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니가타 현 니가타 시에서 열리는 ‘물과 흙의예술제’는 항구도시의 특성을 살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부둣가의 공간을 주 전시장으로 활용했다.[1] 옛 수산회관에 설치된 핑크빛 구조물은 배를 항구로 유도하는 타워를 재현한 작품이다. [2] 버려진 물건으로 도시의 기억을 담아낸 설치작품. [3] 대나무로 만든 대만 작가의 설치작품 ‘불사조’의 내부. 니가타=고미석 전문기자 mskoh119@donga.com
일본 니가타 현 니가타 시 남쪽에 터를 잡은 700년 고찰(古刹) 묘코(妙光)사. 전통가옥 양식에 따라 설계된 본당 옆 건물의 널찍한 다락방에 오르면 ‘八’자 형태의 박공지붕 아래 거대한 흰색 그림이 걸려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물감이 아니라 아이싱(Icing)이라 불리는 제과 제빵용 설탕으로 제작한 현대미술작품이다. 이곳을 찾는 철새와 지역에 사는 식물을 결합한 사사키 아이의 ‘남아있는 이야기들’이란 작품이다.
지금 니가타 시에선 외곽의 오래된 절부터 도심 속 생활공간까지 다양한 공간에서 현대미술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2009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물과 흙의 예술제 2012’ 행사다. 일본과 해외 작가 50여 명의 작품 60여 점을 시 전역에 분산 전시 중이다.
니가타 현 산골마을에서 열리는 ‘대지의 예술제’가 풍요로운 자연에 스며드는 축제라면, 인구 80만 명의 니가타 시에서 마련한 ‘물과 흙의 예술제’는 삭막한 도시공간에 생기를 불어넣고 도시의 당면 문제를 성찰하는 자리다. 연륜이나 지명도에서 ‘대지의 예술제’가 앞서있으나, ‘물과 흙의 예술제’의 경우 잊혀졌던 공간을 새롭게 접근하고 해석함으로써 ‘도시 탐험’의 재미를 느끼게 한다.
일본에서도 같은 현에서 두 예술제가 동시 개최되는 사례는 드물다. 그만큼 문화예술의 힘으로 지역을 살리고 관광산업을 활성화하겠다는 의욕의 표출이란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12월 24일까지. www.mizu-tsuchi.jp
○ 기억을 찾아서
항구 도시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이번 예술제에선 새 건물로 이전하면서 한동안 비어있던 수산물하역장, 경매장, 수산회관 등을 주 전시장으로 활용했다. 항구를 마주보는 거대한 창고 같은 공간 속에 그물, 장화, 생선 박스, 비옷 등 항구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손때 묻은 물건과 잡동사니가 고스란히 남아 존재와 부재를 일깨운다. 이렇듯 노동의 흔적과 지역의 자취를 보여주는 장소에 작품들이 하나로 녹아든다. 부서진 민가를 옮겨와 재조립한 작품, 배에서 사용하는 굵은 로프와 해수를 이용해 30분마다 한 번씩 비를 내려주는 설치작품, 시나노 강 하류에서 원류로 거슬러 올라가며 삶과 풍광을 기록한 영상작품 등.
이웃한 옛 수산회관 건물에도 지역의 기억을 다채로운 작품으로 표현하고 있다. 강물과 바다가 만나는 지역의 풍경을 흰색과 푸른색 그물로 엇갈리게 표현한 설치작품, 항구에 들어오는 배를 유도하던 사람들이 일했던 구조물을 재구성한 분홍색 타워가 시선을 끈다. 1960년대 중반 수질오염으로 인해 니가타에서 발생했던 수은중독병(미나마타병)을 소재로 한 영상작품은 도시의 공해 문제를 돌아보게 한다.
예술제의 프로듀서 오가와 히로유키 씨(50)는 “도심 속에 자리한 오래된 공간 자체가 니가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주는 소재”라며 “작가들에게 도시의 특성과 기억을 작품에 담도록 요청해 지역밀착형 작품이 다수 나왔다”고 말했다.
○ 지역에 대한 경의
주 전시장을 나오면 도시 구석구석까지 퍼져 있는 작품을 보기 위해 발품을 팔아야 한다. 이 예술제는 단순한 작품 관람을 넘어서 지역의 음식 풍경 문화 역사를 함께 음미하고 즐겨보라는 ‘느림의 미학’을 제안하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도 시나노 강가에 자리한 대만작가 왕원즈의 대형 대나무 설치작품은 시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발생한 지진의 시련을 뛰어넘자는 뜻에서 ‘불사조’로 명명된 작품은 대나무와 지역 사람들이 모아준 헌 옷가지를 엮어 인간과 인간의 서로 얽힌 관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학생들이 농촌체험을 할 수 있는 니가타 시의 푸드플라워센터 앞에는 재일작가 김태범 씨의 설치작품 ‘대지의 울림’이 설치됐다. 그는 일본 1위의 벼 수확량을 자랑하는 고장의 특성을 감안해 오래된 농기구를 시소처럼 개조한 작품을 발표했다. 기구 안에 돌과 구슬이 담겨있어 관객이 작품을 움직이면 소리가 난다.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한 사이토 빌라에선 전통 건축과 현대미술의 조화를 접할 수 있다. 세계적인 패스트푸드점의 1회용 종이봉투를 오려 만든 한 그루 나무가 정원 풍경과 절묘한 호흡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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