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유전병은 살아남기 위한 ‘인간의 선택’

동아일보 입력 2010-09-18 03:00수정 2010-09-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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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야 산다/샤론 모알렘 지음·김소영 옮김/312쪽·1만3000원/김영사
미국 신경유전학 및 진화의학 박사인 저자는 어릴 적 알츠하이머병으로 할아버지가 세상을 뜨고, 할아버지가 앓고 있던 유전병 혈색소침착증(혈색증)이 자신에게 나타나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자손에게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유전자를 물려줘야 하는데 왜 질병이 유전되는지. 진화의 산물이라면 질병은 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궁금증에 도서관 서적을 뒤적이던 소년은 훗날 혈색증과 특정 유형의 알츠하이머병의 연관관계를 밝히는 학자가 돼 연구를 지속했다.

비밀은 유전자에 있었다. 조상이 변화하는 자연환경이나 사회적 환경, 역병 등을 겪으며 생존을 위해 싸울 때 발현된 돌연변이가 유전자에 고스란히 담긴 것이다. 저자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패혈증과 고혈압, 당뇨 등은 과거 생존을 위해 선택한 ‘진화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최근 없애야 할 존재처럼 인식되는 콜레스테롤은 사실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하다. 햇빛을 받으면 콜레스테롤이 비타민D로 변환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외선에 지나치게 노출될 경우 엽산이 파괴될 것을 막기 위해 아프리카인들의 피부는 검어졌다. 검은 피부로 자외선이 차단되는 대신 콜레스테롤을 더 많이 생산하게 돼 적은 자외선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각자 처한 환경에 따라 맞춤형 진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그러나 한 세대에서 진화적 해결책이었던 것이 다른 세대에서는 문제가 되기도 한다. 고혈압은 다른 미국인들에 비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 두 배 이상 높게 발생한다. 저자는 역사를 거슬러가 그 원인을 찾았다. 아프리카인들이 노예상에 의해 미국에 끌려올 때 오랜 시간 굶주림에 방치되다 보니 염분을 많이 유지해 탈수를 면한 사람이 살아서 미국에 올 가능성이 높았다. 이 유전자가 그대로 남아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염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고혈압이 많이 발생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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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에는 조상들이 겪은 역병과 환경 변화가 기억돼 있다. 저자는 당뇨병, 혈색증 같은 질병은 과거 우리가 생존을 위해 선택한 진화의 산물이라고 설명하며 앞으로는 특정 유전자의 스위치를 끄고 켜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당뇨병 역시 인류가 빙하기에 적응하고 살아남은 결과라고 봤다. 혈액에 당이 쌓이고 자주 소변을 봐 혈액농도가 높아지면 어는점이 낮아져 동사(凍死)를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온도가 내려가면 손가락과 발가락에 있던 혈액이 몸통으로 이동하는 것도 ‘설령 추위로 손가락을 잃더라도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필연적 선택’이라고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유전자는 운명이 아니라 지나간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전암호에 따라 일정 부분 영향을 받지만 부모님과 성장 환경, 개인의 선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후생유전학 범위의 연구에 따르면 비만 유전자를 가진 부모라도 저열량 음식을 섭취하고 적당한 운동을 병행하면 아이에게 전달된 비만 유전자의 스위치가 꺼질 수 있다. 진화는 아직도 계속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질병은 재앙이 아니라 축복”이라며 유전병은 살아남기 위해 우리가 자초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앞으로 어떤 환경에서 유전자가 만들어졌는지, 어떤 방법으로 특정 유전자의 스위치를 끄고 켤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연구를 통해 더 건강하게 장수하는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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