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4000m 상공으로 솟아올라 알프스로 뛰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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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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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럿 위해 탄생한 시계…비행 묘기로 정확성 보여줘

지난달 28일 스위스 부옥스 비행장에서 열린 ‘2011 브라이틀링 에어쇼’ 현장. 브라이틀링 제트팀 파일럿들이 행사에 참가한 VIP들을 제트기에 직접 태우고 이륙을 준비하고 있다. 브라이틀링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체 제트기와 파일럿들을 보유한 민간 제트팀 운영 기업이다. 브라이틀링 제공
지난달 28일 스위스 부옥스 비행장에서 열린 ‘2011 브라이틀링 에어쇼’ 현장. 브라이틀링 제트팀 파일럿들이 행사에 참가한 VIP들을 제트기에 직접 태우고 이륙을 준비하고 있다. 브라이틀링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체 제트기와 파일럿들을 보유한 민간 제트팀 운영 기업이다. 브라이틀링 제공

(왼쪽부터) 슈퍼오션 크로노그래프, 크로노맷 44
(왼쪽부터) 슈퍼오션 크로노그래프, 크로노맷 44
지난달 28일 스위스 루체른 시 외곽 부옥스 비행장. 루체른 시내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이곳에서 스위스의 명품시계 브랜드 ‘브라이틀링’의 VIP 초청 행사가 열렸다.

과거 스위스 군용 비행장이었던 부옥스 비행장은 지금은 항공기 제작사 ‘필라투스’의 테스트 비행장으로 쓰이고 있다. 브라이틀링은 매년 일주일간 이곳을 빌려 ‘브라이틀링 에어쇼’를 벌인다. 벌써 10년째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시계 회사인 브라이틀링은 대체 왜 비행장에 VIP들을 불러다 에어쇼를 벌이는 걸까. 그 답은 브라이틀링의 브랜드 스토리를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1884년 창립된 브라이틀링은 오랜 시간 줄곧 ‘파일럿을 위한 최고의 시계’를 개발하는 데 주력해 왔다. 1900년대 초에 이미 파일럿들이 필요로 했던 속도, 거리, 환율 계산용 손목시계(크로노그래프)를 개발해냈고, 1939년에는 영국 공군 ‘로열 에어포스’의 공식 항공시계 제조업체로 발탁됐던 브라이틀링은 현재까지도 ‘정밀성, 신뢰성, 견고성’을 기업의 핵심가치로 내세운다. 더없이 남성적이면서도,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에어쇼야말로 브라이틀링의 기업 정신을 고스란히 표현하는 이벤트인 것이다.

아이스하키 전설 그레츠키도 초대

28일 오전 8시 30분. 루체른 시내 호텔을 출발해 부옥스 공항으로 가는 대형 버스 안에는 금발부터 검은 머리칼까지 다양한 국적의 브라이틀링 VIP들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브라이틀링 스위스 본사의 초청을 받아 각각 미국, 벨기에 그리고 한국에서 날아온 사람들. 승객의 대부분은 남성이었는데 이 중에는 북미지역에서 브라이틀링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전설의 미국 아이스하키 선수 웨인 그레츠키 씨도 포함돼 있었다.

내비타이머 슈퍼컨스텔레이션’ 한정판 시계의 뒷면 모습.
내비타이머 슈퍼컨스텔레이션’ 한정판 시계의 뒷면 모습.
이날 루체른의 하늘은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르고 쾌청했다. 창밖으로는 알프스 산맥의 능선이 부드럽게 펼쳐졌다. 저 멀리 초록빛 언덕 위로는 하이디가 살고 있을 듯한 스위스풍의 뾰족 지붕 집들이 이어졌다. 멋진 비행을 보게 될 것이란 확신이 드는 날씨였다. 이런 생각에 한창 빠져 있는데 갑자기 버스 여기저기서 ‘와우!’ 하는 감탄사가 들려왔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버스가 비행장 입구로 들어서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멈춰 있는 왼쪽 편으로 고개를 돌리니 쭉 뻗은 활주로 위에 서 있는 10여 대의 비행기가 보였다.

하나씩 세어보니 집채만 한 제트기가 8대, 그보다 더 큰 여객기가 1대, 각기 모양이 다른 경비행기가

7대, 헬리콥터가 1대다. 그중에서도 공군 전투기를 꼭 빼닮은 제트기가 특히 멋졌다. 작렬하는 태양빛을 반사하는 모습이 마치 거대한 블랙 다이아몬드 같았다.


버스 안은 이미 참가자들의 흥분으로 달아올라 있었다. 마침내 차가 멈추자 브라이틀링 본사 직원은 버스 문을 열며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이제 장난감을 가지고 놀 시간입니다.” 총 17대의 이 거대한 비행기들이 오직 47명의 VIP를 위해 준비돼 있었던 것이다.

17대 비행기가 47명의 VIP를 위해


차에서 내리자 멋진 보잉 선글라스와 점프슈트 차림의 파일럿들이 일렬로 도열해 우리를 맞았다. 007 시리즈의 본드 걸처럼 섹시한 블랙슈트 차림의 여성도 있었다. 브라이틀링 비행팀에 소속된 곡예비행 전문가들이었다. 이렇게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던 스태프가 100여 명에 달했다.

참가자들이 주스를 마시며 목을 축이는 사이 브라이틀링 본사의 에어쇼 행사 총괄자 스테파노 알바티니 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잠시 뒤 브라이틀링 소속 제트팀의 에어쇼를 시작하겠습니다. 에어쇼가 끝난 뒤에는 곧바로 여러분이 직접 즐길 수 있는 체험 비행이 준비돼 있어요.”


그가 소개한 체험 비행이란 이를 테면 이런 것이다. 4000m 상공에서 자유낙하하는 ‘스카이다이빙’, 비행기 날개 위에 몸을 묶고 선 채 하늘을 나는 ‘윙 워커(wing walker)’, 중력의 8배 힘을 견디며 수직 상승과 낙하를 반복하는 제트기 동승, 360도 회전을 반복하는 곡예용 경비행기 동승 등…. 설명을 듣는 VIP들의 얼굴이 긴장과 기대로 달아올랐다.

일단 브라이틀링 제트팀의 에어쇼가 먼저였다. 브라이틀링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민간 제트팀을 직접 꾸려 운영하고 있다. 파일럿들은 전직 프랑스 공군 조종사 출신이 많은데, 모두 국제 에어쇼대회를 석권한 정예 멤버들이라고 했다.

파일럿들은 활주로에 일렬로 세워진 7대의 검정 제트기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독수리처럼 날카로운 입매를 가진 제트기들이 성난 야수처럼 엄청난 굉음을 내며 순식간에 창공으로 날아올랐다. 이들이 모두 알프스산맥 뒤로 사라진 지 1, 2분이 지났을까. 갑자기 산맥 저 너머에서 별 형태로 도열한 제트팀이 나타났다. 쇼의 시작이었다.

제트기들은 고개와 눈동자를 재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동선을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번개같이 움직였다. 가로에서 세로로, 하늘에서 땅으로, 마치 사무라이의 칼끝처럼 날카롭게 하늘을 가로질렀다. 제트기들은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하늘 위에 다양한 포메이션을 그려냈다. 이들의 비행 간격은 지폐 한 장 차이만큼이나 가까웠다. 금방이라도 부딪칠 듯 아슬아슬한 모습에 에어쇼를 지켜보는 참가자들은 연방 손에 난 땀을 닦아야 했다.

드디어 하늘을 날아

20분간 이어진 최대 시속 910km의 제트쇼는 참가자들의 ‘야성’을 제대로 자극했다. 미국에서 온 ‘플레이보이’지 기자는 “죽이는데(awesome)”를 연발하더니 순식간에 점프슈트로 갈아입고 활주로로 냅다 달렸다. 이제 참가자들이 비행기에 오를 차례였던 것이다.

체험 프로그램은 VIP들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고를 수 있었다. 나는 기대 반, 두려움 반을 안고 ‘윙 워커’에 도전했다. 윙 워커는 말 그대로 날개 위에 서서 하늘을 나는 비행이다. 윙 워커에 사용되는 비행기는 날개가 몸체 위아래에 하나씩 달린 1940년형 복엽기(複葉機)로, 그중 위쪽 날개 위로 솟은 쇠파이프 기둥에 몸을 묶으면 ‘비행 준비 완료’였다.

나는 질긴 안전띠와 육중한 철 고리로 양 어깨와 허리를 쇠기둥에 단단히 묶은 채 날개 위에 서 있었다. 잠시 뒤 이 비행기는 시속 300km의 속도로 2000m 하늘까지 날아오를 것이다. 비행기 날개 위에 서서 하늘을 난다는 건 대체 어떤 느낌일까. 이륙이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방망이질을 쳤다. 표정이 사라진 내 얼굴을 보다 못한 조종사 마틴이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 난 네 최고의 친구가 될 거니까.” 내 희미한 미소를 본 마틴이 드디어 비행기의 가속 기어를 잡아당겼다.

날개 위에 몸을 묶고 윙워커 비행 체험을 준비 중인 본보 임우선 기자. 이날 참가자들은 브라이틀링이 준비한 10여 종의 색다른 비행체험을 즐기며 브라이틀링의 브랜드 스토리를 몸으로 직접 경험했다. 브라이틀링 제공
날개 위에 몸을 묶고 윙워커 비행 체험을 준비 중인 본보 임우선 기자. 이날 참가자들은 브라이틀링이 준비한 10여 종의 색다른 비행
체험을 즐기며 브라이틀링의 브랜드 스토리를 몸으로 직접 경험했다. 브라이틀링 제공
비행기는 순식간에 속도를 올려 하늘로 날아올랐다. 순간 비명조차 지를 수 없는 강한 바람이 온몸을 때렸다. 거센 바람에 볼살이 고무찰흙처럼 일그러졌다. 숨쉬는 것도 쉽지 않아 나는 출산을 앞둔 임신부처럼 ‘후, 후’ 하고 짧은 숨을 내뱉어야 했다.

하지만 이런 고난도 잠시, 강풍 속 호흡에 적응하고 눈을 뜨자 눈 아래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다. 34도의 날씨에도 여전히 만년설을 간직한 하얀 알프스와 거대한 에메랄드빛 호수, 그리고 초록 언덕 위에서 풀을 뜯는 젖소들까지…. 비행기가 활주로에 내려온 뒤에도 나는 방금 전 본 그림을 잊을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이날 오후 또 한 번 스카이다이빙에 도전했다. 수송기를 타고 15분간 날아올라 구름조차 한참 아래에 있는 4000m 높이에 다다른 뒤 뛰어내렸다. 시속 200km 속도로 자유낙하 하는 40초 동안 심장이 콩알만 해지는 긴장감과 동시에 바람에 몸을 맡기는 황홀함을 느낄 수 있었다.

브라이틀링에 사로잡히다


VIP들은 이날 오후 4시까지 각자 2, 3개의 비행 체험을 했다. 이쯤 되면 참가자들은 자신들이 시계 회사의 초청으로 스위스에 왔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게 된다. 브라이틀링 역시 그런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행사 끝 무렵에서야 깨달은 사실이지만 실제 이날 행사장에서는 어디에서도 브라이틀링의 시계 제품을 볼 수 없었다. 심지어는 시계가 그려진 포스터 한 장 붙어있지 않았다. 브라이틀링은 그저 VIP들이 온몸으로 비행을 즐기길 원하는 것 같았다. 그것이 바로 브라이틀링을 다른 시계 브랜드와 차별화하는 핵심 정체성이기 때문이리라.

이날 에어쇼에서 브라이틀링은 시계의 ‘시’ 자도 꺼내지 않았지만 VIP들은 행사 후 브라이틀링이라는 브랜드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다. 며칠 뒤 그들이 돌아가야 하는 일상이 비록 고층빌딩으로 가득한 도심 속 성냥갑 같은 사무실일지라도, 그들은 손목에 있는 지름 40mm 남짓의 브라이틀링 시계를 들여다보며 오늘의 가슴 뜀을 기억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시계와 비행, 그 안에 남자의 모든 로망이 들어 있었다.

부옥스=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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