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LIFE]인생은 타이밍

  • Array
  • 입력 2013년 1월 19일 03시 00분


코멘트

⊙ 신의 손가락… 컴투스 홈런왕

나는 야구에 젬병이었다. 던지는 것도, 치는 것도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받는 것을 잘하는 아이도 아니었다. 타석에 서면 온몸이 언 빨래처럼 뻣뻣해졌다. 마운드에 홀로 오르면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외야에 있을 땐 공이 잘 오지 않아 심심하면서도 다행이었고, 1루에 있을 땐 공이 자주 와서 흥미진진했지만 걱정이 태산 같았다. 공수 교대가 이뤄질 때 내쉬던 한숨을 다 모으면 그 바람으로 공을 담장 밖으로 쉬 넘길 수 있을 것 같을 정도였다.

배트를 잡고 있을 때나 글러브를 끼고 있을 때나 마음이 편치 않았던 나는 ‘하는 것’에서 ‘보는 것’으로 관심사를 바꿨다. 그건 어찌 보면 훨씬 편한 일이었다. 공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야구선수들을 바라보며 대리 만족했다. 현장의 벅참보다 안방의 안락함이 좋았다. 짜릿한 한 방을 먹이는 대신에 새콤달콤한 귤을 까먹었다. 손끝이 가져다주는 짜릿함과 아찔함을 동시에 잃어버렸지만 경기가 끝나고 잘잘못을 따질 때 그 중심에 내가 없어도 되었으므로 실로 다행이었다.

‘컴투스 홈런왕’이 모바일 게임으로 출시되었을 때 다운로드를 할까 말까 한동안 망설였다. 야구는 구경할 때 가장 즐거운 스포츠란 사실이 불쑥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결국 한 번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손맛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필드에서 못 쳐본 홈런을 마음껏 칠 수 있는 기회를 그냥 날리긴 싫었던 것이다. 홈런은 내게 아직 오지 않은 무엇이었기에 더욱더 잡고 싶었다. 치고 싶었다. 해내고 싶었다. 나는 마지막 기회를 잡은 지명타자의 심정으로 성큼성큼 타석에 들어섰다.
처음엔 방향 조절을 할 필요 없이 타격 포인트만 잘 맞추면 되니 쉬울 것 같았다. 그러나 막상 타석에 서자 그 생각이 얼마나 순진한 것이었는지 곧 알게 됐다. 날아오는 공의 속도와 성질이 번번이 달라져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빠른 직구부터 포크볼과 너클볼에 이르기까지, 게임 속 투수는 그야말로 다양한 공을 던진다. 타격에 대한 평가는 크게 네 단계로 구성된다. 퍼펙트(perfect), 그레이트(great), 굿(good), 배드(bad). 퍼펙트를 많이 기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드를 피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배드 한 번이면 여태까지 쌓아온 ‘콤보’(연속으로 굿 이상을 치는 것)가 무용지물이 된다. 공든 탑은 그렇게 쉽사리 무너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결국 타이밍이다. 어떤 공이든 적절한 지점에 다다랐을 때 배트를 휘둘러야 한다. 그래야 수비수들이 잡을 수 없을 만큼 저 멀리, 저 높이 날아간다. 집중력이 흐려지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배드를 기록할 때 순간적으로 움찔하는 가슴을 재빨리 다잡아야 한다. 홈런왕이 되는 일은 이처럼 멀고도 힘겹다. 그러니 수많은 관중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정작 타석에선 홀로 서 있어야 하는 타자의 심정은 오죽할까. 안타나 홈런을 치지 못하고 뒤돌아섰을 때, 그 쓸쓸한 등판을 어루만져줄 사람은 있을까.

홈런왕이란 말은 어쩐지 슬프다. ‘왕년’이나 ‘빛나는 한때’를 생각나게 한다. 아무리 애써도 매년 홈런왕 타이틀을 딸 수는 없지 않은가. 반면 ‘컴투스 홈런왕’에 등장하는 투수는 지치지 않는다. 꾸준히 잘 던진다. 이 때문에 게임은 비로소 게임 같아진다. 이번에도 몇 개의 볼을 쳐내지 못했지만 괜찮다. 어찌 보면 그건 당연한 일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아니, 실제 홈런왕도 모든 볼을 펜스 너머로 넘기지는 못한다. 그는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타이밍을 잘 맞췄을 뿐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매일매일 행하는 우리의 연습도, 어쩔 수 없이 벌어지고 마는 시행착오도 이 세상의 타이밍에 길들여지는 하나의 과정이 아닐까.

오은 시인 wimwenders@naver.com
#O2#컴투스 홈런왕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