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선 기자의 영화와 영원히]베를린과 궁합 안맞는 홍상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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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은 기대의 크기에 정비례한다. 제63회 베를린영화제 시상식을 몇 시간 앞둔 16일 정오경(현지 시각) 경쟁부문에 진출한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의 홍상수 감독 일행은 주최 측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아쉽게도 수상자 리스트에 없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기대감은 높았다. 지난해 11월 베를린 주재 한국문화원이 현지에서 주최한 홍상수 회고전의 열기는 뜨거웠다. ‘…해원’이 경쟁부문에 진출한 작품 중 마지막에 상영된 것도 희망을 품게 한 이유였다. 15일 오후 공식시사회 뒤 관객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해원’은 20대 중반의 배우 정은채를 먼저 캐스팅한 뒤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배우를 통해 영감을 얻어 20대 여성의 사랑과 성공, 가족 사이의 갈등을 이야기로 풀어냈다. 이렇게 완성된 영화에는 이혼한 어머니는 캐나다로 떠나고, 불륜 상대였던 대학교수와 헤어지며 자아를 찾아가는 해원의 모습이 담겼다.

전형적인 홍상수 스타일의 영화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베를린영화제와 궁합이 맞질 않았다. 전통적으로 베를린영화제는 주제의식이 확실한 ‘사회파’ 영화를 선호해왔다. 이번에 주요 상을 휩쓴 동유럽의 무거운 작품들과 비교하면 이런 이질감이 더욱 뚜렷하게 다가선다.

미국 영화 전문지 스크린은 ‘…해원’에 대해 “사회에서 남녀 관계의 변화를 다룬 작품의 일종이다. 하지만 좀 더 심도 있게 들어가지 못하고 남녀 사이의 대화를 엿듣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고 평가했다. 명확한 주제의식을 포착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홍 감독은 수상이 불발된 뒤 “주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억압이며 이는 삶을 있는 그대로 보는 시선을 방해한다. 내 영화는 우리 삶의 새로운 발견을 담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베를린영화제가 개인 삶의 집합인 사회에 시선을 두는 데 반해 홍 감독은 개인의 삶 속으로 파고든다.

홍 감독은 김기덕 감독과 더불어 해외 영화제에 단골 초청되는 한국 영화감독이다. 칸영화제에 경쟁부문 3번을 포함해 8번이나 초청받았다. 베를린영화제에는 4번째다. 두 영화제를 통틀어 그만큼 여러 번 초청받은 감독도 드물다. 하지만 3대 영화제(칸, 베를린, 베니스) 수상은 2010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하하하’로 대상을 받은 게 유일하다.

좌절할 만도 하지만 도전은 이어진다. 정유미 정재영 이선균 주연의 신작 ‘우리 선희’는 촬영을 끝내고 5월 칸영화제 출품을 준비 중이다. 홍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동안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그의 ‘영화 놀이’는 계속된다.

―베를린에서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베를린영화제#홍상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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