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묵의 ‘한시 마중’]<37>동짓날 팥죽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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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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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동짓날입니다. 요즘은 직접 팥죽을 끓이는 집이 많지 않지만 예전 시골에서는 집집마다 팥죽을 끓여 이웃에 돌렸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래로 동짓날 팥죽을 쑤어 먼저 사당(祠堂)에 올리고 방과 장독대, 헛간 등 집 안 여러 곳에 놓아두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팥죽이 식으면 식구들과 모여서 먹었지요. 팥의 적색이 양(陽)을 상징하므로 음귀(陰鬼)를 몰아낸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런 풍속이 생긴 것입니다.

연말이라 회식이 많은 요즈음 고기나 회를 안주로 삼아 실컷 먹고 마시고 나니 속이 영 더부룩합니다. 아침의 고통과 후회를 불러일으키는 저녁의 술자리보다 맑은 정신으로 아침에 부드러운 팥죽을 먹는 일이 훨씬 나을 것입니다. 장유(張維·1587∼1638)의 시는 이런 뜻을 말하였습니다. 그래도 혹 전날 과음하셨다면 해장용으로 팥죽을 권합니다. 장유는 이 시의 첫째 수에서 “서리 내린 아침에 꿀을 탄 팥죽 한 사발에, 위가 다습게 풀어지고 몸이 절로 편안해지네(霜朝一완調崖蜜 煖胃和中體自安)”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고려 말의 문인 이색(李穡)도 팥죽을 좋아하여 “동짓날 시골이라 팥죽을 뻑뻑하게 쑤어다가, 푸른 사발 가득 담으니 붉은 빛이 허공에 어리네. 달싹하게 꿀을 타서 목구멍을 흘려 넣으면, 나쁜 기운 다 씻어내고 배 속까지 윤이 난다네(冬至鄕風豆粥濃 盈盈翠鉢色浮空 調來崖蜜流喉吻 洗盡陰邪潤腹中)”라고 한 바 있기에, 속이 더부룩한 분을 위하여 팥죽 한 사발을 권합니다.

이종묵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시#동짓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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