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훈민정음 창제는 치밀한 국정장악의 산물”

  • 동아일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세종리더십’ 학술대회 열어

1443년 12월 세종대왕은 집현전 학사들과 함께 훈민정음 창제를 마쳤다. 훗날 그 독창성과 과학성으로 세계의 칭송을 받게 될 문자이지만 당시 실록에는 구체적인 날짜도 없이 ‘시월(是月·이번 달)’이라고만 쓰여 있고 관련내용도 12월 글의 말미에 붙여놓았을 뿐이다.

정윤재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정치학)는 “훈민정음 창제의 정확한 일자나 전후배경이 실록에 제대로 기록되지 않은 것은 단순한 실수나 착오로 보기 어렵다”며 “세종대왕의 의도적인 숨김일 수도 있고, 당시 글쓰기의 권력을 쥐고 활동했던 사관들의 공개되지 않은 의도가 나타난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와 반포는 “안팎의 견제와 반대 속에서 끈질기게 추진된 집요한 정치적 기획이었다”는 점을 이로써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창제를 마친 비결은 “국민을 통합하는 ‘비전’과 함께 비전을 실천할 ‘안목과 기술’, 성공적 정치리더십의 필수요소인 ‘장악’을 확실히 하면서 목표와 과제를 줄기차게 추진한 것”이라고 정 교수는 평가한다.

한중연 세종리더십연구소는 9일 훈민정음 반포 566주년 한글날을 맞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세종의 한글창제와 출판의 국가경영’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연다. 세종은 백성의 마음을 열고 국격을 높이기 위해서는 양질의 책을 간행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보아 재임기간에 정치 경제 문화 종교 역사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350여 종의 책을 출간했다. 학술대회에서는 당시 출판된 책들을 통해 세종의 지식경영 리더십을 조명하는 논문들이 발표된다.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조강연 ‘지식국가 조선의 근대와 한글’을 통해 “한글은 평민 담론장을 활성화하는 언어 및 문자 수단이자 새로운 시간대를 열었던 원동력이었다”며 “인민은 한글과 함께 근대라는 낯선 시간대로 걸어 들어갔는데, 후에 국문이 공식화되자 국문 담론장을 형성하면서 시민으로서의 요건을 갖춰 나가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박현모 한중연 선임연구원은 세종 때 정인지 등이 우리나라와 중국의 책에서 정치에 귀감이 될 만한 리더십 사례를 모아 편찬한 ‘치평요람(治平要覽)’으로 세종의 리더십을 조명했다. 박 선임연구원은 발표문 ‘치평요람 편찬과 세종의 지식경영’에서 “세종대왕은 ‘역사로부터 배우겠다’는 취지로 ‘치평요람’ 편찬을 주문했다”며 “‘치평요람’은 인재 등용 창구를 개방하고 인재의 말을 적극 채용하는 군주의 자세를 보여줘 세종의 리더십에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했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학술#훈민정음#세종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