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느닷없고 엉뚱한 아이 질문에 난감하다고요?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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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하자는 메시지… 대화가 정답입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난감사례 1.

금융회사에 다니는 A 씨(43)는 초등학교 4학년 딸(10)에게 늘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편안하게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어느 날 딸이 물었다.

“아빠가 나온 학교는 좋은 학교야 나쁜 학교야?”

“음…. 좋은 학교지.”

A 씨는 서울의 한 명문 사립대를 졸업했다. 딸이 다시 물었다.

“그런데 왜 아빤 이렇게 힘들게 살아?”

“….”

A 씨는 혼란스러워졌다. 평소에 힘들단 말을 습관처럼 했던 게 후회됐다. 그런데 딸은 왜 갑자기 이런 질문을 했을까. 설마 아빠를 놀리려고 한 건 아닐 테고. 그렇다면 정말 궁금한 게 뭘까. 어떤 얘기부터 해야 할까. 그냥 “사실은 힘들지 않다”고 얘기하곤 대충 넘어가 버릴까.

#난감사례 2.

전업주부 B 씨(36·여)는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6)의 질문공세가 두렵다. 아이는 평소 궁금한 걸 참지 못한다. TV를 보거나 동화책을 읽을 때도 뭐든 물어보지 않고는 넘어가는 법이 없다. 특히 “왜?”라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B 씨는 참 힘들다. 그땐 “알면서 왜 물어보니” 하며 살짝 핀잔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엔 질문의 양보다는 갈수록 높아지는 난이도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엄마! 아기는 어떻게 생겨요?”

“엄마의 몸에는 난자가 있고, 아빠에겐 정자라는 게 있어. 아빠의 정자가 엄마 몸속으로 들어가 난자와 만나게 된단다. 그러면 아기가 생기는 거야.”

스스로 생각해도 구체적이고 친절한 답변이라고 만족해하던 B 씨. 그러나 이어진 아이의 질문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러면 아빠의 정자는 어떻게 엄마 몸 속으로 들어가요?”

“음…. 그건, 음…. 우리 맛있는 아이스크림 먹을까?”

자녀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하게 된다. 그것도 심심찮게 말이다. 아이는 “엄마는 왜 엄마야?” 따위의 심오한 질문을 던져놓고선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대답을 기다린다. 부모의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왜 아이가 이런 질문을 할까, 이런 얘기는 어디서 들은 것일까, 어느 정도 수준까지 설명해야 하나, 잘못 얘기했다가 충격을 받진 않을까, 대답을 듣고서 더 어려운 질문을 해오면 어떡하나.’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가지만 정작 ‘모범답안’은 떠오르지 않는다. 결국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하다 얼버무리고 지나가기 일쑤다. 난감한 상황이 반복되면 ‘욱’ 하며 화가 치밀기도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건 아이의 질문을 철저히 어른들의 시각으로 받아들인 탓이다. 아이에게 성(性)은 그저 궁금한 대상일 뿐인데 어른들은 이를 확대해석해 “지금은 그런 거 몰라도 돼” 하며 넘어가는 게 대표적이다. 발달단계에 있는 아이들은 그 어떤 정보도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다. 가르쳐줘도 이해 못할 거라고 미리 예단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질문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그리고 대답에도 정도(正道)가 있을까.

○ 질문은 아이들의 소통방식이다


아동발달전문가인 미국의 벳시 브라운 브라운은 저서인 ‘아이의 난감한 질문, 엄마의 현명한 대답’(예담·2010년)에서 “당신과 아이가 날마다 나누는 대화는 당신의 아이가 어떤 어른으로 자라날지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질문은 아이의 가장 중요한 대화방식이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가장 편하게 생각하는 부모들과 늘 소통하길 원한다. 궁금해서도 질문하고, 관심을 끌기 위해서도 질문하고,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서도 질문한다. 부모가 난감하다는 이유로 질문을 외면하거나 대답을 미룬다면 아이는 대화를 거부당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아이의 마음에 생채기가 날 수 있다는 얘기다.

박부진 명지대 교수(아동학)는 아이들의 연령대에 따라 달라지는 질문의 내용과 성격을 스위스 아동심리학자 장 피아제(1896∼1980)의 ‘인지발달단계’를 인용해 설명했다.

구체적 조작기(7∼11 또는 12세)에 해당하는 초등학생 시기에는 논리적이며 현실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발달한다. 질문도 주로 학교생활이나 친구에 관련된 것이 많다. 보다 어린 전조작기(2∼7세)의 아이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모든 세상에 대해 왕성한 호기심을 갖는다. 아직 사물이나 상황에 대해 논리적 사고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질문을 통해 호기심을 충족시키려 한다. 박 교수는 “이 시기(전조작기)에 아이들이 던지는 질문은 세상을 관찰하면서 갖게 되는 자연스러운 호기심에서 나온다”며 “부모가 답을 모르면 창피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완벽한 부모보다는 책임감 있는 부모가 되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유숙 서울여대 교수(교육심리학)는 질문을 통해 아이들의 심리상태를 읽어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상적인 아이들은 대부분 호기심 때문에 질문을 하지만, 같은 질문을 지나칠 정도로 반복한다는 것은 심리상태가 불안해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부모들도 아이에게 최대한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런데 처음에는 잘 대답을 하다가도 이내 한계에 이르곤 합니다. 그럴 때 왜 자꾸 같은 걸 묻느냐고 다그쳐서는 안돼요. 외로움이나 소외감 같은 아이의 정서를 읽어주는 것이 객관적인 사실을 설명하는 것보다 더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아이의 질문에 대한 황준원 강원대병원 교수(정신건강의학)의 해석도 재미있다. 그는 “어른들도 맞선 자리에서 어색한 상황을 모면하려 수십 가지 질문을 하지 않나”라고 반문하면서 “아이의 질문도 때로는 지적호기심보다 대인관계의 긴장을 풀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의 질문에 대한 대답에만 골몰하기보다는 차라리 어른들이 먼저 질문을 하면서 대화를 리드하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 어떤 질문에도 당황하지 말라

곤란한 질문이라고 피하려 들면 부모가 더 궁지에 몰릴 뿐이다. 아이들에게 더 큰 궁금증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 번 두 번 질문을 무시하다 보면 아이들 스스로 부모와의 소통의지를 꺾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다음의 원칙들만 지킨다면 부모가 아이의 훌륭한 ‘멘토’가 되는 일은 의외로 쉽다.
▼ 궁금한 것 묻는 태도 칭찬해야 인지발달에 도움 ▼

2006년 미국 HBO에서 방영된 시트콤 ‘러키 루이’ 1시즌의 한 장면. 딸 루시가 집요할 정도로 ‘Why(왜)’를 남발하지만 루이는 인내심을 발휘하며 대답을 이어간다. 대화 내용이 좀 엉뚱하긴 해도 루이의 태도만큼은 훌륭하다.
2006년 미국 HBO에서 방영된 시트콤 ‘러키 루이’ 1시즌의 한 장면. 딸 루시가 집요할 정도로 ‘Why(왜)’를 남발하지만 루이는 인내심을 발휘하며 대답을 이어간다. 대화 내용이 좀 엉뚱하긴 해도 루이의 태도만큼은 훌륭하다.
박 교수는 아이의 질문에 답할 때 꼭 지켜야 하는 원칙 중 첫째로 ‘당황하지 않고 아이가 가진 궁금증에 공감해주기’를 꼽았다. 부모가 경청만 잘해도 아이는 의사소통이 잘되고 있다고 믿고, 나아가 자신의 호기심이 지지받는다는 느낌에 자존감이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그는 “성에 대해 물었는데 아이들을 야단치면 오히려 성에 대한 자연스럽지 못한 인식이나 감정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도 같은 의견이다.

“부모가 당황하면 자기도 모르게 부적절한 반응을 보이기 마련입니다. 상황을 무마하려고 ‘바쁘니까 나중에 얘기하자’거나 거짓말을 할 수도 있죠.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 아이들은 궁금한 게 있어도 더는 부모를 찾지 않게 됩니다. ‘그런 게 왜 궁금해’라고 질책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궁금증을 가지고 질문하는 태도를 칭찬해야 아이의 인지기능 발달에 도움이 됩니다.”

박 교수는 ‘아이의 수준에 맞는 눈높이 교육’과 ‘관련 주제로의 대화확장 시도’를 질문에 답하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원칙으로 제시했다. 그는 “유아에게는 유아에 맞는 언어를, 초등학생에게는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쓰는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며 “부모의 설명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답답해하거나 틀렸다고 비난한다면 아이가 위축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브라운이 책에서 밝힌 현명한 답변의 비결도 비슷하다. 그는 “나쁜 질문이란 없다. 당신이 아이의 질문에 대응하는 태도가 아이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썼다. 그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아이들이 알고 있는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는다 △솔직하고 정확하게 답한다 △똑같은 질문에도 짜증내지 않는다 △답을 모르면 아이와 함께 찾는다 등을 제시했다.

아이들의 질문은 곧 대화를 하자는 의미이자 소통을 원하고 있다는 메시지다. 그래서 본인이 편하게 생각하고, 또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 질문의 상대방이 된다. 너무 바빠 얼굴을 보기 힘든 아빠보다는 항상 함께 있는 엄마에게(물론 반대가 될 수도 있다) 더 많은 질문을 쏟아내는 이유다. 이 시대의 아빠들이여. 주말마다 투하되는 아이들의 질문폭격을 피하지 말라. 그대들이 아직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니까.

[채널A 영상]“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전세계 아이들의 대답은?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아이 질문#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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