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로 나무에 새긴 판화가 회화보다 더 정교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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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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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 ‘십자군 이야기’에 실린 佛 귀스타브 도레 판화展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에 실린 귀스타브 도레의 ‘살라딘의 등장’. 유럽의 2차 십자군 원정 이후 살라딘(말 탄 인물)이 이슬람 세계 통합을 이룬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문학동네 제공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에 실린 귀스타브 도레의 ‘살라딘의 등장’. 유럽의 2차 십자군 원정 이후 살라딘(말 탄 인물)이 이슬람 세계 통합을 이룬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문학동네 제공
철그렁거리는 갑옷들의 금속음, 군마들의 말발굽 소리와 거친 숨소리, 칼과 창이 맞부딪치는 소리, 군인들의 비명과 함성…. 십자군 전쟁의 생생한 장면을 정교한 터치로 되살려낸 19세기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도레(1832∼1883)의 판화작품 전시회가 열린다.

출판사 문학동네가 18∼23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 이즈에서 여는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시리즈 판화 전시회다. 이 판화들은 본디 프랑수아 미쇼의 ‘십자군의 역사’에 실렸던 작품으로, 국내에서 시오노의 ‘십자군 전쟁’이 출판되면서 이 책의 삽화로 실렸다.

도레는 15세였던 1847년 풍자지 ‘주르날 푸르 리르(Journal pour Rire)’의 삽화가로 활동을 시작해 그리스로마 신화, ‘성서’, 단테의 ‘신곡’,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발자크와 바이런의 문학작품에 실린 판화를 제작했다. 작품 수는 1만 점 이상이고 그의 판화가 실린 책만 221권이나 된다.

독특한 판타지 스타일, 극적 장면 연출, 종합적인 구성으로 서사 삽화의 최고봉에 올랐던 그의 작품은 현대 일러스트 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19세기 프랑스 부르주아들 사이에서는 도레의 그림을 걸어두는 게 유행일 정도로 생전에 이미 인기를 끌었다.

그의 판화는 목판에 원화를 그리고 전용 조각도인 ‘뷰린’으로 그림을 새기는 ‘우드 인그레이빙(wood engraving)’ 기법으로 제작돼 극도의 세밀함과 정교함을 자랑한다. 19세기 후반에 급속도로 발달한 사진술의 대량 보급으로 고도의 집중력과 오랜 작업시간을 요하는 이 판화 기법은 예술작품으로서만 명맥이 유지돼왔다.

강명효 문학동네 기획실장은 “이번 전시회에 소개되는 도레의 판화 작품은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원본보다 훨씬 큰 사이즈로 확대한 것으로, 실제로 우드 인그레이빙 작품은 확대경으로 감상해야만 정교한 디테일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관람료 없음. 02-736-6669

지난달 초 경기 파주시 헤이리 예술마을에 개관한 한길책박물관도 도레의 삽화가 실린 책과 판화 원본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돈키호테’ ‘라퐁텐 우화집’ ‘성서’ ‘런던’ ‘아라비안나이트’ 등 도레의 명성을 결정적으로 끌어올린 책과 삽화들을 만날 수 있다. 이외에도 한길책박물관은 16, 17세기 유럽의 아름다운 고서들, 18, 19세기 출판인쇄술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판화와 신문, 잡지 등 역사적 출판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한길책박물관은 영국의 시인이자 공예가, 북디자이너였던 윌리엄 모리스(1834∼1896)가 세운 출판사 켐스콧 프레스가 만들어낸 53종 66권의 출간도서 전종을 소장하고 있다. 모리스가 평생의 예술동지였던 번 존스와 함께 만든 ‘초서 저작집’을 비롯해 ‘윌리엄 모리스의 예술’ ‘모리스 전집’ 등도 볼 수 있다. 이 밖에 윌리엄 터너와 윌리엄 호가스의 대형 판화집, 19세기 후반에 간행된 잡지 ‘옐로 북(Yellow Book)’, 26세로 요절한 삽화가 비어즐리의 책들, 20권으로 구성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등 진귀한 옛 책 200여 종도 감상할 수 있다. 한길책박물관의 김혜현 학예사는 “후안 미로, 훈데르트바서, 살바도르 달리 등 거장들이 삽화를 그린 세계 각국의 ‘성서’를 비교 감상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관람료 5000원. 031-949-9786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십자군 이야기#귀스타브 도레#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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