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보다 더 주목받는 시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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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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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출신 메조소프라노 예카테리나 구바노바
‘트리스탄과 이졸데’서 탁월한 가창력 과시

에너지 넘치는 가창, 깔끔한 노래결로 호평 받는 메조소프라노 예카테리나 구바노바. 그는 “재능 많고 정이 넘치는 한국인 성악가들과 친하게 지낸다.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캐슬린 김과 ‘호프만의 이야기’를 같이 하면서 즐거웠고 베를린 슈타츠오퍼에서 연광철과도 종종 무대를 함께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에너지 넘치는 가창, 깔끔한 노래결로 호평 받는 메조소프라노 예카테리나 구바노바. 그는 “재능 많고 정이 넘치는 한국인 성악가들과 친하게 지낸다.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캐슬린 김과 ‘호프만의 이야기’를 같이 하면서 즐거웠고 베를린 슈타츠오퍼에서 연광철과도 종종 무대를 함께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공주보다 더 주목받은 시녀.’

지난달 24일 서울시립교향악단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이졸데 공주의 시녀 브랑게네 역할을 맡았던 러시아 태생의 메조소프라노 예카테리나 구바노바(33)다. 극보다 노래에 초점을 맞춘 오페라 콘체르탄테 형식의 공연이었지만 다른 출연자와 달리 그 혼자만이 악보 없이 노래하면서도 뛰어난 가창력과 자연스러운 연기로 갈채를 이끌어냈다. 그가 21일 서울시향 마스터피스 시리즈 협연자로 다시 한국을 찾아 바그너의 ‘베젠동크 가곡’을 선사한다. 세 번째 방한하는 그를 e메일로 미리 만났다.

구바노바는 성악가로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2005년 프랑스 바스티유 오페라에서 브랑게네 역을 맡았던 때를 꼽았다. 단역이던 그에게 처음으로 주어진 큰 배역이었고 대성공을 거뒀다. 2012∼2013 시즌에도 다니엘 바렌보임, 주빈 메타, 켄트 나가노와 독일 베를린과 뮌헨, 스페인 발렌시아 등 유럽 곳곳에서 브랑게네로 노래하고 있다.

“지금까지 40번쯤 브랑게네를 한 것 같다. 이제 악보를 완전히 외워서 노래하는 걸 즐기게 됐다. 암보로 노래할 때 무대에서 진정한 자유를 느끼고 생생한 캐릭터를 만들 수 있다.”

이번에 부르는 ‘베젠동크 가곡’은 ‘트리스탄과 이졸데’와 철학적 음악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바그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작곡할 당시 자신의 뮤즈이자 친구였던 마틸데 베젠동크 부인의 시 다섯 편에 곡을 붙였다. 그중 ‘온실에서’와 ‘꿈’은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위한 습작이었다.

구바노바는 바그너와 말러에 강점을 지닌 성악가로 꼽힌다. 2010년 2월 한국 데뷔 무대에서도 성시연이 이끄는 서울시향과 함께 말러 ‘대지의 노래’를 들려주었다. “말러와 바그너는 아무리 많이 노래해도 지루하지 않다. 두 작곡가가 음악을 통해 만들어내는 세계가 나를 매혹시킨다. 독일어를 못할 때에도 이들의 음악은 꼭 맞는 장갑처럼 내 음색과 성격에 잘 부합했다. 베를린에 살면서 독일어를 익힌 뒤에는 그 연결고리가 더욱 튼튼해졌다.”

다섯 살에 피아노를 시작한 그는 10대 시절 합창 지휘로 진로를 바꿨다가 17세 때에야 ‘나도 오페라에서 노래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다고 한다. 그는 “성악가의 길은 도전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과감히 첫발을 내디딜 만큼 제법 용감했다”고 회상했다.

독일에서 활약 중인 바리톤 사무엘 윤은 페이스북에 ‘예카테리나가 한국 공연을 가게 돼 무척 좋아한다’고 전해 눈길을 끌었다. 두 사람의 인연도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비롯됐다. 2007∼2008 시즌 바스티유 오페라가 이 작품으로 일본 투어를 하면서 약 한 달간 가족처럼 지냈다는 것. 구바노바는 “사무엘같이 굉장한 멜로트(‘트리스탄과 이졸데’ 속 마르케 왕의 충복)는 지금까지 다시 만난 적이 없다”면서 “그가 일본어를 할 줄 알아서 일본 투어 때 길을 잃지 않으려고 딱 붙어다녔다”고 소개했다.

구바노바는 올해와 내년 시즌 베를린 슈타츠오퍼에서 ‘발퀴레’의 ‘프리카’와 ‘돈 카를로’의 ‘에볼리’를 맡았고 무소륵스키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로 러시아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에 데뷔한다. 내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는 리카르도 무티가 지휘하는 베르디의 ‘레퀴엠’에 출연한다. 21일 오후 8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폴란드의 안토니 비트 지휘. 바그너 ‘로엔그린’ 1, 3막 전주곡,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를 들려준다. 1만∼6만 원. 1588-1210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구바노바#트리스탄과 이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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