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일본 오이타현 온천타운 벳푸와 유후인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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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증기 자욱한 熱國, 바삐가던 시간마저 멈춰서고…

벳푸 스기노이호텔 옥상의 대형 로텐부로 다나유에서 욕객들이 해돋이를 보며 온천욕을 즐기고 있다.
벳푸 스기노이호텔 옥상의 대형 로텐부로 다나유에서 욕객들이 해돋이를 보며 온천욕을 즐기고 있다.

《규슈 오이타 현으로 떠나는 여행길. 온천과 음식을 마음껏 즐길 수 있어서 늘 즐겁다. 그런데 ‘오이타(大分)’가 어디지?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다.

‘벳푸’나 ‘유후인’은 알아도 오이타는 모르는 경우가 많으니. 두 곳 모두 규슈 북쪽, 분고스이도(豊後水道)라고 불리는 해협을 끼고 시코쿠(일본열도의 4개 큰 섬 중 하나)와 마주한 오이타 현의 온천타운이다.》
온천 기호(♨)를 마케팅에 사용한 벳푸

1928년 어느 날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시내 선셋 대로. 이 할리우드 중심가에 ‘♨’이 그려진 핫피(일본 상인이 전통적으로 입어온 겉저고리) 차림의 일본인 무리가 ‘핫스프링(온천) 벳푸’를 연호하며 행진하고 있었다. 벳푸로 온천관광을 오라는 거리 마케팅인데 그 맨 앞엔 벳푸에서 가장 오랜 100년 역사의 카메노이 호텔과 버스 창업자(각각 1911년과 1928년) 아부라야 구마하치(1863~1935) 씨가 있었다.

그는 1925년 세계 최초로 관광버스에 젊고 예쁜 여성을 안내양으로 태워 훗날 ‘항공기 여승무원’이란 아이디어를 제공한 벳푸의 사업가. 지도 기호인 ♨을 상업적으로 활용한 것도 그의 아이디어다. 당시에도 벳푸는 이미 온천 휴양객이 매년 1만 명이나 찾던 명소. 그러나 그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미국까지 진출했다. 그런 국제화로 벳푸는 이듬해 미국인 수백 명을 유치할 수 있었다. 그들은 롱비치 항에서 여객선에 올라 태평양 건너 벳푸까지 찾아왔던 것이다.

이렇듯 벳푸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일본을 대표하는 온천타운이다. 온천수 용출량이 전국 1위(13만 kL)로 일본 전 국민이 하루 1L씩 쓸 수 있는 양. 그런 벳푸에는 8개의 온천지구가 있다. 그걸 ‘벳푸 8탕’이라고 부르는데 이번 취재길엔 간나와 온천부터 찾았다. 그곳은 벳푸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산중턱. 거기엔 특별한 풍경이 펼쳐진다. 곳곳에서 포연처럼 공중에 뿜어져 오르는 흰 연기로 뒤덮인 도시다. 이건 땅에서 솟구친 고열의 수증기. ‘100년 후에도 간직해야 할 일본의 풍경 100선’에도 든 벳푸의 상징이다.

땅바닥에 손을 대보았다. 지열로 인해 온돌처럼 뜨듯했다. 그래서 이곳에선 타이어가 쉬 상한단다. 이 수증기로 요리를 하는 곳이 있다 해서 찾았다. 오타니 공원의 ‘지고쿠 무시코보’(지옥찜공방)다. 500엔을 내면 찜통 하나를 30분간 빌려주는데 거기에 가져간 음식이나 여기서 산 야채와 생선을 넣고 쪄서 먹는 곳이다. 그 옆 ‘아시무시’(足蒸し·고온의 수증기로 발만 찜질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는 찜질하는 동안 소일하기에 좋은 무료 체험시설이다.

이튿날은 시내 ‘다케가와라’를 찾았다. 132년 역사의 이 온천 목욕탕은 예스러운 전통 목조가옥으로 실내도 옛 모습 그대로다. 나는 온천욕(100엔)보다 모래찜질(1000엔)에 눈이 갔다. 역시 지열과 온천수를 이용한다. 유카타(얇은 면의 욕의) 차림으로 검은 모래에 파묻혀 누워있기를 15분.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벳푸에는 입욕료 100엔짜리 시영온천도 100개가 넘는다.

기쓰키 성하촌의 가파른 언덕길(위). 기모노 차림의 여인 정면 아래가 상가고 그 너머 계단 위가 북쪽 무사촌이다. 벳푸 간나와온천의 지옥찜공방에서 종업원이 뜨거운 온천수증기로 찐 음식을 들어내고 있다(아래).
기쓰키 성하촌의 가파른 언덕길(위). 기모노 차림의 여인 정면 아래가 상가고 그 너머 계단 위가 북쪽 무사촌이다. 벳푸 간나와온천의 지옥찜공방에서 종업원이 뜨거운 온천수증기로 찐 음식을 들어내고 있다(아래).
‘벳푸 8탕 온천도(道)’란 것도 있다. 지정된 온천탕 88곳을 순례하며 도장을 받아오면 그 수에 따라 초단∼10단, 명인 등 타이틀을 준다. 7단 이상이면 1만 엔 상당의 무료 혹은 반액 온천티켓을 준다. 명인은 ‘온천의 전당’(효탄 온천)에 사진도 걸고 표창한다.

벳푸 8탕의 간카이지 온천에 있는 스기노이 호텔은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벳푸의 상징 같은 호텔. 건물 3개 동에 592실을 갖춘 초대형으로 5단의 다랑논처럼 설계한 옥상의 초대형 로텐부로 ‘다나유’에서는 탕에 몸을 담근 채 벳푸 만 일출과 쓰루가다케의 일몰을 모두 즐길 수 있는 명소다. 뷔페(아침과 저녁)에서는 다양한 일본 음식과 더불어 세계 각국 음식도 맛볼 수 있다. 시다플로어의 15개 객실은 최고급 리조트 수준으로 럭셔리하며 3세대가 함께 묵는 ‘굿타임 플로어’도 있다.

‘작은 교토’ 기쓰키서 ‘우레시노’ 맛보기
벳푸에서 오이타 공항으로 북상하다 보면 모리에 만(灣) 바다에서 해안 절벽에 서 있는 성을 보게 된다.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자가 지켰던 기쓰키 성이다. 성 아래엔 사무라이와 상인이 모여 사는 성하촌(城下村)이 있게 마련. 그런데 이곳 성하촌은 ‘샌드위치’ 구조다. 남북으로 마주한 두 개의 언덕(稜線) 위엔 무사 가옥이, 두 언덕 사이 골(谷)엔 상가가 밀집한 형국을 두고 그리 부른다. 그래서 상가와 남북의 무사촌을 잇는 길은 모두 급경사인데 계단은 하나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마차나 가마꾼이 지나도록 계단을 두지 않았다.

기쓰키의 명물이라면 10대에 걸쳐 270년간 영업 중인 녹차상점 ‘도마야’, 16대째 대물림하며 ‘우레시노’라는 다이차즈케(도미 회 얹은 밥을 녹차에 말아먹는 오차즈케)를 내는 314년 역사의 식당 ‘와카에야’다. 녹차는 기쓰키의 특산품이다.

몇년 만에 다시 찾은 와카에야에서 사장을 만났다. 16대 당주인 고토 겐타로 씨(37)였다. “기쓰키는 작은 성이어서 성주는 식당이든 찻집이든 한 곳만 정해 영업하도록 했습니다. 와카에야도 그렇게 선정됐지요. 1850년경인데 제 선조께서 도미 회에 깨를 뿌리고 간장을 부어 양념한 뒤 녹차를 부어 올렸는데 성주가 ‘우레시노’(아주 흡족하다는 표현)라면서 아주 맛있게 드셨다고 해요.” 우레시노 소스는 지금도 간 깨에 간장을 부어 만드는데 추가하는 양념만큼은 당주에게만 대물림하는 비전이라고. 생선회에 오차즈케라니 그 맛이 비릴 듯싶지만 실제 맛은 기막히다.

전통의 벳푸와 신생 유후인
벳푸와 유후인. 온천 용출량에서 전국 1, 2위를 차지하는 오이타 현의 대표적인 온천타운이지만 그것 외엔 모든 게 반대다. 벳푸는 벳푸 만 해안과 산자락에 있지만 유후인은 1000m 이상 고산에 둘러싸인 고도 500m 분지의 평야다. 또 근 1세기 온천역사의 벳푸와 달리 유후인의 명성은 불과 20년 정도. 모습도 같다. 오랜 역사의 벳푸는 오히려 현대적이고 신생 유후인은 거꾸로 예스럽다. 오이타 온천여행의 묘미는 이렇듯 30km 거리에 이웃한 전혀 다른 두 모습의 온천타운을 쉬 섭렵하는 데 있다.

후쿠오카역에서 오른 JR유후인노모리 열차. 마룻바닥에서 풍기는 고풍스러움이 2시간 철도여행의 격조를 끌어올린다. 일본의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JR유후인 역사. 갤러리로 꾸민 대합실은 여전히 관람객으로 붐볐고 비 예보에 맞춰 내어둔 역전의 무료 우산대는 또다시 나를 감동시켰다. 역에서 긴린코(호수)까지 이어지는 유노쓰보 가도 역시 유후인의 한가로움을 즐기려는 방문객의 느긋한 걸음으로 채워졌다.

유후인은 마을에 들어선 그 자체로 휴식이 되는 독특한 개념의 온천타운이다. 시골풍이지만 고급스러운 분위기. 거기서 제공되는 고품격의 편안함이 매력의 요체다. 그래서 그냥 두리번거리며 노니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하다. 나 역시 그렇게 마을 곳곳을 기웃거리다가 료칸에 들어섰다. 10년 전 개업 직후 취재했던 료쓰크벳데인데 당시 앳돼 보였던 나카이(료칸 종업원) 오바타 마미 씨는 ‘와카 오카미’(若女將·부총지배인)가 되어 오카미(료칸 운영의 총책임자)인 어머니를 대신해 료칸을 이끌고 있었다.

이 료칸은 유후인의 분위기를 잘 나타낸다. 고풍스럽다는 것인데 에도시대 사카쿠라(사케 양조장)를 뜯어 그 나무로 지은 집 자체가 그렇다. 오랜 세월 닳고 닳아 반득이는 옻칠마루며 현관의 디딤돌과 이로리(천장에 줄을 매어 주전자를 걸어둔 다다미 바닥의 숯불 화로) 등등. 음식의 재료 역시 대부분이 유후인 현지 것이라서 방사능 오염 같은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 럭셔리 료칸 ‘가이 아소’, 아늑한 분위기에 품위까지 ▼

가이 아소의 테라스에 있는 로텐부로. 주변은 온통 숲이어서 숲속에서 홀로 온천욕을 즐기는 느낌을 준다.
가이 아소의 테라스에 있는 로텐부로. 주변은 온통 숲이어서 숲속에서 홀로 온천욕을 즐기는 느낌을 준다.
오이타 현 남쪽의 구주렌잔(九重連山)과 이웃한 구마모토 현 북단의 아소 활화산. 이 둘은 십수 km 거리를 두고 남북으로 마주한다. 그 사이를 1700m의 고산 아래 발달한 구주 고원이 차지하고 구주고가쿠(五岳)의 다섯 산은 그 동편에 자리 잡았다. 그 풍경은 구주 산(1787m) 아래서 훤히 조망되는데 호시노리조트의 럭셔리 료칸 ‘가이 아소(界 阿蘇)’는 바로 그 세노모토 고원(고코노에 정)에 자리 잡았다.

호시노 리조트(대표 호시노 요시하루)는 1904년 ‘호시노야’(현재는 호시노야 가루이자와) 료칸에서 출발한 일본 굴지의 리조트 회사다. ‘일본의 재발견’이란 회사의 모토대로 일본식 환대문화를 서구식 편리함에 맞춰 재구성하고 그런 새로운 개념을 구현한 숙박시설과 맞춤형 서비스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일본 전역에 호텔 및 료칸 21개와 스키장 3개를 소유하거나 운영 중인데 ‘가이’는 가장 최근 내놓은 ‘럭셔리 료칸’ 브랜드. 모두 4개가 있다.

가이 아소의 외관은 평범하다. 하지만 안에 들어서면 품위 있는 실내장식에서 우러나는 차분하고 아늑하며 기품 있는 분위기에 마음이 고요해진다. 넓은 거실의 통유리창 밖은 야외테라스이고 주변은 온통 숲. 테라스엔 발코니와 더불어 로텐부로가 있는데 온천수가 늘 흘러넘친다. 파우더 룸에도 자쿠지가 있다. 미니바에는 맥주와 주스는 물론이고 사케까지 있지만 모두 무료. 객실은 모두 독립빌라로 전체 12채뿐이다. 그래서 늘 혼자인 듯 지낸다.

가이세키 요리 중에 나온 초밥.
가이세키 요리 중에 나온 초밥.
언덕 위 본관도 아늑하다. 벽난로 옆엔 책꽂이가 있고 늘 음악이 흐른다. 야외테라스는 전망대다. 달이 뜨고 지는 모습을 본다. 테라스 안쪽은 레스토랑이다. 어둑한 실내조명으로 단아하고 편안하다. 저녁식사 중 나는 가이 아소가 내세운 고품격 서비스의 진수를 보았다. 규슈의 다양한 와규(일본 쇠고기) 요리부터 스시 등 해산물까지 이곳 음식은 하나같이 ‘디자이너 요리’였다. 아소 산의 풍경과 독립빌라에서 조용한 휴식, 정갈한 일본식 서비스에 식도락까지. ‘가이’ 브랜드는 새롭게 탄생시킨 호시노식 서비스 문화의 기준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어 보였다.


오이타=글·사진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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