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와 광장, 넓고 깊은 세계”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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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최인훈 씨, 원주 토지문화관서 제1회 박경리 문학상 시상식

“최인훈 선생님께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시상식이 지연되는 점 죄송합니다.”

토지문화재단과 박경리문학상위원회, 동아일보가 공동 제정한 제1회 박경리문학상의 시상식이 열린 29일 오후 강원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토지문화관. 사회자가 수상자이자 장편소설 ‘광장’의 작가인 최인훈 씨(75)의 건강에 이상이 생겨 시상식이 지연된다고 밝히자 식장을 가득 메운 150여 명의 참석자들은 술렁였다.

최 씨는 이날 오전 9시쯤 경기 고양시의 집을 출발해 점심께 원주에 도착한 뒤 문학상 주최 측과 점심식사를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원주에 도착할 무렵 지병인 협심증으로 가슴 통증을 호소했고, 급히 원주 기독병원으로 목적지를 돌려 진료를 받는 긴급 상황이 발생했다.

잠시 후,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최 씨가 예정시간보다 10분 늦게 시상식장에 모습을 나타낸 것. 부축을 받고 수상 소감을 말하려 단상에 오른 최 씨는 거동이 불편했지만 목소리에는 힘이 느껴졌다.

“오는 도중 건강상 문제가 발생해 시상식을 몇 분 지연시켜서 죄송합니다. 몸도 흔들흔들하고 그런 감도 있지만 여러 이야기를 토로하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최 씨는 박경리 선생에 대해 “한국 현대사의 방대한 화폭 위에 광활, 광대한 인물을 성찰하여 생명과 평화의 의미를 밝힌 분”이라며 “박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든 문학상의 첫 수상자가 돼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라고 말했다.

박경리문학상은 민족의 수난사와 시대의 아픔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1926∼2008년)을 기리기 위해 제정됐으며 문학작품이 아니라 소설가를 대상으로 한다. 상금은 1억5000만 원으로 국내 문학상 가운데 최고이며, 내년부터는 해외 작가들에게 문호를 개방해 국내 문학상 가운데 최초의 세계문학상으로 탄생한다.

박경리문학상위원회 위원장인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인사말에서 “최 선생은 문학 본연의 가치를 지키며 세상과 타협하지 않은 이 시대의 진정한 작가로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의 보편성 속에서 자리 잡는 데 큰 기여를 하셨다”며 “박경리 문학상도 편협과 이념의 도그마를 넘어 사랑과 평화라는 이념을 실현시키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설가 최일남 씨는 축사에서 “박경리와 최인훈 선생은 세속에 빠지지 않고 고집스럽게 속 깊은 작가로 일관한 것이 서로 비슷하다. 박 선생이 강원도 원주 땅 이 오봉산 아래, 토지문화관을 굽어보며 한층 흡족해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쌀쌀한 날씨에 간간이 빗방울까지 내려 야외에서 치를 예정이던 뮤지컬 ‘우리는 친구다’ 공연과 청소년 백일장은 모두 실내에서 펼쳐졌다. 궂은 날씨였지만 오봉산을 물들인 형형색색의 단풍과 짙은 운무가 빚어낸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에 참가자들은 탄성을 질렀다. 30일 ‘토지와 바느질-김혜련 개인전’을 끝으로 제2회 박경리 문학제는 막을 내렸다.

원주=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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