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완수,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연구실장 “우리 문화의 힘 입증한 겸재 알리려 노력”

  • 동아일보

제10회 일민문화상 받는 최완수

제10회 일민문화상을 수상하는 최완수 실장은 “학문의 최종 목표는 대중의 공감을 얻고 대중을 바르게 이끄는 것”이라며 “내 연구를 통해 보통 사람들이 우리 문화에 자긍심을 가질 때 기쁨을 느낀다”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제10회 일민문화상을 수상하는 최완수 실장은 “학문의 최종 목표는 대중의 공감을 얻고 대중을 바르게 이끄는 것”이라며 “내 연구를 통해 보통 사람들이 우리 문화에 자긍심을 가질 때 기쁨을 느낀다”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1965년 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였던 그는 불상에 미쳐 홀로 경북 경주에 내려갔다. 경주 남산 기슭의 선덕사(현 중생사)에서 땅에 묻혀 있던 목 부러진 불상을 실측하고 있는데 구경꾼들이 호기심에 우르르 모여들었다가 별 재미가 없어지면 흩어지곤 했다. 어느 날 흙먼지를 뒤집어쓴 그를 내려다보는 한 구경꾼의 그림자가 영 사라지질 않았다. 올려다 보니 처음 보는 사람이기에 툭툭 털고 일어나려는데 그 중년 미남이 되레 빙긋이 웃었다. “이 사람아, 나 최순우야. 미술과장이라고.”

제10회 일민문화상을 받는 최완수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연구실장(69)과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미술사학자 최순우의 첫 만남이었다. 곧 각별한 스승이 된 최순우의 권유로 1966년 간송미술관에 첫발을 디딘 것이 어느덧 45년이 흘렀다. 그동안 최 실장은 겸재 정선(1676∼1759)을 조선 문화의 절정기인 18세기 진경문화를 이끈 주역으로 재조명했고, 추사 김정희(1786∼1856) 연구, 불상과 왕릉 연구 등으로 조선 문화의 우수성을 일깨웠다.

16일 오전 서울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 입구에 들어서자 잎이 떨어진 고목들 사이로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적막을 깼다. 자료가 빽빽한 2층의 낡은 연구실에서 최 실장을 만났다. 그는 옛 선비처럼 오후 9시에 취침하고 오전 3∼5시에 일어나 한복을 차려입고 연구에 몰두한다고 했다.

일민문화상 수상 소감을 묻자 최 실장은 “겸재가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눈으로 증명할 수 있는 업적을 남기셨기에 제가 그 사실을 밝혔을 뿐”이라고 했다. 그가 겸재에 빠지게 된 것은 1971년 10월에 열린 간송미술관의 첫 전시회로 겸재전을 준비하면서였다.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청풍계도’며 ‘경교명승첩’ ‘해악전신첩’ 등 겸재의 그림을 보자마자 머리를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조선 500년의 역사는 문화적 정체기였다’는 식민사관을 극복하고 싶었습니다. 겸재의 그림을 보는 순간 ‘바로 이것으로 조선 문화의 힘을 증명할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지요.”

그는 “겸재는 화가이기 이전에 율곡학파 성리학자였다”며 “당시의 인문학적 소양이라 할 성리학 이념에 입각해 새로운 미술 기법을 창안해냈다”고 설명했다. 겸재의 진경산수화에는 중국 북방화법의 특징인 필법과 남방화법의 특징인 묵법이 이상적으로 조합돼 있고, 주역의 음양 조화의 원리까지 구현돼 있다는 것.

최 실장은 조선 정체설을 반박할 물증으로 겸재와 추사 연구로도 성이 차지 않자 1977년부터 3년간 제자들을 이끌고 조선 왕릉 조사에 나섰다.

“한 가지 주제를 통해 500년 조선의 역사를 꿰뚫어 보기 위해 왕릉의 석물(石物) 조각을 조사한 거예요. 각 시대의 정치 경제 사상 등이 조각 양식에 어떤 변화를 미쳤는지 분석하는 과정에서 조선이 빛나는 문화를 갖고 있었다는 생각을 분명히 확인했죠.”

하지만 식민사관이 지배적이던 상황에서 그와 반대되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엔 부담이 컸다. 아직 최 실장은 왕릉 연구 결과를 구체적으로 발표한 적이 없다. 그는 “왕릉의 석물을 통해 본 조선 500년 문화사를 책으로 발표하는 것이 목표”라며 “이것까지 해놓고 가면 삶에 여한이 없다”고 덧붙였다. 2009년 자신의 겸재 연구를 총망라한 책 ‘겸재 정선’(전 3권·현암사)을 출간한 데 이어 내년에는 추사 연구를 종합한 책을 낼 계획이다.

평생 해외에도 나가지 않고 휴대전화도 없이 사는 최 실장은 “공부하는 사람은 옛 사람들을 머릿속에 새겨야 한다. 현재의 인간관계는 끼어들 틈이 없다”고 말했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온 그는 역사 속 겸재, 추사와 결혼한 셈이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 심사평 - 조선 회화사 연구, 새로운 경지로 끌어올려

2011년 제10회 일민문화상 심사위원들은 최완수 실장이 조선시대의 역사학적 지식과 한국의 미학에 대한 탁월한 안목을 결합해 조선회화사 연구를 새로운 경지로 끌어올렸다고 입을 모았다. 겸재 연구에 평생을 바쳤고 불교미술, 서예와 서화, 공예 등 한국 미술문화의 가치를 조명하는 방대한 업적을 쌓은 것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심사위원장 정병규 정디자인 대표는 “최 실장은 학문 안에만 갇히지 않고 수많은 강연과 책 저술 등을 통해 대중과 소통했다”며 “보통 사람들의 한국 미술에 대한 이해를 선양하고 한국인들의 평균적 심미안을 드높이는 데 기여했다”고 말했다.

심사위원은 정 대표를 비롯해 정과리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김지룡 문화평론가, 김태령 일민문화재단 이사, 고미석 동아일보 전문기자다.
■ 최완수 실장은…

△1961년 서울 경복고 졸업
△1965년 서울대 사학과 졸업

△1965∼66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
△1966년∼ 간송미술관 연구실장
△1975년∼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 동국대 용인대 등에서 강의
△2010년 우현 학술상 수상

△저서: ‘겸재 정선’(전 3권·2009년·현암사), ‘한국불상의 원류를 찾아서’(1권 2002년, 2·3권 2007년·대원사), ‘겸재의 한양진경’(2004년·동아일보사)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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