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 “경영의 첫발은 修身” 유학 배우는 CEO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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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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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기업 경영자 대거 입학

3월 31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 퇴계인문관에서 전현직 최고경영자들이 안병주 교수의 ‘유학과 정치사상’ 강의를 듣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3월 31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 퇴계인문관에서 전현직 최고경영자들이 안병주 교수의 ‘유학과 정치사상’ 강의를 듣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박노빈 전 에버랜드 사장, 배정충 전 삼성생명 부회장, 김영석 전 SK금융그룹 부회장, 김징완 삼성중공업 부회장, 전윤철 전 기획예산처 장관….

내로라하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요즘 ‘경세제민(經世濟民)’을 배우는 데 빠져 있다. 성균관대 유학대학원에는 지금까지 국내 유수의 대기업 CEO급 인사 15명이 입학했다. 4학기 동안 24학점 이상 이수하고 졸업 논문까지 써야 하는 만만치 않은 과정이지만 지난해 박 전 사장을 포함해 이중구 전 삼성테크윈 사장, 이우희 에스텍시스템 부회장, 이완근 신성홀딩스 회장 등 8명이 등록한 데 이어 올해도 배 전 부회장을 비롯해 고홍식 전 삼성토탈 사장, 송재용 산업은행 부행장 등 7명이 입학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 퇴계인문관의 강의실을 찾았다. 안병주 성균관대 유학과 명예교수의 ‘유학과 정치사상’ 강의가 한창이었다. “헤겔은 고대 동양의 정치를 제왕 하나만 자유로웠던 정치라 비판했지만, 유교 정치는 제왕 하나조차 자유롭지 못하게 했던 정치다.”

안 교수의 강의를 들으며 김영섭 LG CNS 부사장이 한자가 가득한 교재에서 해당 부분을 찾아 바쁘게 메모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김 부사장 외에도 수강생 23명 가운데 10여 명이 50대 이상의 남성이었다. 김재수 유학대학원 행정과장은 “수강생들이 매주 2시간짜리 과목 세 개를 듣는다. 신입생의 경우 필수과목을 포함해 네 과목을 들어야 한다. 그런데도 출석률이 좋다”고 말했다.

CEO나 장차관들이 실무 지식을 익히고 경력을 쌓기 위해 경영학석사(MBA) 과정이나 경영대학원에 진학하는 일은 흔하지만 유교경전과 예학, 서예학을 전문적으로 수학하는 유학대학원을 찾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들이 면접시험 때 밝힌 지원 동기는 다양하다. 유학대학원에 따르면 김영석 전 부회장은 ‘한학자였던 아버지가 상대 입학을 반대했을 때 유교경전에 나오는 경세제민을 배우는 곳이라고 설득해 허락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은혜를 갚는 셈으로 지원한다’고 밝혔다. 송재용 부행장은 ‘나이가 들수록 직장과 일상에서 느끼는 공허함이 커져 존재의 문제를 탐구하려 지원한다’고 말했다.

2009년 입학한 서정돈 전 성균관대 총장과 박재갑 국립중앙의료원장은 최근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박사과정에 등록했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대거 등록하자 대학도 지난해부터 개설과목을 늘리고 외부 교수를 대거 초빙했다.

LG CNS의 한 직원에 따르면 최근 김 부사장은 전체회의에서 한시(漢詩)를 읽어주며 직원들에게 인간 됨됨이가 반듯해야 함을 강조했다. 오석원 유학대학원장은 “경제의 어원이 ‘장자’에 나오는 경세제민이다. 경영은 물론이고 인사와 정치 등 모든 일의 근본은 유교가 강조하는 인간관계라는 점을 뒤늦게 깨닫고 (CEO들이) 오시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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