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별 오디션 못 받겠다며 ‘집단 평가’ 자청하더니… KBS교향악단 ‘배짱 오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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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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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24명중 2명 참석

2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KBS 본관 내 KBS교향악단 연습실에서 사상 처음으로 단원의 기량을 평가하는 오디션이 열렸다. 제1 바이올린 연주자 11명 중 단 1명만이 참여해 오디션을 치르고 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2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KBS 본관 내 KBS교향악단 연습실에서 사상 처음으로 단원의 기량을 평가하는 오디션이 열렸다. 제1 바이올린 연주자 11명 중 단 1명만이 참여해 오디션을 치르고 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2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KBS 본관 5층 교향악단 연습실에는 정적이 흘렀다. 곳곳에 붙여둔 ‘KBS교향악단 오디션’이라는 문구가 무색했다.

이날 KBS교향악단은 단원 기량 평가를 위한 사상 첫 전면 오디션을 열었다. 그러나 바이올린 파트 24명이 대상인 첫날 오디션에서 제1 바이올린과 제2 바이올린 연주자 각각 1명만이 참석했다. 홀로 오디션에 나타난 제1 바이올린 단원은 “아무도 없어서 어떻게 해요…”라며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26일은 비올라와 첼로, 콘트라베이스, 27일은 관악기와 타악기 파트 오디션이 예정돼 있다.

평가를 맡은 함신익 KBS교향악단 상임지휘자와 존 도슨 미국 에이드리언 심포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윌리엄 버턴 미국 뉴헤븐 심포니 음악감독도 난감한 표정이었다. 도슨 감독과 버턴 감독은 “오디션을 하기로 해놓고 거부한 단원들은 바로 해고되나”, “이러다 오케스트라가 없어지는 것은 아닌가”라고 물으며 무척 의아해했다. 함신익 지휘자는 “단원의 기량 평가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KBS가 오디션을 공지한 이후 우여곡절 끝에 마련된 자리였다. 원래는 교향악단 오디션의 표준인 ‘개인별 블라인드 테스트’ 방식으로 할 예정이었으나 단원들의 반발에 따라 설 연휴 직전인 20일 이른바 ‘단체 오디션’을 하기로 노조와 사측이 합의했다. 파트별로 전체 합주를 한 뒤 4명씩 조를 짜 연주하고 이를 평가하기로 한 것이다. 한 현악계 원로는 “평생 그런 식의 오디션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의아해했다.

노사 간 합의에도 불구하고 변형된 형태의 오디션에도 참석하지 않은 까닭에 대해 한 단원은 “단원 대표가 노조와 임의로 합의한 것으로 모든 단원의 뜻을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력 없는 지휘자가 오디션을 빌미로 악단을 쥐고 흔들려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 악단을 그만둘 각오로 거부에 나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단원 50여 명은 24일 오후에 모임을 갖고 오디션에 참석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원들은 지난해 10월 상임지휘자와의 불협화음으로 정기연주회 연습 거부 사태를 일으킨 바 있다. 이 일로 13일 열린 1차 인사위원회에서 악장이 해촉되는 등 단원 8명이 징계를 받았다.

음악계에서는 “단원들이 지휘자에 대한 불신을 내세우지만 오디션 자체를 회피하는 것은 동기의 순수성을 의심받을 일”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음악평론가는 “지휘자가 싫다고 오디션을 거부하는 것은 이를 빌미로 철밥통을 고수하겠다는 ‘적대적 공생’의 자세”라고 꼬집었다.

KBS는 27일까지 계획된 오디션은 일정대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불참한 단원들은 0점으로 처리하고 집단 거부에 대해서는 향후 징계 등을 논의할 방침이다. KBS국악관현악단의 경우 지난해 12월 오디션이 잡혀 있었으나 단원들의 반발로 두 차례 연기한 뒤 30, 31일에 실시하기로 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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