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공부의 이유, 공부의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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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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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대금 연주하는 소녀. 그림 제공 포털아트
훈민정음-대금 연주하는 소녀. 그림 제공 포털아트
“아빠, 공부는 왜 하는 거야?” 어느 일요일, 고등학교 1학년인 딸이 정색을 하고 아빠에게 물었습니다. 무심하게 앉아 신문을 보던 아빠는 동작을 멈추고 딸을 보았습니다. “그건 왜 물어?” “내가 왜 이러고 사는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묻는 거야.” 딸은 중학시절과 달리 학업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아빠는 손에 들고 있던 신문을 내려놓고 진지한 표정으로 딸에게 말했습니다. “공부는 너 자신을 위해서 하는 거야. 너의 미래를 위해 엄마 아빠도 매일 공부하라는 말을 하는 거고.” 딸은 잠시도 사이를 주지 않고 아빠의 말을 되받아쳤습니다. “난 공부 말고도 하고 싶은 게 많아. 그러니까 나 자신을 위해서라면 공부를 안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딸과 아빠의 치열한 공부 공방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공부에 대한 딸의 회의에 대해 아빠는 명쾌하게 공부의 목적을 제시하지 못했고 그것을 이유로 딸은 공부에 대한 거부 의사를 분명하게 나타냈습니다. 아빠가 언제라도 공부의 목적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그것을 수긍할 수 있으면 공부를 다시 시작하겠다고 딸은 단서조항까지 달았습니다.

그날 이후 아빠는 공부의 목적을 찾아 인터넷을 검색하고 주변사람에게 자문하며 전전긍긍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공부의 목적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시원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뜬구름 잡는 소리만 되풀이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을 위해서 한다, 미래를 위해서 한다, 행복을 위해서 한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한다, 존경받는 인물이 되기 위해서 한다 등등.

딸이 수긍할 만한 답을 찾지 못한 아빠는 답답한 마음에 혼자 단골술집을 찾았습니다. 퇴근 후 직원들과 가끔 들러 막걸리를 마시는 뒷골목 빈대떡집이었습니다. 빈대떡을 부치던 주인아주머니가 왜 혼자 왔냐며 반가운 표정으로 맞았습니다.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아빠는 주인아주머니에게 딸의 문제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아주머니가 문제 같지도 않은 문제를 가지고 엄살을 떤다며 인상을 찌푸렸습니다. 그러고는 철판을 보지도 않고 능수능란하게 빈대떡을 뒤집으며 “공부는 남에게 주려고 하는 거야. 자기를 위해 공부하면 사람이 옹졸하고 치졸해지거든. 세상을 크게 어지럽히는 놈들은 다 공부를 많이 한 놈들이야. 그런데 그 인간들은 다 자신을 위해서만 공부했기 때문에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거야. 남에게 주는 공부를 못한 거지.”

한때 ‘공부해서 남 주나’라는 말이 유행한 적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처럼 공부의 목적을 이기적인 측면에 맞추는 나라도 없으니 그런 말이 유행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빈대떡집 주인아주머니의 논리는 그것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이라 막힌 문제의 출구를 시원하게 열어 주었습니다. 바로 거기서 남 주기 위한 공부, 요컨대 모든 분야의 공부는 전문성을 얻기 위한 과정이고 그것을 성취한 뒤에는 전문성을 세상 사람과 나눠야 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힘겹게 발견한 공부의 목적이 너무 멋지다는 생각을 하며 아빠는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공부하라는 말 대신 “네가 추구하고 싶은 분야의 전문성을 얻어서 세상 사람과 멋지게 나누며 살라”는 말이 입 안을 맴돌고 있었습니다.

박상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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