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12세기전엔 동성애가 주류문화 왜 이성애만 자연스럽다고 하나”

동아일보 입력 2010-09-25 03:00수정 2010-09-25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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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역사/루이 조르주 탱 지음·이규현 옮김/312쪽·1만3000원/문학과지성사
동성애자들은 성적 소수자의 위치에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동성애는 ‘일반적이지 않은 것’으로 묘사된다. 심리학자나 의학자들이 동성애의 원인을 이모저모로 분석하기도 한다.

이런 현실에 맞서 저자는 “왜 우리는 이성애에 대해선 별로 말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동성애는 연구의 대상으로 보면서 이성애에 대해선 왜 그렇지 않은가, 왜 이성애는 무조건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는가라는 질문이다.

연구 대상으로 ‘이성애’를 보면 그동안 간과하고 있던 사실들이 보인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에 따르면 12세기까지만 해도 서양에서 이성애는 문화적 주류가 아니었다. 책은 주로 프랑스 문학작품을 토대로 논지를 풀어간다.

롤랑과 올리비에라는 두 남자가 등장하는 중세 서사시 ‘롤랑의 노래’에는 동성애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올리비에 경, 그대에게 숨기지 않겠소/내 신의를 온전히 약속하오/왕관을 쓴 강력한 카롤루스를 제외하고는/여자에게서 난 어떤 인간보다 더 그대를 사랑하오.’ 롤랑의 이런 고백에 올리비에도 화답한다. 그리고 ‘그들은 장비를 벗고/진지한 입맞춤을 기쁘게 주고받는다’는 대목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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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이성애의 역사를 추적한 저자는 이성애 역시 동성애와 마찬가지로 객관적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귀스트 로댕의 조각 ‘입맞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이런 모습은 12세기 초 궁정을 중심으로 하는 궁정사회가 자리 잡으면서 바뀌게 된다. 위대한 영웅 전설의 시대를 열어젖힌 남성의 우정은 서양에서 갈수록 수상히 여겨지고 비판받고 억압된 반면, 궁정 윤리의 출현은 남녀 커플의 문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14세기에 이르면 성당 기사들의 윤리에서 강조됐던 남자들의 우정은 힘을 유지하지 못한다. 대중이 보기에 서로 입맞춤하는 남자들은 남색자였고, 남색은 자연을 거스르는 범죄였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이성애 문화의 발전이 도처에서 감지된다. 16세기의 인문주의 비극은 옛 동성사회 문화를 지키기 위해 고상하고 영웅적인 주제를 다루면서 이성애 문화에 저항하지만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이성애 문화에 반대했던 또 다른 영역은 종교였다. 성직자들은 육욕에 치중하는 이성애 문화의 특성이 현세의 쾌락에 대한 욕망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며 금기시했다. 바울로는 독신이 결혼에 대해 우위에 있음을 단언했다. 그는 ‘고린도전서’에서 “남자는 여자와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과 과부들에게는 나처럼 그대로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자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십시오. 욕정에 불타는 것보다는 결혼하는 편이 낫습니다”라고 말했다. 남녀 간 결혼은 육욕을 진정시키기 위한 부득이한 수단으로만 활용하라는 의미였다.

어원학 지식을 활용해 우리 모두의 어머니 ‘이브’에 이미 라틴어로 ‘불행’을 뜻하는 ‘바이(vae)’, 즉 저주의 기호가 선험적으로 내포돼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리스도교는 이처럼 남성과 여성의 엄격한 분리를 옹호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성애적 사랑을 중시하는 궁정 문화의 발전은 성직자들 사이에 깊은 불안을 유발했다. 13세기 들어 동성애에서 이성애로 넘어가는 분위기는 더욱 강력해졌다. 이제 남자들 사이에 사랑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배제됐고, 남색은 심각한 범죄로 여겨졌다. 교회는 이성애를 비난하는 연극을 만들기도 했으나 대세를 뒤집을 수는 없었다.

12세기 초까지 이성애에 반대한 또 다른 한 축은 의사 집단이었다. 의사들은 깊은 열정을 동반하는 이성애를 사회병리학의 징후, 치료해야 할 유행병으로 이해했다. 의사 자크 페랑은 ‘상사병 또는 연애 우울증에 관해’라는 책에서 ‘자신의 광기가 질병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바람직하지 않은 건강 상태의 원인인 사랑을 예찬하는 데에 온갖 노력을 다하는 사람들’을 비판했다. 이처럼 사랑을 질병으로 보는 시각은 르네상스시대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이성애 문화에 맞서는 의학 담론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위축됐다. 어느 순간부터 이성애를 문제 삼는 분위기는 사라졌고 이성애는 이제 ‘정상적인 것’으로 자리 잡았다. 과학적 탐구의 무게중심은 이제 ‘같은 성’에 끌리는 원인을 찾는 쪽으로 이동했다.

프랑스 오를레앙대에서 문학을 가르치며 성소수자 차별 반대 운동을 펼쳐온 저자는 “여성 연구가 남성 연구의 장을, 흑인 연구가 백인 연구의 장을 열었던 적이 있는데 마찬가지로 이제는 게이 및 레즈비언 연구가 이성애 연구로의 길을 열어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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