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멀리까지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이 곧 권력의 상징이었다. 잘 닦인 도로가 깔려 있는 것도 아니고 식당이나 숙소도 드물어 장거리 이동을 하려면 말은 물론이고 음식과 임시 거처 등을 함께 옮겨야 했기에 마부와 하인까지 필요했다. 대중교통이 존재하지 않았으니 말을 갖지 못한 평민이 멀리까지 이동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봉건사회가 오랜 기간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었다.
말이 인류의 생활에 들어온 지 수천 년이 지나도 대중화되지 못했지만 1886년 발명된 자동차는 탄생 120여 년 만에 일반인 대부분이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 됐다. 자동차 덕분에 계급과 상관없이 누구나 이동의 자유를 누리는 ‘모터리제이션’이 일어났고 현대사회는 이와 떼어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자동차를 기반으로 발전했다.
자동차도 처음 등장했을 때는 귀족만이 탈 수 있는 물건이었다. 자동차의 개념도 기계라기보다는 마차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롤스로이스나 벤틀리 같은 자동차회사는 말을 대신하는 엔진과 구동계를 만들었지만 차체는 여전히 마차를 만들던 장인들의 손으로 호화롭게 꾸며졌다.
상황이 바뀐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무기를 대량생산하며 축적된 경험이 자동차산업에 접목되면서부터다. 공장에서 생산하는 값싼 양산 자동차의 품질이 좋아지면서 공방에서 만드는 럭셔리카는 차차 시장에서 밀려났고, 이런 자동차를 만들던 롤스로이스, 벤틀리, 마이바흐 같은 브랜드는 쇠락했다.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가 싶던 럭셔리카가 부흥을 맞은 것은 최근의 일이다. 러시아와 중국 등 옛 공산권 국가와 중동지역에서는 엄청난 수의 신흥 부자가 생겨났다. 그들의 고급차 수요, 개성 있는 차를 타고 싶어 하는 기존 유럽과 미국 부자들의 요구가 맞물리며 초(超)럭셔리카 붐이 일어난 것이다.
영국의 자존심이자 고급차의 상징인 롤스로이스와 벤틀리는 각각 BMW그룹과 폴크스바겐그룹에 인수돼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롤스로이스는 영국 굿우드 공장에서 영국의 장인정신과 독일 BMW의 기술력이 결합된 차를 내놓고 있다. 궁극의 세단으로 불리는 ‘팬텀’(7억5000만 원 이상)에 이어 롤스로이스의 막내인 ‘고스트’(5억3000만 원 이상)를 선보이며 역대 판매량 기록을 연일 갈아 치우고 있다. 라이벌이었던 메르세데스벤츠가 ‘마이바흐’의 생산중단을 선언하면서 승자의 훈장까지 얻었다.
클래식 롤스로이스를 제작하던 유서 깊은 크루 공장에서 생산되는 벤틀리는 전통적인 외관에 스포츠카 뺨치는 성능까지 갖춰 우리나라에서도 패셔니스타와 연예인 사이에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세단과 쿠페, 컨버터블 버전이 준비된 벤틀리 콘티넨털 시리즈에는 기존 12기통 모델(2억8000만∼3억 원)보다 값이 싸면서도 비슷한 성능을 갖춘 8기통 모델(2억3900만 원 이상)이 추가됐다. 그만큼 벤틀리를 타려는 수요층이 다양해졌다는 이야기다.
예전에는 극소수의 전유물이던 스포츠카도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제 슈퍼카 페라리와 마세라티는 점차 모델 라인업을 확충하면서 다양한 고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페라리가 새로 선보인 FF(4억6000만 원)는 왜건처럼 트렁크를 넓혔으며 상시 사륜구동 시스템을 달아 겨울에도 골프백을 싣고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차다.
이런 차로도 만족할 수 없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차를 만들어 탈 수 있다.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턴은 최근 세상에 한 대뿐인 특별한 페라리를 주문했다. BMW는 이탈리아의 자동차 공방 자가토와 손잡고 세상에 한 대뿐인 콘셉트카 ‘Z4 자가토’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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