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뒤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평균적으로 34∼35주가 걸린다. 기다림보다 고통스러운 것은 ‘혹시 태아의 건강에 이상은 없을까’란 근거 없는 걱정이다. 그럴수록 더 요구되는 게 바로 ‘선구안’이다.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검사만 골라 받는 현명함을 발휘해보자. 동아일보DB
“2주 전 2차 기형아 검사에서 다운증후군 초고위험군 (결과가) 나와서 눈물바다 되었던 34세 ‘둘째 맘’이에요. 11주에 1차 (검사를) 했고, 13주 5일에 2차를 했었죠. 양수 검사를 할 때 하더라도 재검 받으면 안 되냐고 했더니 ‘임신부 나이가 많은 거다. 재검은 의미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바로 다음 날 다른 병원을 찾아갔어요. 17주에 재검을 했고 19주 들어가는 오늘 아침에 전화를 받았네요. 정상이라고 마음 편하게 태교하라고요. 너무너무 감사해서 또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마음 졸이고 기다린 3주, 정말 지옥이었습니다.”
7일 오후 한 누리꾼이 인터넷 육아카페에 쓴 글이다(일부 생략 및 수정). 회원이 170여만 명인 이 카페에는 각종 검사와 관련한 경험담이 수시로 올라온다. 그만큼 임신부들에겐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이다. 카페 회원들은 이런 글에 함께 울분을 토하기도 하고, 자신만의 노하우도 선뜻 전수한다. 비슷한 처지의 회원은 ‘선배’에게 조언을 구한다. 위 글에도 댓글이 달렸다.
“전 만 35세이고 둘째인데, 1차 검사 결과 나이에 따른 고위험군으로 나왔어요. 의사 선생님은 1차 검사 하는 날 나이만 보고 양수 검사 얘기를 꺼냈고, 오늘 잠깐 뵀는데 2차 역시 고위험군으로 나올 게 뻔하다는 식으로 얘기하시니 어찌 할지 너무 고민스러워요. 저도 다른 병원에서 재검 받아야 할까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임신부의 고민이 절절하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비록 얼굴도 모르는 사이지만 ‘선배’의 경험을 따라 병원을 옮길 것인가, 아니면 지금껏 자신과 태아의 건강을 맡겼던 산부인과를 계속 믿어볼 텐가.
○ 고령 임신부 급증이 검사 홍수 낳아
세계보건기구(WHO)는 1985년부터 만 35세 이상을 ‘고령 임신부’로 정의했다.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결혼 연령도 점차 늦어지면서 이 기준을 35∼40세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들도 나온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는 만 35세가 넘어서 임신한 경우는 특별히 건강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특히 초산인 경우에는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 더 많다.
2010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47만171명의 아기가 태어났다. 이 중 산모가 만 35세 이상인 경우는 8만126명으로 전체 출생자의 17.0%에 해당한다. 이 비율은 1990년 2.5%, 2000년에는 6.7%였다. ‘고령 임신부’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데, 최근 들어 증가 추세가 더 가파르다는 얘기다. 게다가 만 35세 이상이면서 초산인 경우는 2010년 2만3577명으로 2000년(1만593명)의 2배 이상, 1990년(4561명)의 5배 이상이다.
당연히 태아와 관련된 각종 검사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서울 중구 묵정동의 제일병원은 ‘고위험군’ 임신부가 특히 많은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 병원의 2010년 전체 분만 건수는 6697건이었다. 이 중 임신부 나이가 40세 이상인 경우가 4.6%(2009년 3.3%)였고, 35∼39세는 30.9%(2009년 25.5%)나 됐다.
제일병원의 통계분석에 따르면 임신부가 35세 이상인 경우 임신성당뇨(5.4%)와 전치태반(태반이 자궁 출구에 매우 근접해 있거나 출구를 덮고 있는 경우·3.1%), 유착태반(자궁 속 막에 염증 또는 다른 이상이 생겨 태반의 일부나 전부가 자궁에 유착된 경우·1.3%) 가능성이 35세 미만보다 컸다. 고령 임신부가 초산인 경우엔 임신중독증(3.3%) 사례도 많았다. 기형아 출산 확률도 마찬가지다. 이 병원 류현미 교수는 “다운증후군은 난자나 정자가 만들어지는 감수분열 과정에서 돌연변이가 발생하기 때문에 생긴다”며 “임신부의 나이에 비례해 그 가능성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임신부가 고령인 경우 임신부는 물론이고 태아의 건강도 함께 우려된다. 실제 제일병원에서 태아의 염색체 검사를 받은 임신부들 중 검사 이유가 ‘고령 임신’인 경우가 70% 안팎이었다. 물론 고령이라고 무조건 태아에게 이상이 발견된다는 건 아니다. 고령 임신을 이유로 태아 염색체 검사를 받은 결과 실제 염색체 이상이 발견된 것은 2009∼2010년 3.9%에 불과했다. 물론 높다고 한다면 높은 수치다. 그러나 이는 ‘가족력이나 과거력이 있어서’(22.9%) 또는 ‘태아초음파 검사 결과 이상이 발견돼서’(18.0%) 염색체 검사를 했을 때의 빈도보다는 훨씬 낮다. 신중한 것과 지레 겁을 먹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 받을지 말지 고민되는 태아 검사들
세상에는 ‘하늘이 두 쪽 나도 꼭 받아야 하는 검사’라는 건 없다. 병원에서는 질병의 가능성을 미리 살펴보려 검사를 한다. 기형아 검사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몸도 무겁고 정신적으로도 잔뜩 긴장한 채 40주를 버텨야 하는 임신부들에게 잦은 검사는 큰 스트레스가 된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래도 태아 검사는 배 속 아기의 건강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고픈 예비 부모에겐 쉽게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임신부들은 검사를 받고 마치 모의고사 성적발표를 기다리는 학생처럼 초조해한다. 그런데 만에 하나 검사 결과가 나쁘기라도 하면(이를테면 ‘다운증후군 위험도가 높다’ 등) 출산 때까지의 불안감은 정말 고통스럽다. 처음 언급한 누리꾼의 글에서처럼 말이다.
동아일보 주말섹션 ‘O₂’가 가장 널리 활용되는 태아 검사법에 관해 전문가들로부터 들어본 설명은 다음과 같다. 예비 부모들의 선택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다. ①양수 검사 이 검사의 가장 큰 장점은 ‘확률적 가능성’이 아닌 ‘확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반면 매우 비싸고(60만∼100만 원), 낮긴 하지만 검사로 인한 태아 유산 가능성(0.2∼0.3%)이 있는 게 단점이다. 양수에는 태아의 성장을 돕는 물질들과 함께 태아로부터 떨어져 나온 세포들이 섞여 있다. 그래서 태아의 염색체 검사가 가능하다. 문제는 배 속을 찌르는 주사기. 이것이 태아를 다치게 할 수 있고 양수 내에 염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대 의대 산부인과학교실의 윤보현 교수는 “지난 20년 가까이 수많은 양수 검사를 했는데, 검사로 인한 사고는 거의 보지 못했다”며 “초음파 기술 발달로 배 속이 훤히 보여 양수를 뽑는 것은 바다에서 물을 뜨는 것처럼 간단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류 교수는 “임신부가 고령이면 일단 혈액 검사 없이 양수 검사를 바로 고려하도록 한다”고 말했다.
②통합검사법 이는 11∼13주에 하는 혈액 검사(임신 연관 단백질 분석) 및 초음파 검사(태아의 목덜미 투명대 두께 측정·3mm 이상이면 기형 가능성)와 15∼22주의 쿼드테스트(태아 당단백질, 에스트리올, 융모막성선자극호르몬, 인히빈 등 4가지 측정)를 통합해 진단 결과를 내놓는 방식이다. 이 방법은 다운증후군의 80% 이상을 진단할 수 있다. 양수 검사가 ‘확진’을 위한 검사라면 이것은 ‘고위험군’ 구분을 위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검사 결과 ‘양성’이 나오면 양수 검사 등 염색체 검사를 받아야 한다. 쿼드테스트에서 양성이 나오면 양수 검사를 했을 때 5명 중 1명이 실제로 다운증후군으로 확진된다. 기존 트리플테스트(쿼드테스트에서 인히빈 제외)의 양성 결과자 49명 중 1명에서만 다운증후군이 확인되는 것에 비해 훨씬 높은 확률이다. 35세 미만 임신부들은 통합검사를 통과하면 ‘비싸고 오래 걸리는’ 양수 검사를 피할 수 있다는 얘기다. 어차피 양수 검사를 받는 편이 나은 고령 임신부는 이 검사를 건너뛰기도 한다.
③임신성당뇨 검사 임신성당뇨는 선천성 기형(뇌, 폐), 출생 시 손상, 사산 등 신생아에게 직접적 영향을 끼칠 수 있어 조기 발견이 중요하다. 이 검사는 보통 24∼28주에 할 수 있는데, 선별검사에서 dL당 130mg 이상의 결과가 나오면 추가적인 진단검사를 받아야 한다. 고령 임신부일수록 임신성당뇨 가능성도 높기 때문에 조기에 발견해 꾸준히 당 조절을 하는 게 중요하다. 이 밖에 임신 28주 안팎이 되면 태아의 장기가 완성되기 때문에 3차원(3D) 초음파 검사를 권하는 병원도 꽤 있다. 그러나 일부 의사의 경우 “2D로도 정밀초음파 검사가 충분하므로 3D는 의학적인 의미보다는 예비 부모에 대한 서비스 차원”이라고 조언한다. 필수적인 사항은 아니라는 말이다.
어쨌든 모든 결정은 예비 부모 스스로의 책임이다. 그런데 어디선가 언급된 ‘부정확한 말’이 인터넷 공간을 떠돌다 보면 어느새 ‘확실한 정보’로 둔갑하는 경우가 많다. 한 가지만 명심하자. 너무 많은 정보는 오히려 판단력을 흐리게 할 수 있다.
P.S. 양수 검사에서 기형아가 확진됐다고 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2009년 모자보건법 개정으로 낙태 가능 시기는 ‘임신 28주 이내’에서 ‘24주 이내’로 당겨졌다. 임신 15∼20주에 시행하는 양수 검사는 결과가 나오려면 2, 3주가 소요돼 이 시기를 넘길 수도 있다. 또 이 기간 안이라도 태아의 질병이 의심된다고 임의로 낙태할 수도 없다. 전염성 질환을 앓고 있거나 성폭행(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해 임신한 경우,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등 몇 가지만이 법이 허용한 예외 조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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