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슈]항공기 안전의 든든한 지휘탑, 대한항공 통제센터 가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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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센터, 적재중량-항로-기상정보 꼼꼼 체크하는 ‘지상의 콕핏’

대한항공 통제센터 직원들이 대형 스크린 앞에서 북태평양 항로의 기상 상황에 대해 토의하고 있다. 반병호 통제센터 부장(손을 들고 있는 사람)은 “지연이나 결항은 안전운항과 승객 편의를 위해 내리는 불가피한 결정”이라며 “그런 점을 승객들께서 널리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대한항공 통제센터 직원들이 대형 스크린 앞에서 북태평양 항로의 기상 상황에 대해 토의하고 있다. 반병호 통제센터 부장(손을 들고 있는 사람)은 “지연이나 결항은 안전운항과 승객 편의를 위해 내리는 불가피한 결정”이라며 “그런 점을 승객들께서 널리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이 기사를 읽고 있는 당신이 다음 주 금요일 서울에서 미국 뉴욕에 간다고 합시다. 이미 여권이 있다면 항공권만 끊어 비행기에 타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항공사가 비행을 준비하고 관리하는 과정에 당신이 전혀 예상치도 못한 작업들이 이뤄집니다. 정비나 청소같이 흔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은 아니랍니다. 당신의 안전과 정시 도착을 좌우하는 아주 중요한 일들이죠.

○ 출발 72∼48시간 전

항공사에선 모든 운항에 대해 사전에 비행계획을 짭니다. 얼마나 많은 승객과 화물을 실을 것이고, 연료는 얼마나 필요하며, 어떤 항로를 얼마만큼의 고도로 비행할지, 승무원은 누구를 태울 것인지 등을 정하지요. 이 계획은 비행 72시간 전에 통제센터(OCC·Operations Control Center)라는 곳으로 넘어갑니다. 통제센터는 항공기의 이륙 준비부터 비행, 착륙까지의 모든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운항에 필요한 날씨 등의 정보를 항공기에 제공하는 곳이지요. 공군의 작전사령부처럼 하늘에 있는 항공기들의 움직임을 한눈에 파악하고 통제합니다.

통제센터의 운항통제 업무는 기본적으로 항공기 출발 48시간 전부터 시작됩니다. 먼저 기상 상황과 현지 사정 등을 고려해 운항 여부를 결정합니다. 만약 날씨가 나쁘거나 파업, 폭동 등의 불안요소가 있으면 운항을 취소 또는 연기합니다.

○ 지상에도 ‘조종사’가 있다


드디어 당신이 뉴욕으로 떠나는 날입니다. 출발 4시간 전까지 통제센터는 최신 자료를 반영해 비행계획을 다시 짜 놓았습니다. 항로가 북극권을 지나는 것에서 러시아의 캄차카 반도를 지나는 것으로 바뀌었군요. 이제 비행기가 이륙합니다.

김포공항 안에 있는 대한항공 통제센터로 시선을 옮겨 봅시다. 통제센터 안에는 폭이 10m쯤 되는 커다란 스크린이 있습니다. 그중 가장 큰 화면엔 북태평양을 중심으로 아시아와 북아메리카가 보이는 큰 지도가 떠 있습니다. 당신이 탄 비행기 등 항공기 수십 대의 위치가 표시돼 있군요. 당신의 비행기는 이제 막 일본 상공을 지났네요. FL350이란 숫자가 붙어 있는 걸 보니 고도는 3만5000피트입니다. 스크린에는 구름의 위치와 고도, 제트기류의 풍속과 고도, 빨간 반원이 붙은 온난전선과 파란 세모가 붙은 한랭전선의 위치도 표시돼 있습니다.

비행 중인 항공기의 모든 운항정보(항로와 특정 지역 통과 시간, 고도, 연료량 등)가 거의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됩니다. 만약 사전에 세워둔 비행계획과 크게 차이 나는 부분이 생기면 자동으로 경보가 울립니다.

비행계획 수립과 운항 모니터링, 기상정보 제공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운항관리사입니다. 이들은 ‘지상의 조종사’라고도 불립니다. 물론 비행기 운항의 최종적인 결정권은 기장의 고유 권한이지요. 하지만 운항 중인 항공기 안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이 매우 제한적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운항관리사의 역할을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 20분 뒤 돌풍, 고도를 높이세요

바로 그 사례를 볼 수 있네요. 당신이 탄 비행기의 기장에게 문자메시지가 도착합니다. “20분 뒤 동경 OOO도에서 △△△도 사이에 천둥번개를 동반한 돌풍 출현.” 통제센터는 고도를 높여 돌풍의 영향권을 피해갈 것을 권유합니다. 물론 위성전화로 통화할 수도 있지만 채팅을 하듯 문자메시지를 교환하는 게 더 편리하고 비용도 적게 든답니다.

날씨는 비행기의 안전 운항에 매우 큰 영향을 주는 요소입니다. ‘비정상 운항’의 70%가 기상 때문에 생기거든요. 날씨는 변화무쌍하기도 하지만 한곳의 기상 변화가 꽤 먼 다른 곳의 날씨에 영향을 미치는 ‘나비효과’도 종종 일어납니다.

지난해 6월, 칠레에서 푸예우에 화산이 폭발했습니다. 대한항공에선 브라질 상파울루로 가는 정기편 운항이 지장을 받을까 큰 걱정을 했답니다. 화산재가 비행기 엔진에 흡착되면 엔진이 멈춰 버리거든요. 다행히 브라질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구 반대편의 호주 항로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제트기류를 타고 온 화산재가 열흘 만에 호주 상공에 나타난 것이죠. 예전 같으면 운항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정밀한 기상정보 덕분에 안전한 운항이 가능했지요. 대한항공 통제센터는 호주 시드니행 항공기가 평소 3만7000피트인 비행고도를 화산재 영향이 없는 2만1000피트로 낮추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혹시 모를 경우에 대비해 해가 뜬 후 비행하도록(시야 확보가 가능하도록) 출발을 1시간 반 늦췄습니다.

요즘엔 우주의 기상 상황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태양의 흑점이 폭발하면 강한 전자기장이 발생해 통신장애가 생길 확률이 커지기 때문이지요. 특히 북위 70도 이상의 극지방엔 지구 자기장이 없어 태양 자기장의 영향이 더 큽니다. 2006년 8월부터 이용이 가능해진 북극항로는 태양 흑점 폭발이 있으면 이용할 수 없답니다. 그럴 경우 항공기들은 북태평양이나 캄차카 항로로 우회해 수백 km를 더 이동해야 합니다. 시간과 연료비 면에서 비용이 더 많이 발생하지요. 참, 고도를 낮춰도 연료비가 더 든다고 합니다. 공기의 밀도가 높아져 마찰이 더 커지니까요.

○ 승객 구하려 항공유 20t 버리기도

대한항공 통제센터에선 운항관리사 86명, 탑재관리사(안전 운항을 위해 화물을 제대로 싣는 일을 관리) 43명 등 165명이 하루 3교대로 1년 365일 하루도 빼지 않고 근무합니다. 하는 일이 워낙 중요하니 운항관리사들은 예비군훈련도 면제받습니다.

통제센터를 포함한 종합통제본부의 운영기획을 담당하는 박찬혁 팀장은 “안전과 승객 서비스, 비용 절감 등이 통제센터 운영의 기본 목표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이라고 거듭 강조하더군요. 그 덕분인지 통제센터가 생긴 2000년 8월 이후에는 대형사고가 1건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만약 통제센터 자체에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하느냐고요? 그런 상황에 대비해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 일종의 백업센터가 마련돼 있습니다. 2010년 9월 추석연휴 첫날에 쏟아진 집중호우로 김포공항의 대한항공 건물이 침수된 적이 있습니다. 건물의 발전기가 멈췄는데 통제센터는 무정전 시스템의 도움으로 1시간 정도를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 사이 등촌동으로 직원들이 급하게 이동해 통제 업무가 올스톱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지요.

항공기에서 발생하는 환자에 대한 대응도 통제센터 담당입니다. 환자가 생기면 먼저 승무원이 승객 중 의사가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흥미롭게도 지금까지 의사가 타지 않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답니다. 그러고 나서 통제센터와 항공의료센터(이 두 부서는 같은 건물에 있음), 항공기 안의 의사가 함께 논의하며 환자를 치료합니다. 필요한 경우 항로 근처의 공항에 착륙해 환자를 병원으로 옮깁니다. 공항 및 응급의료진 섭외는 모두 통제센터의 몫이지요. 운항 도중, 즉 탑재한 연료를 모두 소모하지 못하고 착륙할 때는 미처 쓰지 못한 항공유를 공중에 방출해야 합니다. 기체가 무거우면 착륙 때 사고가 발생할 수 있으니까요. 지난해 2월 미국 시카고로 가던 비행기가 협심증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일본 삿포로의 지토세공항에 내린 적이 있습니다. 당시 승객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버린 항공유가 20t이나 됐습니다.

참, 얼마 전에 북한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전파를 교란해 우리 항공기들의 운항을 방해하려 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피해가 발생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이미 지난해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 적이 있어 대비가 되어 있었고 GPS는 항공기 운항의 주요 장비가 아닌, 보조장비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당신이 탄 비행기가 뉴욕 JFK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스피커에서 얼리셔 키스의 ‘엠파이어스테이트 오브 마인드(Part Ⅱ) 브로큰 다운’이 흘러나옵니다. 이어 기장이 얘기합니다. “오늘 맨유의 박지성이 선발 출장합니다.” 모두 당신을 위한 통제센터의 선물입니다. 통제센터에선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우리나라 사람들이 관심 있어 하는 경기 결과나 뉴스를 실시간으로 전하는 서비스도 제공합니다.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대한항공 통제센터#비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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