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구-침으로 긴장 훌훌… ‘대진표 전략’ 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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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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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기 바둑 金싹쓸이 비결은

《한국 바둑대표팀은 아시아경기 출전을 위해 광저우로 떠나기 전 “바둑 종목에 걸린 금메달 3개 중 2개를 따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대표팀 감독인 양재호 9단을 만나자 그는 심각하게 말했다. “사실 하나만 따도 다행이다”라고. 결국 중국과 결승에서 만날 텐데 여자 단체전은 확실히 열세고, 혼성복식은 중국이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점을 감안할 때 열세라는 것이었다. 그나마 남자 팀이 5 대 5의 대등한 승부를 벌일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아시아경기 직전에 열렸던 LG배 세계기왕전 8강에서 이창호 최철한 9단 등이 중국 기사에게 모두 패해 남자팀에 대한 불안도 가중됐다. 중국은 기세가 올랐고 한국은 꺾인 상황이었다.》

광저우 아시아경기에서 바둑 대표팀은 남녀 단체와 혼성복식에서 금메달 3개를 싹쓸이했다. 이세돌 9단(왼쪽)은 불면증으로 성적이 부진했지만 랭킹 1위인 그가 대국한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선수들에게 안정감을 줬다. 김윤영 2단(가운데) 등 한국 선수들은 머리에 침을 맞고 대국에 임해 효과를 봤다. 정다래(수영) 손연재(리듬체조) 등과 함께 아시아경기 5대 얼짱으로 꼽혔던 이슬아 초단은 금메달 2개를 땄다. 사진 제공 한국기원
광저우 아시아경기에서 바둑 대표팀은 남녀 단체와 혼성복식에서 금메달 3개를 싹쓸이했다. 이세돌 9단(왼쪽)은 불면증으로 성적이 부진했지만 랭킹 1위인 그가 대국한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선수들에게 안정감을 줬다. 김윤영 2단(가운데) 등 한국 선수들은 머리에 침을 맞고 대국에 임해 효과를 봤다. 정다래(수영) 손연재(리듬체조) 등과 함께 아시아경기 5대 얼짱으로 꼽혔던 이슬아 초단은 금메달 2개를 땄다. 사진 제공 한국기원
하지만 27일 인천공항으로 귀국한 양 9단과 대표팀은 영웅이었다. 바둑 금메달 3개를 싹쓸이했다. 박정환 8단과 이슬아 초단은 2관왕에 올랐다. 그 이유와 뒷얘기를 남자대표팀 코치였던 김승준 9단을 통해 들었다.

○ 비장의 포석

김 9단은 “한국 선수들이 활기차게 생활했다는 점이 큰 플러스가 됐다”고 말했다. 중국 팀이 자국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꼭 금메달을 따야겠다는 강박관념으로 경직됐던 것에 반해 한국 선수들은 족구를 하고 팀원끼리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등 선수촌 생활을 즐겼다는 것이다. 특히 혼성복식에서 첫 금메달을 딴 뒤 중국 선수들의 몸은 더욱 굳었다. 류싱 7단이 태국 선수와의 대결에서 바둑 수가 나는 걸 모르고 공배를 메우다 진 것도 이런 영향이었다.

선수들은 감독 코치의 지시 없이도 자발적으로 훈련했다. 남자 선수들은 오후 8시쯤 하루 일정이 끝나면 한 방에 모여 밤 12시가 될 때까지 최근 유행하는 포석을 집중 연구했다. 최고수들이 머리를 맞대고 공부하니 비장의 포석이 나왔다. 중국과의 결승에서 박 8단 등이 이렇게 연구한 포석으로 성공을 거뒀다. 이민진 5단은 결승 하루 전 루이나이웨이 9단의 상대로 내정되자 이창호 최철한 9단 등을 찾아다니며 대(對)루이 전략을 습득하기도 했다.

○ 침의 효과

선수들은 대표팀 주치의였던 한의사 정병훈 씨(인동한의원)의 공이 컸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대회 초반부터 긴장감 탓에 두통과 생리통을 심하게 앓았던 이슬아 초단은 머리에 침을 맞고 대국에 임했다. 침을 맞으면 통증에 시달리지 않았다는 것. 처음엔 2, 3개씩 꽂고 나왔으나 중국과의 결승 땐 10개가 넘는 침을 맞은 채 대국했다.

평소 머리에 열이 올라 집중력이 떨어졌던 이창호 9단도 대국 전 침을 맞고 열이 내려가는 효과를 봤다. 중국과의 결승 때는 이창호 이세돌 9단이 자청해서 이슬아 초단처럼 침을 꽂고 나왔다. 나머지 선수들도 대국 전에는 침을 맞고 마사지를 받아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했다.

○ 이세돌 9단의 부진은 불면증 탓?

이세돌 9단은 중국과의 예선과 결승, 일본과의 예선 등 3판의 대국에서 모두 졌다. 랭킹 1위의 자존심을 구긴 셈이다. 이 9단의 부진은 새벽녘에야 잠을 자는 습관 탓이었다. 대국 시작 시간은 오전 9시 반. 선수촌에서 대회장까지 가려면 오전 8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50분간 가야 했다. 따라서 오전 7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평소 오전 3시가 넘어 잠에 드는 이 9단은 일찍 잠을 청해도 잠이 오지 않았고, 수면 부족으로 컨디션이 좋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9단이 대국한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선수들이 안정감을 가졌기 때문에 선수에서 뺄 수 없었다고.

○ 작전의 승리

단체전은 대진을 어떻게 짜느냐가 또 하나의 변수였다. 남자 팀 6명의 순서는 이창호-강동윤-이세돌-조한승-박정환-최철한이었다. 이 중 한 명을 빼고 5명이 둔다. 원칙은 상황에 따라 강동윤 조한승 9단 중 한 명을 빼고, 이세돌 9단을 구리나 쿵제 9단과 대결시킨다는 것. 또 이세돌 9단은 역대 전적이 나쁜 셰허 9단을 피하도록 했다. 중국의 순서는 창하오-구리-류싱-쿵제-셰허-저우루이양이었다. 김승준 9단은 “우리가 원하던 대로 순서가 짜였다”고 말했다. 이창호 9단은 창하오 9단에게 최근 3연승 중이었다. 만약 중국이 이를 피해 창하오를 빼면 구리 9단과 두는데 이는 반반 승부로 본 것. 이세돌 9단은 예상대로 구리 쿵제 9단과 둘 가능성이 높았다. 나머지 박정환-셰허, 최철한-저우루이양의 대결은 52 대 48로 유리하다고 봤다. 이 대진 전략이 들어맞아 예선과 결승에서 4 대 1의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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