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미학이 둥지 튼 곳, 남도의 넉넉함 일깨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3일 03시 00분


光州시립미술관 20주년 기념 ‘두 개의 모더니즘’ ‘진(進).통(通).…’展

국내 공립미술관 중 가장 먼저 설립된 광주시립미술관이 개관 20주년 특별전 ‘진통.-1990년대 이후 한국현대미술’전에 선보인 손봉채 씨의 입체그림. 한국 미술의 흐름 속에서 남도 미학을 조명하고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새롭게 자리매김하는 전시다. 광주=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국내 공립미술관 중 가장 먼저 설립된 광주시립미술관이 개관 20주년 특별전 ‘진통.-1990년대 이후 한국현대미술’전에 선보인 손봉채 씨의 입체그림. 한국 미술의 흐름 속에서 남도 미학을 조명하고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새롭게 자리매김하는 전시다. 광주=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카터 레이건 클린턴 등 타임지에 등장했던 미국 대통령 얼굴을 흑백으로 확대한 표지가 줄줄이 걸려 있다. 왠지 낯설어 살펴보면 코 위는 대통령 얼굴, 아래쪽은 낯선 남자의 모습이다. 대통령 사진을 거울로 가리고 자기 얼굴을 비춰 찍은 재일작가 곽덕준 씨(75)의 ‘대통령과 곽’ 연작이다. 막강한 권력자와 예술가를 하나로 뭉뚱그린 사진은 사회적 진실처럼 제시된 많은 것이 허구이자 난센스란 것을 일깨운다.

광주 북구 하서로 중외공원에 자리한 광주시립미술관(관장 황영성)이 기획한 곽덕준전(15일까지)은 온전히 소장품만으로 구성된 전시다. 유리판에 얼굴을 짓이겨 일그러진 형상을 보여준 ‘자화상’, 작가의 분신 같은 남자가 반복 등장하는 ‘무의미’ 등 1970∼90년대 주요 작품 53점은 모두 재일교포 하정웅 명예관장이 기증한 작업이다. 하 씨는 1993년부터 4차에 걸쳐 2222점을 미술관에 기증했고, 그 덕분에 이곳은 우리나라 공립미술관 중 최대 규모 컬렉션(3581점)을 자랑하게 됐다.

곽덕준 개인전과 더불어 지금 이곳에선 주목할 만한 2개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8월 19일까지 열리는 ‘두 개의 모더니즘’과 ‘진(進).통(通).-1990년대 이후 한국현대미술’전. 지역 미술인들의 열망을 토대로 1992년 전국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공립미술관으로 개관 20주년을 자축하는 자리다. 빠르게 성장해온 지역 미술관으로서 새 좌표를 설정하기 위한 의욕적인 전시들이다. 062-613-7100

○ 지역 미술, 날개를 달다

‘두 개의 모더니즘’전은 회화 중심으로 근대 이후 모더니즘의 흐름을 보여주고, ‘진.통.’전은 개관 이후 한국현대미술과 광주 미술의 변화를 동시에 짚고 있다. 전시 주제는 달라도 둘 다 남도 미학의 고유성과 독창성을 드러내고, 지역 작가들을 한국 미술 지형도에 자리매김하기 위한 시도란 점에서 신선했다.

추상과 풍경화에 있어 남도 미학에 초점을 맞춘 모더니즘 전에선 서울 중심으로 기술된 한국미술사에서 제대로 조명 받지 못했던 지역 작가들의 위상을 바로 세우고자 했다. 추상의 경우 광복 이후 남도 추상의 씨앗을 뿌린 강용운, 그 뒤를 이은 양수아를 통해 뿌리내린 남도 추상의 전통, 1964년 창립된 ‘에포크’의 앵포르멜 추상운동을 재조명했다. 구상에선 밝고 맑은 한국의 색채가 특징적인 남도 풍경화를 풍성하게 만날 수 있다.

‘진.통.’전은 1990년대 이후 미술의 특징을 ‘일상의 변용’ ‘테크놀로지의 활용’ 등 4가지 주제로 나누면서 한국 현대미술에서 광주 미술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점검한다. 이재효 홍경택 이명호 권기수 권오상 등과 함께 김광철 이이남 강운 송필용 윤남웅 등 지역에 머물며 활약 중인 작가들을 나란히 선보였다. 육태진, 육근병의 영상작품과 사진자료도 흥미롭다.

○ ‘기도의 미술’, 안식처를 찾다

하정웅 컬렉션전에서 선보인 재일작가 곽덕준 씨의 ‘대통령과 곽’ 연작.
하정웅 컬렉션전에서 선보인 재일작가 곽덕준 씨의 ‘대통령과 곽’ 연작.
광주시립미술관은 곽인식 전화황 등 재일작가들과 이우환 씨 작품을 국내에서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 처절한 고난의 길을 걸어온 재일교포의 삶을 증언한 작업, 인권을 주제로 한 작품을 수집해온 하 씨 덕분이다. 그의 컬렉션은 소외되고 희생된 사람들, 학대받은 이들을 치유하고 위로하기 위한 염원을 담고 있어 ‘기도의 미술’로 일컬어진다. 컬렉션 자체도 테마를 가진 하나의 작품인 셈이다.

하정웅 컬렉션을 탄탄한 둥지로 삼은 미술관은 이제 인권과 민주화의 상징적 도시인 광주에 걸맞게 차별화된 미술관으로 도약을 꿈꾸고 있다. 황영성 관장은 “공립미술관 최초의 창작 스튜디오 운영, 지역 작가를 알리기 위한 서울 갤러리의 운영 등 선도적 역할을 해왔다는 데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낀다”며 “앞으로 지역 미술의 발전을 도모하고 미술관을 통해 아름다운 감성을 키울 수 있도록 시민의 행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을 것”이라고 말한다. 예로부터 현대까지 예술을 넉넉하게 품은 예향이자 광주비엔날레가 열리는 국제 미술의 도시 광주. 그 정신과 가치를 이어받기 위해 미술관이 내세운 ‘광주가 아름답다’는 문구에는 문화도시를 꿈꾸는 열망이 녹아 있다.

광주=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미술#전시#광주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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