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호 선생 3개 여행권 분석… 해외 독립운동 30년 여정 살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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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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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에만 러→獨→英→美 돌며 독립운동
김도형 독립기념관 연구위원 분석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1878∼1938)은 미국 중국 러시아 멕시코 필리핀 등 세계 곳곳을 누비며 재외동포들을 결집하고 독립운동을 펼쳤다. 당시 도산이 소지했던 여행권(여권)을 통해 그의 구체적인 독립운동 여정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30년 넘게 여행권에 기록된 것만 따져도 지구 한 바퀴(약 4만 km)를 거뜬히 돌고도 남는다.

김도형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독립기념관에 소장된 도산의 여행권 3개를 바탕으로 그의 독립운동 여정을 따라갔다. 여권이라는 용어는 일제강점기에 등장한 일본식 용어이며 당시 해외 한국인들은 이를 여행권·집조(執照)·호조(護照)라고 썼다. 김 연구위원은 “도산은 독립운동가 가운데 가장 많은 여행권을 사용한 인물”이라며 “평생 4, 5개의 여행권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3개만 전해진다”고 밝혔다. 그는 이 연구 결과를 15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도산안창호기념관에서 열리는 제37회 도산학회 정기 연구발표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김 연구위원의 발표문 ‘도산 안창호의 여행권을 통해 본 독립운동 행적’에 따르면 도산은 1902년 8월 대한제국 외부(外部)에서 ‘집조’를 발급받았다. 도산과 부인 이혜련 여사는 이 집조를 갖고 일본과 캐나다 밴쿠버, 미국 시애틀을 거쳐 1902년 10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도산은 미국에서 재미 한인들을 모아 독립운동단체인 공립협회를 만드는 등 활발히 활동했다.

미국을 떠나 1907년 2월에 귀국한 뒤에는 신민회를 창설하는 등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했다. 이어 일제의 회유와 감시망을 피해 1910년 4월 중국 칭다오(靑島)로 갔다.

도산은 1910년 8월 중국 상하이(上海)를 거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으며 연해주와 흑룡주 일대에서 국민회 조직을 확장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911년 1월에는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청국 총영사관에서 ‘호조’를 발급받아 중국에 갔다. 특히 1911년 5∼8월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만주 무링, 러시아 치타, 이르쿠츠크,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독일 베를린을 거쳐 영국 런던에 도착했다. 이어 런던에서 배를 타고 그해 9월 미국 뉴욕에 도착해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로 내려갔다. 1911년 한 해에만 태평양을 제외하고 거의 지구 한 바퀴를 돈 셈이다.

도산은 멕시코 한인들의 초청으로 1917년 10월∼1918년 8월 멕시코 전역을 순회하며 한인사회의 독립운동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1919년 5월에는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활동했고 1925년 4∼7월에는 미국 동부지역을 순회하며 교포들에게 연설을 했다. 1929년 2, 3월에는 필리핀에서 한인단체 ‘대한인국민회 필리핀지부’를 설립해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마닐라에서 삼일절 기념행사도 거행했다. 1932년 상하이 훙커우(虹口)공원에서 윤봉길 선생의 의거가 일어난 뒤 도산은 일본 경찰에 체포돼 국내로 송환 및 투옥되면서 긴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김 연구위원은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여권을 발급받아야 했으나 도산은 대한제국의 신민이라며 대한제국에서 발급한 여행권을 들고 세계를 누볐다”며 “1924년 이전까지는 세계적으로 여행권이 제도화되지 않은 데다 도산은 정치망명가라는 이유로 입국이 허용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역사#안창호#안창호 선생 여정#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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