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겸허한 경험을 하고 있어요. 은퇴를 앞두고 있다고 쓸쓸해할 시간이 없어요. 시장에서 흥정을 하다가 2000원, 3000원 깎아주시면 굉장히 기분이 좋아요.”

그의 경력에는 ‘한국인 1호’라는 수식어가 여럿이다. 영국 로열발레학교 입학, 러시아 키로프 발레단,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 그가 한국인으로 가장 먼저 문을 연 곳들이다. 매번 용기를 많이 내야 하는 삶을 살아왔기에 앞으로의 인생도 두렵지 않다고 그는 말한다.

“처음 가는 길이 쉽지 않지만 첫 열매가 그만큼 달지 않을 때도 많았어요. 그래도 힘들 때 늘 되뇌었어요. ‘홀로서기 하는 건 너뿐이 아니야. 너만 힘든 게 아니야. 너는 남들이 못하는 것도 해내는 사람이야.’”

최승한 지휘, 프라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반주. 1만∼10만 원. 070-7124-1737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발레리나#강예나#백조의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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