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평론가 윤중강 씨가 물었다. “고향이 어디니?” 해금 연주자 조혜령 씨(28·국립국악원 창작악단 단원·사진)가 답했다. “서울요.” 그러자 윤 씨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럼 됐다!”
조 씨가 해금으로 서울을 노래한 음반 ‘솔 오브 서울(Soul of Seoul)’은 그렇게 태어났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그가 서울의 다양한 표정과 느낌을 담은 곡을 해금으로 풀어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낸 세 번째 음반으로 윤 씨와 공동 프로듀서를 맡았다. 첫 번째 음반은 ‘아리랑’ ‘섬집 아기’ ‘문 리버’ 등 듣기 편한 음악으로 꾸민 ‘해금의 향기’(2010년), 두 번째는 전통 해금 작품만 담은 ‘아카데미즘’(2011년)이다.
윤 씨가 서울을 주제로 한 음반 작업을 해보자고 제안했을 때, 조 씨는 여러 차례 고개를 가로저었다. 소위 ‘퓨전 국악’이 넘쳐나는 시대에 굳이 하나를 더 보태고 싶지 않았다. 보수적인 국악계의 “시골 국밥집 앞에서나 그런 음악을 연주하라”는 꾸지람도 조금은 두려웠다. 하지만 윤 씨는 “사람들이 인상 쓰면서 국악을 듣는 게 좋으냐. 친근하고 재밌는 방식으로 해금을 알릴 수 있다”고 설득했다. 고민하던 그는 어느 날 연주회가 끝난 뒤 “아쟁 잘 들었다”는 한 관객의 인사에 해금을 더 알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번 앨범에서 그는 해금의 다양한 색깔을 펼쳐 보인다. 경기민요와 가요, 창작곡이 ‘서울의 정서’라는 키워드로 묶였지만 저마다 개성을 드러낸다. ‘스위트 워킹’(박소혜 작곡)에서는 서울숲과 도심의 빌딩 사이를 경쾌하게 걷는 소녀의 발걸음이 떠오른다. ‘달빛’(박소혜 작곡)에서는 해금 하면 딱 떠오르는 절절하고 처연한 소리가 가슴을 적신다. ‘서울야곡’(현동주 작곡·박소혜 편곡)은 재즈풍으로 편곡해 민속악적인 즉흥성을 부여했다. ‘사랑은 영원히’(길옥윤 작곡·박소혜 편곡)는 음울한 느낌의 원곡과 달리 보사노바 리듬으로 통통 뛰어간다.
조 씨는 “시김새와 농현 등 국악적 어법을 곡마다 다르게 적용했다. 깽깽이라고도 불리는 해금의 익살스러운 면부터 질그릇 같은 특성, 매끈함과 경쾌함까지 두루 맛볼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보통 음반 작업을 할 때 해금 소리에 ‘떡화장’을 해서 일반인들이 듣기 편하도록 뭉툭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담백하고 까끌까끌한 원래의 소리를 살렸다”고 덧붙였다.
조 씨는 국악고, 서울대 국악과를 졸업했으며 동아국악콩쿠르 금상, 전주대사습놀이 기악부 장려상 등을 받았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