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오류 고친 ‘토지’ 정본, ‘공짜’로 바뀐 ‘孔子’ 바로잡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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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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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0곳 수정… 15일 공개

10년의 수정 작업 끝에 박경리 선생의 ‘토지’ 결정판이 빛을 보게 됐다. 9일 원주시 흥업면 토지문화관에서 열린 출간기념회에 참석한 이상만 마로니에북스 대표, 이승윤 방송대 교수, 최유희 중앙대 교수, 김영주 토지문화재단 이사장, 이상진 방송대 교수, 최유찬 연세대 교수, 박상민 가톨릭대 교수(왼쪽부터). 원주=황인찬 기자 hic@donga.com
10년의 수정 작업 끝에 박경리 선생의 ‘토지’ 결정판이 빛을 보게 됐다. 9일 원주시 흥업면 토지문화관에서 열린 출간기념회에 참석한 이상만 마로니에북스 대표, 이승윤 방송대 교수, 최유희 중앙대 교수, 김영주 토지문화재단 이사장, 이상진 방송대 교수, 최유찬 연세대 교수, 박상민 가톨릭대 교수(왼쪽부터). 원주=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질곡의 우리 현대사를 200자 원고지 4만여 장에 꾹꾹 눌러쓴 작품. 박경리 선생(1926∼2008)의 ‘토지’다. 1969년 집필을 시작한 선생은 1994년 8월 15일 완간 때까지 꼬박 25년을 좌식 책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지독한 끈기로 토지를 완간한 노 작가를 축하하기 위해 그해 10월 8일 강원 원주시 단구동 선생의 자택에서 한바탕 잔치가 벌어졌다. 박완서 작가는 환한 웃음과 함께 ‘박 선배’를 끌어안았고, ‘푸릇한 중년’이었던 조정래 박범신 작가도 주뼛대며 한자리를 차지했다. 300여 명의 선후배 문인이 모인, 당시 문단의 최대 행사였다.

잔치는 밤늦게까지 이어졌고, 선생의 얼굴도 큰 짐을 벗은 듯 환했다. 자리가 파할 때쯤 한 기자가 “이젠 무얼 하실 겁니까”라고 묻자 선생은 길게 생각도 않고 답했다. “이제 토지를 수정해야죠.”

박경리 선생은 이 장대한 작품에 수많은 오류가 있음을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이 때문에 생전에 오류와 오자 등을 바로잡은 ‘정본(定本)’의 출간을 원했다. 2002년부터 ‘토지’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상진 이승윤 최유희 조윤아 박상민 등 연구자들로 토지편찬위원회를 꾸려 수정 작업에 들어갔다.

토지는 내용 못지않게 책 자체로도 ‘거친’ 세월을 견뎌냈다. 26년간 현대문학 문학사상 한국문학 주부생활 마당 정경문화 문화일보 등 총 7개 매체를 옮겨 다니며 연재했다. 단행본 판권도 문학사상 삼성출판사 지식산업사 솔출판사 나남출판사 등 5곳을 거쳤다. 각기 다른 편집자의 손을 거치면서 표기법이 통일되지 않았고, 등장인물이 600명이 넘는 탓에 인물의 이름이 뒤바뀌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공자(孔子)’를 ‘공짜’로 옮기는 어이없는 실수도 있었다.

마로니에출판사와 토지편찬위원회는 10여 년의 작업 끝에 각종 오류를 잡은 ‘토지’ 결정본(총 20권)을 완성해 15일 일반에 공개한다. 선생이 토지를 완간한 지 꼭 18년이 되는 날이다. 연재물을 기본으로 여러 단행본들과 비교해 총 6000여 곳을 수정한 ‘토지 정본’이다. 9일 원주시 흥업면 토지문화관에서 열린 출간기념회에 참석한 박경리 선생의 딸 김영주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의 얼굴은 밝았다.

“어머니는 워낙 철두철미하고 꼼꼼한 분이셨어요. ‘이쯤하면 되지 않을까’하는 것들도 어지럼증이 일 정도로 살피고 또 살피셨죠. 한때는 그 철두철미함에 치를 떨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철저함이 어머니의 지금 모습을 가능케 했던 것 같아요. 이제는 그런 (철두철미했던) 모습이 사랑스럽게 느껴집니다.”

10년이 걸린 결정본이다. 선생은 ‘이쯤에서’ 만족하실까. 김 이사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마 어머니가 살아계신다면 지금도 토지를 손보고 계실 거예요. 베스트의 베스트가 나올 때까지요.”

원주=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박경리#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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