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노래자랑’, 지나간 히트 가요 줄줄이… 관객의 허 찌르는 익살
‘콩칠팔새삼륙’, 실제사건 바탕 국악-양악-민요-트로트 조화
유희적 대중성 눈길 ‘전국노래자랑’
최근 국내에선 탄탄한 스토리로 무장한 토종 영화와 토종 드라마가 인기다. 한국영화의 르네상스가 다시 도래했다는 말도 들리고 드라마 역시 ‘미드(미국 드라마)’의 높은 완성도를 성취했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이와 달리 국내 뮤지컬 시장은 온통 ‘위키드’처럼 직수입된 뮤지컬이나 ‘시카고’와 ‘맨 오브 라만차’, ‘모차르트!’ 등 해외 원작 라이선스 뮤지컬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 창작뮤지컬로 공연되는 작품 중에도 뮤비컬(영화 원작 뮤지컬) 노블컬(소설 원작 뮤지컬) 드라마컬(드라마 원작 뮤지컬)이 대다수다.
이런 가운데 창작이란 이름에 걸맞은 두 편의 뮤지컬 신작이 무대에 올랐다.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공연 중인 중극장 뮤지컬 ‘전국노래자랑’(성재준 작·연출)과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에서 공연 중인 소극장 뮤지컬 ‘콩칠팔새삼륙’(이수진 작·주지희 연출)이다.
두 작품은 철저히 한국적인 것을 소재로 삼았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전국노래자랑은 1980년 탄생해 32년째 방송돼온 동명의 장수 TV프로그램을 소재로 했다. 25년 전 사랑하는 여인에게 프러포즈 하러 이 프로그램에 출전했다가 철천지원수가 된 두 친구 김 회장네와 이 회장네가 가문의 명예를 걸고 25년 뒤 같은 프로그램에서 우승하려 경쟁을 펼친다는 내용이다.
1930년대 여성동성애 다룬 ‘콩칠팔새삼륙’콩칠팔…은 1931년 영등포역에서 기차에 몸을 던져 동반 자살한 두 여학생 홍옥임과 김용주의 비극적 사연을 소재로 했다. 작품 제목은 작곡가 홍난파의 조카였던 홍옥임이 작사하고 훗날 홍난파가 곡을 붙인 동요의 제목에서 따왔다. ‘남의 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모습’을 빗댄 우리 옛말이다.
음악이 한국적이라는 점도 닮았다. 전국노래자랑은 샌드 페블즈의 ‘나 어떡해’(1977년 작)부터 엠블랙의 ‘전쟁이야’(2012년)까지 한국인이라면 노래방에서 한번쯤은 불러봄 직한 히트 가요 20여 곡을 엮은 케이팝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콩칠팔…은 국악과 양악, 민요와 트로트가 뒤섞인 1930년대 경성의 복고풍 선율을 세련되게 뽑은 노래가 최고의 무기다. 영국 왕립음악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다 미국 뉴욕대에서 뮤지컬 작곡을 공부하고 온 신예 이나오 씨(31)가 작사, 작곡한 음악과 노래는 스티븐 손드하임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두 작품은 갈린다. 인기곡 위주의 주크박스 뮤지컬은 대중적이긴 하지만 이야기가 성글다. 반면 브로드웨이가 배출한 진짜 천재로 꼽히는 손드하임 풍의 뮤지컬은 독창성은 뛰어나도 대중성은 떨어진다.
흥미롭게도 두 작품의 제작진은 이런 태생적 한계를 정확히 꿰뚫고 있다. 그래서 전국노래자랑은 스토리의 진부함을 캐릭터와 스타일의 유희로 돌파한다. 김원준의 ‘쇼’와 임상아의 ‘뮤지컬’, 싸이의 ‘연예인’처럼 무대와 딱 어울리는 곡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분위기를 고조시키다가 솔리드의 ‘이 밤의 끝을 잡고’를 혀 짧은 발음으로 풀어내고 윤복희의 ‘여러분’을 사이비 교주의 설교 장면에 들려주는 식의 익살스러운 상황극으로 관객의 허를 찌른다. 또한 가창력 위주로 선발된 남녀 주연배우보다 멀티맨으로 등장하는 정상훈과 백주희 등의 익살스러운 캐릭터 연기를 전면에 내세운다.
반면 콩칠팔…은 한국관객들이 선호하는 동성애 코드를 여성 동성애로 바꾸면서 관객들이 쉽게 따라올 수 있게 당시 사건에만 충실하게 이야기를 풀어냈다. 하지만 드라마가 두 여성의 깊은 속내를 끌어내지 못한 채 너무 쉽게 자살로 귀결되다 보니 ‘사랑 때문에 죽다’라는 소녀 취향의 낭만성을 극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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