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ISSUE]난 허무한 허무주의자… 생태중심주의 깨달음 얻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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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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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탄소문화상 대상 받은 박이문 美시몬스대 명예교수

박이문 교수는 사람을 무척 반가워했다. “나이가 들면 친구도 없다”면서. 사실 그는 책으로 일생을 살았다. 대부분의 시간을 책(논문)을 쓰거나 읽는 데 썼다. 건강이 회복되면 가장 먼저 어딜 가실 거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서점”이었다. 고양=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박이문 교수는 사람을 무척 반가워했다. “나이가 들면 친구도 없다”면서. 사실 그는 책으로 일생을 살았다. 대부분의 시간을 책(논문)을 쓰거나 읽는 데 썼다. 건강이 회복되면 가장 먼저 어딜 가실 거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서점”이었다. 고양=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백발의 노학자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연단에 설 때까지 청중은 축하의 박수를 멈추지 않았다. 노학자는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 그의 말은 작고 느렸다. 그러나 늘 그랬듯 핵심을 파고들었다. “과학계와 인문학계 사이에 긍정적 소통이 생기길 바랍니다.” 다시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원로학자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다.

박이문 미국 시몬스대 명예교수(82)는 17일 대한화학회로부터 ‘탄소문화상’ 대상을 받았다. ‘더불어 사는 인간과 자연’(미다스북스·2001년) ‘둥지의 철학’(생각의나무·2010년)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통해 현대 과학기술에 대한 철학적 인식을 개선했다는 게 선정 배경이었다. 시인이자 철학자인 그로서도 과학자들의 잔치에 초대받은 건 뜻밖이었다. 그랬기에 불편한 몸을 이끌고 오랜만의 외출을 감행했다.

그는 사실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상태다. 올봄에만 해도 대학에서 3시간 동안 서서 열강을 펼칠 정도로 건강했지만, 10월 중순 일본을 이틀간 다녀온 게 화근이었다. 그는 귀국일 저녁 머리에 심한 압박감을 느낀 뒤 열흘을 병원에서 지냈다. 이후 언어나 행동 모두 빠르게 회복됐다지만 한창때만큼은 아닐 터였다. 컨디션 기복도 심해졌다고 했다.

기자는 박 교수의 일산 자택으로 향하던 길에 걱정이 앞섰다. 장시간의 대화는 무리가 될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기우였다. 체력적인 문제는 있었지만, 그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매우 명료했다. 무엇보다 그는 ‘생각하기’나 ‘고민하기’를 여전히 즐기고 있었다. 아래는 24, 26일 두 번에 걸친 인터뷰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과학자가 제정한 상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더 기쁜 것이죠. 현대에는 과학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 현상이 사실은 인문학적인 것입니다. 과학적인 사실도 인문학으로 설명할 수 있고요.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과학과 인문학이 연결돼 있다는 말인가요.

“그렇지. 과학과 인문학은 차원은 다른 것이지만, 깊이 들어가 보면 밑바닥은 모두 연결돼 있어요. 밑바닥은 하납니다.”

그날 과학자들에게는 무슨 말씀을 해주셨나요.

“(머리를 가리키며) 이것 때문에 말도 잘 못했지 뭐(웃음). 이번 상은 나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커요. 과학자들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과학과 인문학이 다르지 않고 서로 연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스스로 타진한 것이니까요.”

그는 프랑스 소르본대에서 문학박사(1964년),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에서 철학박사(1970년) 학위를 받았다. 20여 년간 해외 강단에 섰던 ‘시대의 지성’은 1991년 한국에 돌아왔다. 그때 둥지를 튼 곳은 과학기술 전문대학인 포항공대(지금의 포스텍). 일찍부터 과학과 철학의 연결고리에 대해 탐구해 온 그다운 선택이었다. 100편이 넘는 그의 저서와 논문을 보더라도 ‘과학철학’ 관련 내용이 다수다. 이덕환 대한화학회장(서강대 교수)은 “박이문 선생은 과학기술의 필연성과 남용의 폐해 사이에서 완벽한 균형감각을 갖고 있는 철학자”라고 말했다.

그가 정년퇴임 직후 펴낸 ‘더불어 사는 인간과 자연’은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위한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고 평가받는다. 책은 이번 탄소문화상 수상에도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그중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인간중심주의적 윤리의 견지에서 본다면, 우주 속에 오직 인간만이 윤리적으로 관계를 맺는 존재가 되며, 따라서 다른 생명체 내지 자연 일반에 대한 도구적 이용은 윤리적으로 정당화된다. 그러나 생태중심주의적 윤리의 견지에서 본다면 모든 생명체가 윤리적 의의를 지니며, 따라서 인간이 자연을 도구적으로 이용하는 일은 무조건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생태중심주의는 이처럼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시작된다. 그에게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듣기로 했다.

생태중심주의란 게 뭔가요.

“인류는 과학문명에 의해 발전했고, 지금은 무척 살기가 좋아졌죠. 그러나 그 대가로 치러야 할 게 생겼습니다. 그게 생태계의 문제죠. 인류는 이제껏 오만하게 자연을, 나아가 우주를 지배하려고 했어요. 물론 인간에게는 그런 재능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재능을 무한히 남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죠. 적절하게 조절해야 한다는 게 핵심입니다.”

생태학적 관점에서도 인간은 동물과 다른가요.

“물론 인간은 동물과 다릅니다. 그러나 ‘절대’ 다른 건 아니에요. 비록 인간에겐 몇몇 특별한 점이 발달돼 있지만, 동물과 절대 다른 건 아니죠. 동물도 다 생명이 있지 않습니까.”

생태학적 관점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

“세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껍데기만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더군요. 인간의 오만함은 생태계와 공존하는 대신 생태계를 지배하려 하고 있었죠. 환경오염이란 것도 결국은 생태계와의 밸런스를 깨뜨림으로써 얻은 결과입니다.”

그런 관점이 지향하는 목표가 있을까요.

“생태계 전체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은 단순한 ‘보호’나 ‘보전’의 의미가 아닙니다. 인류의 생존 문제죠. 생태계를 살리지 않고서는 인류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는 다만 맹목적인 환경보호에 대해선 경계심을 드러냈다. 생태 중심으로 사고를 전환하되 방점은 당연히 ‘인간과 자연의 공존’에 찍혀야 된다는 것이다. 인간을 희생하면서까지 자연보호를 우선시하는 일부 극단적 환경론자들의 주장은 그래서 설득력을 잃는다고 했다.

“인간의 의식이 끊어지면 세계도 끊어집니다. 적어도 인간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는 얘기죠. 그러니 생태중심주의도 인간을 배제하고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박 교수는 스스로 ‘허무주의자’라 칭한다. 중학교 시절 ‘허무론’을 써 갔는데 미리 읽어 본 선생님이 발표를 만류한 적도 있단다.

허무주의자는 어떤 사람을 말하나요.

“허무주의자는 ‘모든 것은 결국 의미가 없다, 끝이다’라고 얘기합니다. 왜 그런지도 모르면서 말이죠.”

젊은 시절과 황혼기에 접어든 지금 변화가 있습니까.

“그땐 열정이 있었죠. 뭐든 다 알려고 했고요. 그런데 지금은 진짜 허무주의잡니다. 허무한 허무주의자(웃음).”

젊은 시절 찾고자 했던 답은 찾았습니까.

“물론 답은 없죠.”

혹시 지금도 찾고 계신 중인가요.

“지금은 ‘답이 없다’는 답이 나온 거죠. 진정한 허무주의자는 이를 태연하게 받아들입니다. 결국 모든 것의 의미가 없다는 걸 알았을 때 절망하지 않죠.”박 교수는 한국에 2년 정도 머물렀던 1980년대 초 아내 유영숙 씨(69)를 만났다. 세상의 답을 찾아 헤매던 허무주의자는 “일에 방해가 될까 봐” 쉰이 넘도록 결혼을 미루고 있었다. 지인의 소개로 만난 유 씨와 결혼한 그는 “결혼하길 정말 다행이다”라고 했다. 대화를 듣던 유 씨가 말을 받았다.

“선생님은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욕심도 많고. 특히 글 쓰는 욕심이 많아서 최근까지도 늘 컴퓨터 앞에 붙어 있으셨죠. 병이 나신 뒤엔 그걸 못하니 갑갑해하시지 않을까 걱정했어요. 그런데 그걸 또 태연히 받아들이시더군요.”

혹시 허무주의도 생태학적 관점과 연결할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인간은 어차피 일생을 살다 죽을 때가 되면 죽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죠. 죽을 때 되면 죽고, 지구가 망한다면 같이 망하는 겁니다. 그러니 살아 있을 때 잘 살아야 되는 거예요. 이때의 ‘잘 산다’는 게 바로 자연과 어울려 균형점을 갖고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선거 과정에서 나타난 한국 사회의 갈등을 봉합할 혜안을 부탁했다. 그의 대답에서는 연륜의 무게와 사고의 깊이가 우러나왔다.

사회적인 갈등은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요.

“어떤 이슈에 대해선 상이한 의견이 나오기 마련이죠. 세상엔 갈등이 있어야 발전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일관된 신념에 따라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려 하죠. 그러나 그 신념이 정당한 것이냐를 먼저 따져봐야 합니다. 옳고 그름의 가치 판단은 애매할 때가 많죠. 그러니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남을 탓하기보다 자신을 먼저 돌아보라는 말씀이군요.

“그렇죠. 남과 부딪혔을 때는 늘 자기반성을 먼저 해야 합니다. 자기반성을 하다 보면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다는 걸 깨달을 수도 있겠죠. 그러면 바로잡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보통 좋고 나쁜 게 다수에 의해 결정되곤 하죠. 그러나 다수의 선택이라고 무조건 옳을 수는 없습니다.”

세대 간의 갈등은 어떻게 보시나요.

“뭔가 경험했던 사람들과 경험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갈등이죠. 경험했다고 무조건 옳지 않을뿐더러, 경험하지 않았다고 세상을 쉽게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게 가장 큰 문제예요. 자기반성을 하지 않으면 절대 상대를 인정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고 보니 문득 생각난 게 있었다. 노학자는 인터뷰 내내 기자의 말에 ‘그렇지, 그렇지’ ‘맞아요, 맞아’란 추임새를 넣고 있었다. 남의 말과 태도를 먼저 인정해 주는 것. ‘실천하는 지성’ 앞에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 탄소문화상이란 ::

대한화학회, 생명 근원인 ‘탄소’ 중요성 알리려 제정… 인문학자에게도 개방

‘탄소문화상’은 올해 대한화학회가 처음 제정한 상이다. 박이문 교수는 첫 대상 수상자다. 그런데 명칭 자체가 생소하다.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신조어’다.

대한화학회가 설명한 ‘탄소문화’의 의미는 대략 이렇다. 탄소는 생명의 근원이자 문명의 핵심이다. 인류는 탄소를 기반으로 성장해 왔다. 그런데 지구온난화 등 환경문제가 대두되자 엉뚱하게 탄소를 인류를 위협하는 ‘악(惡)’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기 위해선 탄소의 중요성과 가치가 더 정확히 이해되어야 하고, ‘탄소문화’란 단어는 바로 그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박 교수도 “탄소는 인간의 잘못을 뒤집어쓴 희생양”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환경을 파괴하는 과학기술의 남용을 무겁게 경고해 왔다. 그러나 인류 생존을 위해 과학기술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었다. 탄소는 현대 과학기술을 대변하는 ‘화학적 상징’인 셈이다.

이 상을 인문학자에게 수여하는 배경도 의미 있다. 과학계와 인문학계는 서로 소통을 간절히 원하면서도 실천이 이뤄지지 못했다. 이덕환 대한화학회장은 “그동안 과학계는 인문사회학자들에게 과학기술의 가치를 인정해 달라는 말을 많이 해왔다”며 “이젠 과학자들 스스로가 인문사회학의 중요성을 인정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때”라고 말했다.

고양=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탄소문화상#박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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