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史·哲의 향기]지도에 드러난 조선시대의 세계관 그들의 머릿속엔 아프리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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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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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계지도와 세계인식/오상학 지음/434쪽·3만 원·창비

서해를 따라 복잡하게 드나드는 등고선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일본보다도 더 크게 그려진 한반도의 모습. 그런가 하면 저 멀리에는 이탈리아 반도가 보인다. 아프리카 대륙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꽤 정확하다.

요즘 지도가 아닌 조선시대에 그려진 세계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다. 1402년에 제작된 이 지도는 조선, 일본, 유구,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와 인도, 아라비아,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까지도 포괄하고 있다. 당시 제작된 세계지도로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뛰어난 세계지도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아프리카와 유럽 대륙을 지도에 그려 넣을 수 있었을까. 그들은 세계를 어떻게 인식했을까. 제주대 지리학과 교수로 있는 고지도 전문가 오상학 교수가 조선시대 세계지도를 통해 그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을 통찰했다.

전통적인 세계관이자 마지막 순간까지 조선인들을 사로잡고 있던 인식은 중국 중심의 ‘직방세계관’이다. 직방세계는 일찍이 고대 중국에서 직방씨(職方氏)라는 관직을 두어 천하의 지도를 관장하도록 한 것에서 유래됐다. 중국과 그 주변의 조공국을 파악하기 위해 지도가 그려진 것이다.

15세기 조선 왕조가 개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 인식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국가가 주도하는 프로젝트로 세계지도를 제작한 것. 바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탄생이다. 지도를 그린 권근은 ‘지도와 서적을 보고 지역의 원근을 아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발문에서 밝히고 있다. 저자는 조선이 직접적인 접촉이 없었던 유럽, 아프리카 대륙을 그려 넣은 것은 경험적으로 확인 가능한 세계를 넘어선 개방적 인식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고 말한다. 비록 역사적으로 조선과 교류가 없지만 지도상에 상세히 표현함으로써 후일 나라를 다스리는 데 활용하겠다는 의지였다.

야심 찬 조선의 포부는 시대적 상황 때문에 빛을 보지 못했다. 1368년 명나라가 중원을 장악하면서 조선의 문화적 영토는 대폭 축소됐다. 원 제국 때 이뤄졌던 광범한 문화적 교류는 명과 일부 조공국의 교류로 바뀌었다. 실제 16세기에 들어서 제작된 ‘혼일역대국도강리지도’에선 아프리카, 유럽 등을 찾아볼 수 없다. 동쪽 해양에 그려졌던 많은 나라들도 일본과 유구를 제외하고 대부분 사라졌다. 조선시대의 세계 인식이 다시 축소된 것이다.

19세기에 들어 조선인들의 세계 인식은 다시 확장한다. 김정호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여지전도’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그리고 새롭게 발견된 오세아니아 대륙도 포함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전의 지도와는 달리 남극과 북극이라는 용어가 보이고 ‘차이서접미리견북계’라는 표시가 있다. 이는 서쪽으로 미리견(未利堅·미국)의 북쪽 경계와 접하고 있다는 뜻이다. 전통적인 인식과 달리 당시 조선인들이 지구가 둥근 것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이처럼 조선인들이 중국 중심의 고루한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었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일침을 가한다.

김진 기자 holyj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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