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핫 이슈]스타들의 만남과 헤어짐, 떠들썩했지만 잊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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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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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문화 대통령’이라고까지 불리며 사회적 아이콘으로 군림했던 가수 서태지의 이혼은 한국인에게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중문화사에서 대중에게 메가톤급 충격을 안겨 준 스타들의 만남과 헤어짐은 이전에도 종종 있었다.

○ 영화배우 김지미 & 최무룡(1962∼1969년)

1962년 11월. 당대 최고의 배우 김지미 씨는 일주일간을 유치장에서 살았다. 스타 최무룡 씨(작고)의 부인 강효실 씨(작고·배우 최민수 씨의 모친)가 김 씨를 간통 혐의로 고소해 구속수감된 것. 김 씨는 당시 우리나라 재판 사상 최대 위자료(330만 원)를 강 씨에게 물어줬다. 김 씨는 “약속 없이 저지른 일이기 때문에 장래를 장담 못해요”라고 했지만 두 사람은 1969년 헤어질 때까지 부부로 살았다. 그때 최 씨는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 영화배우 김지미 & 가수 나훈아(1976∼1982년)

도도한 여장부 김지미 씨는 1976년 또다시 세상을 놀라게 한다. 7년 아래(9년 연하라는 주장도 있다)인 톱가수 나훈아 씨와 전격적으로 약혼을 발표한 것이다. 김 씨로서는 세 번째 결혼. 남산 외교구락부에서 이례적으로 가진 약혼발표 기자회견에서 김 씨는 “노래도 좋지만 의지가 강한 남자여서 마음에 들었다”고 했고, 나 씨는 “진실된 사랑이기 때문에 떳떳이 여러분 앞에 나타났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은 1982년 5월 파경을 맞았다.

○ 영화감독 신상옥 & 영화배우 최은희(1959∼1976년) & 영화배우 오수미

1950, 60년대 한국 영화계를 호령했던 신상옥(작고) 최은희 커플은 1976년 8월 이혼했다. 신 씨와 신인 배우 오수미 씨(작고)의 밀애설이 사실로 드러난 데다 자녀까지 뒀다는 것이 밝혀지면서다. 최 씨는 “남편이 딴 여자에게서 두 아이를 낳았다는데 어떻게 모른 체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 3인의 운명은 격랑을 맞는다. 1978년 최 씨와 신 씨가 납북됐고 이후 오 씨는 사진작가 김중만 씨와 살면서 아이들을 키웠다. 1986년 북한을 탈출해 미국으로 간 최 씨와 신 씨는 재결합했다. 오 씨는 1992년 자동차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 가수 조용필 결혼(1984년)

‘서태지의 이혼을 놓고 왜 이렇게 난리냐’고 의아해하는 중장년층이 1980년대 가왕(歌王) 조용필 씨가 결혼했을 때를 되돌아본다면 지금의 떠들썩함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조 씨는 1984년 3월 1일 경기 남양주의 봉선사에서 양가 친지 10여 명만 참석한 가운데 극비 결혼식을 올렸다. 상대는 9년을 사귄 여성으로 그동안 결혼을 ‘한다, 안 한다’ 말이 많았다. 그러나 부인이 음독자살을 기도하는 등 순탄치만은 않던 결혼생활은 1988년 7월 끝이 났다.

○ 배우 최진실 & 야구선수 조성민(2000∼2004년)

2002년 12월 19일. 대통령 선거 당일인 이날 종합일간지 1면 톱기사는 ‘정몽준, 노무현 지지 철회’였지만 모든 스포츠신문의 1면은 ‘조성민 최진실 파경’이 장식했다. 1990년대 영화와 TV를 평정한 톱스타 최 씨(작고)와 이른바 ‘92학번 투수 4인방’ 중 가장 잘나간 연하남 조 씨의 결혼은 연예계 호사가들 사이에서 찬사와 더불어 우려 섞인 전망을 낳기도 했다. 2002년 별거에 들어간 두 사람은 2년 뒤 이혼했다. 최 씨는 2008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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