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urmet]꽃이 된 ‘오리의 혀’

  • 동아일보

○ 카이펑서 열린 중국요리사페스티벌

오리 혀로 노란 국화를 표현한 요리작품.
오리 혀로 노란 국화를 표현한 요리작품.
음식이 배를 채우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될수록 요리는 예술의 경지에 다다른다. 광활한 영토에서 나는 풍부한 먹거리와 다양한 문화가 혼재된 중국에서 요리가 발전한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10월 20일 중국 허난 성의 작은 도시 카이펑에서 22회 중국요리사페스티벌이 열렸다. 동북쪽 끝 헤이룽장(黑龍江)부터 남쪽 끝 하이난(海南)까지 중국 각지에서 유명 요리사 270여 팀, 1000여 명이 모여 사흘간 요리대회를 벌였다. 대회장인 카이펑대 체육관에는 1000명이 넘는 관람객이 몰려들었다.

개막식이 끝나고 관람객들의 박수와 함께 대회가 시작됐다. 4명씩 팀을 이뤄 1시간 안에 요리를 끝내야 한다. 일반적인 중국 요리를 고려하면 짧은 시간이다. 복잡한 요리보다 실용적인 요리를 내놓으라는 것이 주최 측인 중국요리사협회의 의도였다.

조리대 앞에 선 팀들은 저마다 접시에 올릴 화려한 장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오이를 깎아 나뭇가지를 만들고 당근으로는 꽃잎을 만들어 올렸다. 한 참가팀은 접시 대신 넓적하고 평평한 돌을 썼다. 돌 위에 풀을 깔듯 목이버섯을 올리고 기암괴석을 닮은 돼지족발을 담았다. 바위에 낀 이끼는 다진 파를 얹어 표현했다. 한 폭의 수묵화가 완성되자 객석에서는 카메라 플래시가 연방 번쩍거렸다.

또 다른 팀은 에스키모가 얼음벽돌로 이글루를 쌓듯 오리 혀를 둥근 모양으로 차곡차곡 쌓아 만개한 꽃 모양을 만들었다.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대창 속에 푸른색 채소를 넣은 요리는 접시에 대나무 잎을 그려 넣자 대나무 숲처럼 보였다.

출품작들은 맛에서도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했다. 중국요리 특유의 짜고 자극적인 맛은 찾을 수 없었다. 소스의 맛이 재료의 맛을 덮어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카이펑의 특산품인 국화를 이용해 부드러운 향을 강조한 요리가 많았다. 중국인들이 좀처럼 먹지 않는 생채소를 밀전병에 싸먹는 요리도 등장했다. ‘참살이(웰빙)’ 트렌드는 대륙에도 불어 닥치고 있었다.

사흘간의 대회가 마무리되던 22일 오전, 관객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는 분위기 속에서 마지막 팀이 등장했다. 위생복 가슴에 태극기가 선명했다. 특별 초청된 한국 요리사들이 마지막 순서로 등장한 것이었다.

외국팀이 이 대회에 출전한 것은 이번이 처음. 예상치 못한 외국 요리사들의 등장에 관객들이 다시 몰려들었다. 한식 전문가 9명으로 구성된 한국팀은 조리대 위의 중국 소스를 치우고 간장, 된장, 고추장을 올렸다. 심사위원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한국팀의 요리를 지켜봤다. 한우갈비, 인삼튀김, 복어요리, 홍어전 등에 심사위원들은 호평을 쏟아냈다. 한국팀의 전경철 단장(국가공인 조리기능장)은 “다양한 한식 메뉴를 선보였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카이펑=글·사진 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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