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환갑넘어 등단… 소설의 피안에서 또 방황하고 있소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3일 03시 00분


⊙ 이강숙 전 한예종 총장의 인생을 바꾼 순간

소설가 이강숙은 인터뷰 내내 꼭 독자를 혹하게 만드는 소설을 쓰고야 말겠다며 의욕을 불태웠다. 그는 자신의 욕망에 솔직했다. 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소설가 이강숙은 인터뷰 내내 꼭 독자를 혹하게 만드는 소설을 쓰고야 말겠다며 의욕을 불태웠다. 그는 자신의 욕망에 솔직했다. 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경포대 바닷가에서 그림을 그리는 아내에게는 읽어보라고 하지 않았다. “글도 아니다”라는 말을 듣기 싫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괴롭긴 했지만 그전에도, 이후에도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아내에게 쓴 것들을 보여주곤 했다. 그러나 그때만은 아니었다. 서울대 교수 시절 들른 호주의 어느 해변에서 봤던 외국 여학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수련회를 왔는지 악기들을 어깨에 메고 다니던 오케스트라 단원 속의 한 소녀. 그의 자취를 뒤따라가는 이야기의 실마리가 번뜩 떠올랐다. 2주 남짓 걸렸을까. 그 앞에 단편소설 한 편이 놓였다. 몇 달 뒤인 2001년 10월, 월간 ‘현대문학’에 이강숙(76·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대 총장)의 ‘빈 병 교향곡’이 실렸다. 등단(登壇).
음악의 강변을 거닐던 그가 소설의 피안(彼岸)에 가닿았다.》

‘잡동사니’ 삶

1965년 11월, 월간지 ‘사상계’를 펼쳤다. “신인문화상 소설부문 이청준 작, ‘퇴원(退院)’.” 이강숙의 이름은 역시 없었다. 최종심에도 오르지 못했다. 속이 많이 상했다. 도저히 안 되나 보다 싶었다. 1950년대 후반 폐결핵 수술을 받고 2년여 요양할 때부터 줄기차게 했던 투고의 나날에 종지부를 찍을 때가 온 것처럼 느껴졌다.

그해 쇼팽의 피아노협주곡 2번을 KBS교향악단과 한국 초연(初演)하는 등 그는 피아니스트이자 음악평론가로 이름을 막 알리고 있었다. “너는 피아니스트냐, 음악평론가냐. 하나만 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나 소설을 쓰려는 욕망이 꼭꼭 숨어 있었다.

첫사랑은 음악이었다. 중학교 시절 탁월한 음량과 음색을 갖춘 그의 성악 실력은 출중했다. 피아노 소리에 매혹돼 피아노가 있는 곳이라면 친구네 집, 교회, 다른 학교 음악실 등등 어디든 마다않고 찾아갔다. 눈칫밥을 먹어가며 피아노를 치는 ‘피아노 구걸’ 행각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런 중에도 글쓰기는 음악이 닿지 않는 그의 마음 속 다른 부분을 건드렸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존경했던 국어선생님의 수업이었다. 선생님도 공부를 곧잘 했던 그를 예뻐했다. 선생님은 시를 써보라고 했다.

30분쯤 지났을까. 선생님이 그의 곁에 왔다. “강숙이, 보자.” 그가 쓴 시를 쑥 읽고 나더니 선생님이 말했다. “니(너)는 안 되겠다. 공부나 해라.” 1970년대 초반 미국에서 박사과정 공부를 할 때 그는 유명한 교육학 도서인 ‘교실의 살인자(Murderer In The Classroom)’를 읽게 됐다. 선생님이 건성으로 던지는 한마디 말에 학생은 큰 충격을 받는다는 내용. 자연스럽게 그날의 국어시간을 떠올렸다.

“그 말을 듣고는 기가 죽어서 완전히 마음속에 숨겨놓고는 아예 (글을 쓰고 싶다는) 말을 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 욕망은 스멀스멀 기어 올라와서는 이미 그를 사로잡아 버렸다. “글을 안 쓰면 견디지 못할 만큼 도저히 그만둘 수가 없었어요.”

소설가의 길에 들어서기까지 그에게는 어쩌면 “헤매고 다닌 삶”이었다. 중고교 시절 나간 성악 콩쿠르마다 1등을 휩쓸다시피 했고 서울대 음대 작곡과에 입학해서는 베토벤, 브람스, 라흐마니노프 같은 작곡가들이 모두 피아노를 잘 쳤다고 해서 피아노과로 옮겼다. 소설 쓰던 훈련이 돼서인지 음악평론을 하다가 “넌 도대체 뭐냐”는 지적에 음악이론 공부를 위해 유학을 떠났다.

서울대로 와서는 작곡이나 피아노가 아닌, 한국에서는 익숙지 않은 음악학을 가르치다 KBS교향악단 초대 총감독을 맡기도 했다. 1992년부터는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초대 총장으로 10년간 기틀을 다져놓으며 ‘행정의 귀재’라는 말도 들었다. 그리고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 소설가가 됐다.

“내 삶이 잡동사니예요. 호기심 때문인지 여기저기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지요. 소설을 쓰라는 팔자라서 그런지 자꾸 바뀌더라고요. 제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고요. 허허.”

형극의 길

등단하고 나서 한두 번 ‘현대문학’에 단편을 게재했다. 마침 소설가 이청준 씨도 생전에 같은 시기, 같은 지면에 소설을 실었다. ‘사상계’에서 이 씨에게 쓴잔을 맛본 뒤 40여 년 뒤에 소설가로서 나란히 글을 싣고 나니 보통 감개무량한 게 아니었다. 잇단 투고가 벽에 부딪혔고, 당시 신진작가로 명성이 드높던 이 씨의 작품을 읽으며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이강숙의 머릿속에 생생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40년 전에 그토록 감명을 줬던 소설가라면 이후 긴 시간 동안 더욱 실력을 갈고닦아 이제 그의 작품을 읽으면 더욱 심금을 울려야 할 텐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집필생활에 들어서고 나서 이것이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깨달았다. “등단하기 전에는 남들이 쓴 소설을 굉장히 무시했어요. ‘이걸 소설이라고 썼나’ 하고 말이지요. 그런데 막상 써보니 하나 같이 존경스럽기만 했습니다. 절대 겸손에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등단하고 난 뒤 민음사 박맹호 회장이 한 말이 종종 실감난다. “뭐 하러 그런 형극(荊棘)의 길에 들어서려고 합니까.” 빨리 쓴 소설은 만 65세, 한예종 총장을 정년퇴직할 때 썼던, 2주 만에 완성한 등단작이 유일하다. 요즘은 단편 하나 쓰려고 하면 3∼4개월이 걸려도 잘 안 된다. 죽을 지경인데도 되지 않는다. 지난해 낸 반(半)자전적 장편소설 ‘젊은 음악가의 초상’(민음사)은 완성하는 데 5년여가 걸렸다. 소설가들에게 글을 쓰는 공간을 내주는 만해 마을, 토지문화원, 연희문화촌에서 기숙을 하면서까지 끙끙대다 토해낸 결과물이다.

미국 유학 시절 봤던 책 제목이 지금의 그가 겪는 고민의 깊이를 적절히 대변해준다. ‘Book In The Mind, Book On The Page(마음속의 책, 종이 위의 책).’ “마음속에 있는 것은 기가 막힌데 정작 종이에 써놓으면 별것 아니더라고요. 마음속 글하고 써놓은 글하고 영 닮지를 않아요. 노래는 그냥 부르면 됐어요. 그런데 이놈의 것은 정말…, 일종의 비극이에요.”

쓰고 있는 것은 적지 않다. 한예종 총장 시절 강단 지식이 별무소용인 행정의 현장에서 그가 보고 겪고 깨달은 각종 일화들이 그렇다. 초창기 외제 그랜드피아노 50대분 예산을 따내기 위해 기획예산처에서 벌였던 실랑이며, 서로 헤게모니를 쥐기 위해 으르렁거리던 한예종 사무국 간부들과 얽혔던 일 하며, 이들을 손 안에 넣기 위해 승진이라는 카드를 휘둘렀던 일이며…. 실화소설로 쓰자는 한 출판사의 주문은 간곡히 고사했다.

그는 매일 잠자는 시간을 빼면 집필을 위해 컴퓨터 앞에 앉는다. 최근 들어서는 독자를 꼬이는 작품을 쓰게 해달라는 기도를 시작했다. 머리와 가슴이 잘 돌아가지 않으면 영화를 보거나 돋보기를 대고 책을 읽는다. 미리 써놓은 글들을 다시 쓴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녹음기를 들고 동네를 걸으며 머리에 떠오른 것들을 구술한다. 등단 이후 10년간 한결같은 그의 태도를 시인이자 화가인 아내 문희자 씨가 “존경한다”고 말할 정도다.

정착과 방황

서울 서초구 방배동 그의 집 거실 한쪽에는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있다. 1970년대 중반 미 버지니아 주 한 대학에서 교수를 할 때 월부로 샀던 것이다. 그날 밤 생애 처음으로 갖게 된 자신만의 피아노 앞에서 그는 펑펑 눈물을 흘렸다. 한때는 이 피아노가 정말 예쁜 여성으로 보였다. 쇼팽 같은 명연주자가 손을 대면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피아노. 그러나 그가 만지면 맹탕일 뿐인 피아노. 자신을 울릴 피아니스트를 기다리는 피아노. 그런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 어떨까 그는 고민한다.

이강숙은 잡동사니의 삶을 후회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하나에 집중했다면 뭔가 하나라도 확실하게 이룰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쉽게 정착해도, 매일 방황해도 어리석은 일이라는 생각으로 그는 살아왔다. 죽을 때까지 정착과 방황이 들숨과 날숨처럼 계속되는 삶을 살고자 한다. “지금은 방황입니다. 소설 쓰는 작업에는 정착했는데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지에서는 방황이죠.” 팔순을 앞둔 그는 아름다운 방황 중이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이강숙#현대문학#등단#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빈 병 교향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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