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연구재단의 인문한국(HK·Humanities Korea) 지원사업이 올해로 3년째를 맞는다. 2007년 출범한 HK사업은 학문후속세대(연구자) 양성, 안정적 연구환경 조성, 타 학문과의 학제 간 연구 등을 목표로 인문학 관련 연구소를 지원하는 제도. 대형 연구소의 경우 연간 최대 15억 원을 10년간 장기 지원한다. 2007년 처음 선정된 연구소 23곳은 3년간 1단계 사업을 마치고 그동안의 연구 과정과 성과 보고서를 한국연구재단에 제출했으며 한국연구재단은 10월 말 1단계 평가 결과를 내놓을 계획이다.
○ 연구원 1인당 연간평균 논문 수 2.41건
HK사업에는 지금까지 모두 55건의 과제가 선정됐다. 지원예산은 2007년 200억 원, 2008년 326억 원, 2009년 394억 원이었다. 이 중 대형 과제에 연간 10억∼15억 원, 중형에 5억∼8억 원, 소형에 3억 원 이내를 10년간 지원해 왔다. 정식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지 못했더라도 발전 가능성이 있는 곳은 유망연구소로 선정해 연간 1억 원을 3년간 지원했다.
HK사업 출범 당시 한국연구재단이 내세운 가장 큰 목표는 ‘연구소 내 연구주체 양성’이다. 강의를 하지 않도록 하거나 일주일에 HK연구교수는 6시간, HK교수는 3시간 이하로 제한해 연구에만 전념하는 연구 인력을 확보하도록 규정한 것이다. 2009년 기준 유망연구소를 제외한 각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는 인력은 모두 1151명. 이 중에서 연구보조원을 제외하고 비교적 안정적인 연구 환경을 제공받는 HK교수와 HK연구교수, 일반연구원은 685명으로 전체의 약 60%에 달한다.
인문한국연구소협의회에 따르면 HK연구소 소속 연구원들이 2007∼2010년 발표한 논문 수는 1인당 매년 평균 2.41건, 저서 또는 역서는 매년 평균 1.01건이다. 2009년 한 해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의 전임교수 1인당 논문 수가 각각 평균 0.68건, 0.73건, 0.77건이었던 것보다 높다.
HK사업 선정 연구소들은 고문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거나 총서를 발간해 연구기반을 마련하는 데도 기여해 왔다. 영남지역 고문서 데이터베이스 구축이나 한림대 한림과학원의 개념사 총서 발간 등이 대표적인 예다.
○ 과제 선정·평가 미흡…대학 비협조도 문제
그러나 이 같은 성과 한편으로는 과제 선정 방법을 두고 논란이 일거나 대학의 비협조로 본래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HK사업은 10년 뒤 현재 채용한 HK교수 중 약정된 인원을 연구소 소속 전임교수로 채용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연구 지속성을 배려하고 학제간 연구를 장려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일부 대학은 이 같은 전임교수 임용계획을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현재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인 서울지역 연구소의 김모 교수는 “연구소에 전임교수를 두는 것은 전에 없던 실험적 시도인 데다 대학 측이 인건비 부담이나 다른 연구소와의 형평성을 이유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편이다. 직함은 교수더라도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비정규 연구원과 다를 게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K연구소 선정은 크게 각 분야의 교수 등 전문가 집단이 참여하는 전공심사와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과학본부장, 역사철학단장, 어문학단장, 사무총장 등이 참여하는 종합심사로 진행된다. 전공심사에 참여했던 서울지역의 유모 교수는 “전공심사에서 여러 과제를 한꺼번에 심사하다 보니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평가하는 경우도 생긴다. 한국연구재단이 창의적인 과제를 선정하기에 적절한 평가진을 구성할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전공심사는 심사평과 결과를 공개하지만 종합심사 내용은 선정작업보다 예산배분 위주라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는 것도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객관적, 상대적 평가가 어려운 인문학의 특성을 고려해 질적 평가가 이뤄져야 하지만 이를 담보할 기준이나 평가방식이 여전히 미흡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는 “개인 연구나 학과 차원의 연구도 중요하지만 한국 고유의 담론과 학파가 생기기 위해서는 연구소 단위의 연구가 중요하다. 제도나 평가기준 등은 보완하되
HK사업을 통해 새로운 신분의 교수제도가 성립되는 만큼 장기적으로 지켜보며 인문학의 풍토와 체질을 바꿔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인문한국(HK) 지원사업 현황
―출범: 2007년 ―현황: 2007년 23과제, 2008년 10과제, 2009년 22과제 선정 및 지원. 총 55개 연구소 지원 중 ―예산: 2007년 200억 원, 2008년 326억 원, 2009년 394억 원, 2010년 394억 원 지원 ―성과: 2009년 기준 HK연구소 소속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은 총 2370편, 저서 역서는 101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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