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영웅을 기다리며’…‘욕쟁이’ 이순신의 팔색조 매력

  • 동아닷컴
  • 입력 2012년 10월 22일 10시 43분


임진왜란(1592년~1598년)의 ‘영웅’ 이순신 장군이 단단히 망가졌다. 본능에 충실하고 구수한 사투리를 내뱉는 것이 친숙한 ‘옆집 아저씨’를 연상케 했다. 고정관념처럼 뇌리에 박혔던 근엄한 ‘이순신’은 뮤지컬 ‘영웅을 기다리며’에서 공연 시작을 알리는 그의 욕설과 함께 서서히 잊혀져갔다.

‘영웅을 기다리며’는 난중일기에 없는 3일 간의 묘연한 행적을 코믹하게 재구성한 창작극이다. 시대적 배경은 1597년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은 조정 대신들의 모략에 의해 투옥당한 후 권율장군 휘하에서 백의종군을 명받는다. 그가 권율을 찾아 남쪽으로 이동하는 도중 일본무사 사스케에게 생포된다.

사스케는 사랑하는 연인 ‘요오꼬’를 차지하기위해 이순신의 목을 베어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가상 인물이다. 사스케는 매일 밤 일본에 두고 온 연인 그녀를 애절하게 부르는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끌려 다니느라 힘들고 지친 우리의 ‘영웅’은 그의 노래 때문에 잠을 설쳤다며 중간 중간 욕설 추임새를 넣는다. 이 공연에서는 이처럼 예상치 못한 듀엣곡이 자주 나온다. 보통 배우가 노래를 부르면 그 감정에 집중하기 마련인데 그럴 틈도 없이 관객들은 색다른 웃음 포인트에 깔깔 웃기 바빴다. 곡의 구성부터가 진지함에 완전히 벗어나 움츠려있던 관객들을 무장해제 시킨다.

이때 새롭게 등장하는 캐릭터는 ‘막딸’이다. 그녀는 명나라 군인들에게 위협받는 도중 사스케가 목숨을 구해주면서 이들과 함께한다. 사스케는 사랑하는 여인과 많이 닮았던 막딸을 구하는 과정에서 큰 부상을 입게 되고 그녀는 그를 지극정성으로 돌본다. 정 많고 악착같은 우리 고유의 여성상을 느낄 수 있었다. 이로서 국적과 신분, 나이를 초월한 세 남녀의 3일간의 여행이 펼쳐진다.

그들은 밤만 되면 요오코를 외치는 사스케 때문에 싸우기도 하지만 그녀를 잊지 못하는 그에게 감정을 토해낼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하며 서로의 정을 나누고, 결국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을 기꺼이 내어주기에 이른다.

소극장 공연의 매력은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를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관객들은 배우의 시선처리, 손동작, 발동작 등에 하나하나 집중한다. 배우들 입장에서는 공연을 보러온 관객들이 고맙기도 하지만 ‘무서운’ 존재도 된다.

필자는 조휘(이순신 역), 강성(사스케), 김지민(막딸) 조합의 ‘영웅을 기다리며’를 관람했다. 이들의 연기호흡은 꽤 인상적이었다. 특히 조휘는 ‘팔색조’ 매력으로 무대를 이끌어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그는 ‘몬테크리스토(몬데고 역)’, ‘영웅(안중근)’ 등 대형뮤지컬에서 가창력과 연기력이 요구되는 역할을 주로 해왔다. 하지만 최근 ‘콩칠팔 새삼륙’과 ‘영웅을 기다리며’ 등 유머러스한 요소가 가미된 창작 소극장 공연에 잇달아 출연하면서 캐릭터 변신이 자유자재로 가능한 ‘멀티’형 배우로 도약했다.

김지민 역시 두 사람 사이에서 완충 구실을 하는 조선 처녀역할을 잘 소화해 냈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가 어색하지 않았고 가사 전달력도 좋았다. 강성의 넘버는 배역과 잘 어우러져 호소력이 짙었다.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공연에 사용되는 음악과 효과음이 관객들이 보는 무대에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무대 양쪽 끝에는 음악담당 스텝들이 각 한 명씩 배치돼 전통악기를 연주하거나 매순간 필요한 효과음을 직접 만들어 낸다. 심지어 그들은 공연 도중에 투입되며 관객들과 직접 소통을 시도한다.

‘영웅을 기다리며’는 2008년 창작팩토리 우수뮤지컬제작지원 최우수작으로 2009년 1월에 초연했다. 2012년 다시 한국뮤지컬협회의 ‘올해의 창작뮤지컬지원작’으로 선정됐다. 오는 31일까지 서울 동숭동 PMC자유소극장에서 공연한다.

정진수 동아닷컴 기자 brje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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