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아이들과 소통하는 붕붕아트 이은하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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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21일 10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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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아트 대표 이은하 씨는 서울 및 수도권 문화소외지역을 찾아다니며 만화창작교실을 열고있다.
붕붕아트 대표 이은하 씨는 서울 및 수도권 문화소외지역을 찾아다니며 만화창작교실을 열고있다.
만화는 꿈의 원천이면서 상상력을 담고 있다. 어릴 적 만화는 사탕처럼 달콤하다. 만화는 아이들에게는 질리지 않는 맛있는 과자 같은 것이지만 어른들에게는 소통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만화를 통해 아이들을 보듬고 희망을 그리는 이가 있다. 서울 및 수도권 문화소외지역을 찾아다니며 만화창작교실을 여는 붕붕아트 대표 이은하 씨(45). 그에게 만화는 생계의 수단이자, 일자리 창출의 터전이자, 아이들과 통하는 소통의 도구다.

“동생이 만화가였기 때문에 만화가 더 친숙했는지 몰라요. 열정으로 시작했지만 생계수단으로는 시원찮은 만화가의 실상도 잘 알게 됐죠. 생계를 위해 돈도 벌면서 보람된 일이 없을까 고민하다 아이들의 감성을 일깨워주는 만화를 떠올렸습니다.”

아이들과 가장 친숙한 게 뭘까 생각해보니 바로 만화였단다. 세상에 만화를 싫어하는 아이는 없다. 동생 주변의 만화가를 만나 기획한 바를 설명했더니 대환영. 뜻을 전해들은 만화가는 모두 동참하기로 했다.

현재 참가한 만화가는 모두 9명. 이중 8명이 여성작가다. 연령층도 대부분 30대에서 40대 초반. 초등학생이 주 대상이다 보니 여성의 감성으로 접근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겠다 싶어 자연스레 그렇게 구성됐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것이 만화창작수업. 주로 문화소외지역을 찾다보니 서울의 경우 독산동, 인천의 창전동, 삼산동, 십정동 등지의 공부방을 찾아다니며 아이들을 모아 수업을 진행했다. 한번 수업을 시작하면 보통 4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4시간동안 꼼짝하지 않고 집중력을 발휘하는 아이들이 놀랍다.

“처음 만나는 아이들의 마음열기가 가장 힘들어요. 문화소외지역 아이들은 편부모가정이거나 할머니와 사는 아이들이 많아요. 현실에 빨리 눈을 떠 불행이나 고통에 대해 민감한 아이들이 많아 조심스럽기도 해요. 이런 아이들에게 먼저 참여하는 방법으로 접근해요. 말풍선이 그려진 만화를 주고 그 말풍선 안에 생각나는 걸 표현해 보라고 했어요. 그리곤 칭찬을 많이 해줘요. 그러면 아이들이 자신감도 갖게 되고 상상력도 훨씬 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재능을 보이는 아이들은 스토리 구성과 캐릭터 정하는 것도 스스로 한다. 만화가들의 지도에 따라 한 동작씩 그림잇기를 하고나면 아이들끼리 서로 상의도 하고 자연스레 대화도 늘어난다. 협동심이 생겨나는 것이다.

지난 여름방학을 거치며 지금까지 해온 아이들과의 작업이 20일 책으로 만들어져 세상에 나왔다. 아이들의 원작을 만화가들이 만화로 완성한 것이다.

아이들과 이룬 첫 결과물은 ‘꿈을 꿈을 만화도서관’(애니북스 펴냄). 책 제목에서부터 아이들의 꿈이, 생기발랄한 감성이 꾸물꾸물 움직일 것 같다.

올해 충남 아산시와 함께 추진했던 ‘아산행복드림’ 프로젝트의 결과물인 아이들 만화작품도 지난 19일 책으로 선보였다. 막상 결과물이 나오니 이 씨의 머리 속은 그동안의 시련과 어려움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가 처음 만화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 2005년. 되돌아보면 모든 게 힘들었던 시기다. 동생은 만화가(필명 마르스)지만 만화가로서 먹고 살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 게다가 남편은 대학원에 다니고 어린 딸을 키우며 ‘억척 아줌마’로 살 수밖에 없었다.

학습지 외판원도 해봤고 건강보조식품 대리점도 운영해봤다. 그때 동생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그러다 한 인터넷언론에 ‘꽃분엄마의 서울살이’란 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이 씨가 스토리를 쓰고 동생 마르스가 그림을 그렸다.

2006년 책으로 출간된 이 만화는 한국만화가협회와 일간스포츠가 주최한 ‘2006 오늘의 우리만화’에 선정돼 상을 받았다.

“그때 상을 받은 것이 인생의 큰 격려가 되었던 것 같아요. 아 내게도 이런 재능이 있었구나.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올해 3월 중소기업청에서 주관하고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진행한 ‘2011 지식서비스 아이디어 상업화 지원사업’에 기획서를 냈다. 투병중인 언니가 거의 임종을 앞둔 시점에서 눈물로 기획서를 써 나갔다. 결국 54대1의 경쟁률을 뚫고 어린이만화 부문에 최종 선정되었다.

그 이후 붕붕아트를 설립, 붕붕카도 만들고 문화소외지역을 순회하며 만화창작교실을 열게 됐다.

“지난 여름 어렵게 마련한 붕붕카는 제대로 활동도 해보기전에 우면산 산사태에 휩쓸려 흙더미에 묻혀버렸어요. 당시 간발의 차이로 목숨은 건졌지만 차는 잃고 말았죠. 하지만 기왕 시작한 것을 그만 둘 수는 없었어요. 만화가들과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다니며 만화창작교실 수업은 계속해왔죠”

붕붕카는 1톤 트럭을 개조해 만든 것이었지만 아이들에겐 꿈의 공간이었다. 온통 만화로 장식한 차만 보더라도 아이들은 설레고 호기심이 충만했다. 그는 어떻게든 내년엔 2.5톤 트럭으로 다시 붕붕카를 만들 계획이다.

힘들었지만 올해 하나의 결실을 거둔 만큼 내년에는 할 일이 더 많다. 아이들이 작업한 만화로 책을 내는 등 총 3권의 책을 더 낼 계획이다. 아이들이 그리고 만든 만화책인 만큼 아이들 눈높이에 딱 맞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요즘 대기업 등에서 사회공헌사업도 많이 하고 하는데 아이들을 위한 만화책 보급에도 눈을 돌려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작은 도움이지만 아이들에겐 마음의 문을 여는 기회가 되고 나아가 장래 희망을 가질 수 있는 토대가 되기 때문.

“한 지역 공부방에서 고학년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창문너머로 초등학교 2학년생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수업현장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저와 눈이 마주쳤어요. 수업을 마치고 그 아이에게 만화가 반쯤 그려진 종이를 주었는데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어요. 자기도 그림을 채워 넣어 만화를 완성할 수 있다는 거예요.”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재, 즉 만화로 아이들의 감성을 일깨우고 상상력을 키워주는 이 씨. 만화기획자로서 그는 만화가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만화를 통해 아이들과 소통하고 아이들의 꿈을 키워주는 이 일이 계속 추진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소원이다.

상업성을 따지자면 아직 만화는 매력적인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경영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면서도 만화에서 손떼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아이들과 소통하는데 더없이 ‘좋은 소재’이기 때문이다. 만화는 재미있지만 만화를 둘러싼 환경은 열악하기 때문에 많은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 한창 사랑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과 만화는 참 많이 닮았다.

조창현 동아닷컴 기자 c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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