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성’은 유럽의 내재적 발전에 따른 결과물이 아니라 ‘세계의 산물’이다. 유럽은 아시아와 아메리카의 교역을 통해 경제발전과 지적발전의 유산을 종합해 ‘근대성’을 탄생시킨 것이다.”
동아시아사로 세계사를 다시 쓴 역작 ‘대분기(Great Divergence)-중국, 유럽 그리고 근대 세계 경제의 형성’(2000년)의 저자인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케네스 포머란츠 교수(53·사진)가 최근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지난주 이화여대 지구사연구소가 개최하는 ‘근대성의 창조 신화’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해 발표와 대담을 가졌다.
그는 ‘대분기’를 통해 유럽의 성공을 유럽의 내적인 자질로만 분석하는 기존 학설과 달리 여러 문명이 서로 만나고 교류하면서 형성됐다는 반유럽중심주의적인 주장을 펼침으로써 세계 역사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포머란츠 교수는 “유럽이 근대성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은 사실상 우연의 산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영국이 노천 탄광으로 자원을 손쉽게 획득할 수 있었고 아메리카로부터 금은을 쉽게 조달받을 수 있는 지리적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유럽은 우연히 근대로 진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근대적 특성 때문에 유럽이 번영했다는 기존 설명은 재고해야 한다는 말이다. 19세기 초까지 중국과 동아시아의 선진 지역은 유럽과 비교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이성과 합리성으로 대표되는 정신적인 근대성에 대해서도 “르네상스 운동과 종교 개혁이 유럽 중심적인 역사관 때문에 과장되고 신화화됐다”며 “이성과 합리성을 강조하던 시대에 마녀사냥과 연금술, 교황에 대한 숭배도 함께 있었다”고 지적했다. 반대로 아시아에서는 뉴턴이 그의 대표적인 저서 ‘프린키피아’에 인용할 만큼 뛰어난 과학적 유산들을 가지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거대사 분야를 만든 데이비드 크리스천 호주 매쿼리대 교수와 가진 학술대회 대담에서 그는 자신의 연구가 갖는 의미를 “비유럽 세계의 재정상화”로 표현했다. 동아시아 등 비유럽 지역을 ‘정상화’함으로써 유럽과 세계에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는 것이다.
그의 연구는 ‘비교’와 ‘연결’, ‘포괄성’을 도구로 한다. 국가가 아닌 지역단위의 비교를 통해 기존 국가 단위의 역사서술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 인도양이나 실크로드 같은 연결 및 상호작용의 공간에 관심을 갖고 화성인이 지구의 역사를 기술하는 듯한 포괄적인 시선을 유지하는 것이다.
국가를 분석 단위로 삼지 않고 근대화를 단순한 번영으로 보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그는 ‘세계체제론’을 만든 이매뉴얼 월러스틴 교수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근대 경제체제는 한 번 만들어지면 위치 변경이 어렵다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며 “월러스틴의 이론대로라면 한국이나 대만 태국의 예외적 발전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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