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도(왼쪽)와 강필석이 혁명의 광기마저 잠재우는 사랑의 주인공으로 애틋한 연기를 펼친 한중합작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 국립극단 제공
경극의 전통이 강해서일까, 중국 연극은 몸의 연극이라 할 만하다. 중국 배우들은 잘 훈련된 몸의 움직임과 중국어 특유의 사성을 타고 리드미컬하게 흐르는 대사를 결합해 단순한 이야기에 생동감을 부여한다.
한국의 국립극단과 중국의 국가화극원이 공동 제작한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도 역시 배우들의 역동적 몸놀림이 눈에 띈다. 국가화극원의 7명의 상임연출가 중 홍일점인 톈친신(田沁흠·44)이 연출한 연극은 무대 양쪽 가파른 가옥 세트 사이에 지붕을 연상시키는 30도가량 경사진 공간 위에 한국 배우들을 위태롭게 세워놓는다. 그 위에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발바닥과 다리에 힘을 줄 수밖에 없는 배우들은 뛰고 달리고 미끄러지고 심지어 와이어에 연결된 도르래를 잡고 레펠을 탄다.
16세기 이탈리아 베로나를 무대로 한 셰익스피어의 낭만비극을 중국 문화대혁명기 홍위병 소년소녀의 사랑으로 옮긴 연극은 이를 통해 강렬한 역동성을 성취한다. 같은 홍위병이라도 로미오(강필석)는 노동자로 이뤄진 공련파의 행동대장이고, 줄리엣(전미도)은 군인으로 이뤄진 전사파 가문의 딸이다. 서로를 사갈시하는 양 파벌의 맹목적 증오의 불길 속에 두 연인의 맹목적 사랑이 피어난다. 맹목적 증오는 둘의 사랑을 파멸시키지만 맹목적 사랑은 반대로 문혁의 맹목적 증오를 종식시킨다.
원작을 문혁 상황에 맞게 절묘하게 각색한 중국 극작가 레이팅(雷정·34)의 극본도 재미있다. 원작에서 비련의 사랑을 맺어주려다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초래하는 로렌스 신부는 문혁기간 반동으로 몰려 홍위병의 노리개가 된 로미오의 과학교사 뤄선생(김세동)으로 바뀐다. 로미오가 자신의 애정문제를 상담하기 위해 그를 찾아와서는 반말로 한껏 겁박을 주다가 “선생님 도와주세요”라고 매달리는 장면이 통렬하다. 줄리엣의 유모인 캉화화(고수희)가 커다란 덩치로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하기 위해 지붕 위를 헐떡이면서 뛰어다니는 장면은 만화적이기까지 하다. 중간 중간 마오쩌둥 어록을 인용하는 대사들도 거부감이 들기보다는 당시 창작풍토에 대한 풍자로 다가선다. 지금도 문혁을 옹호하기 바쁜 이들이 이 연극을 보면 뭐라고 할까.
극장 특성상 마이크를 쓰고 대사를 치는데 소리가 너무 울리거나 중간 중간 라이브 반주에 중국의 옛 유행가를 함께 들려주는 탓에 대사가 잘 안 들리는 경우도 많았다. 몸의 연극에 치중해 말의 연극을 놓친 아쉬움은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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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10월 중국 베이징 상하이 쿤밍 그리고 홍콩에서도 공연된다. 29일까지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2만∼5만 원. 1688-5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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