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능통 2, 3명 팀 이뤄 1~4주 제작… 불법 행위 알면서도 “첫 소개자” 자부심
강진숙 중앙대 교수팀 ‘팬덤 연구’ 발표
수많은 국내외 영화가 불법 복제 파일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것이 최근의 현실이다. 국내에 미처 정식 배급되지 않은 영화도 자막이 붙어 퍼져나가기 일쑤다. 영어 자막이든, 일본어든 중국어든 거의 모두 열성 외화 팬들이 자발적으로 만드는 ‘팬 자막(fansubs)’이다.
팬 자막 제작자들은 ‘저작권법 위반으로 법적 조치를 받을 수 있으니 포스팅한 자막을 삭제하라’는 경고의 e메일을 받기 마련이다. 돈 한 푼 받지 않으면서 엄연히 불법인 행위에 매달리는 이유는 뭘까.
강진숙 중앙대 신문방송학부 교수팀은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1∼10년 경력의 팬 자막 제작자 11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강 교수팀은 이 결과를 ‘인터넷 팬덤 문화의 생산과 공유에 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정리해 ‘한국방송학보’ 최신호에 발표했다.
인터뷰에 응한 자막 제작자들은 기업체에서 해외 영업을 담당하거나 외국어 학원 강사로 일하면서, 혹은 해외에서 오래 생활하면서 영어 일본어 혹은 중국어에 능통해진 경우가 많았다.
자막 제작은 대개 2, 3명이 팀을 이뤄 ‘번역, 싱크(Synchronization·등장인물의 대사와 자막 맞추기), 감수’의 3단계 과정을 거쳐 진행한다. 외화 1편당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3, 4주 걸린다. 자막 제작에 들어가면 잠을 줄여가며 하루 12∼13시간씩 매달린다. 자막 제작 경력 6년의 한 여성(34·회사원)은 “(바쁠 땐) 자막 프로그램을 점심시간에 띄워놓고 회사에서 한다”고 말했다.
자막 제작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좋아하는 일본 연예인이 나오는 드라마가 있는데 자막이 없어서….”(37·여·회사원) “최신작이 있는데 자막이 없을 땐 처음(첫 자막 제작자)이 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24·대학생) “좋아하는 작품을 남들에게도 추천하는 거다. 팬 활동에서도 자막 제작이 최고다.”(29·회사원)
연구팀은 “국내에선 자막이 공유되는 인터넷 사이트의 규모와 자막 제작자 수를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팬덤이 확장돼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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