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이야기’ 20선]<20>한국해양사

동아일보 입력 2010-09-10 03:00수정 2010-09-1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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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해양사/윤명철 지음/학연문화사 《“해로를 이용하여 동일한 문화를 교류하고 교섭할 때에는 모두 동일한 해양을 공유한다. 그런데 바다에는 선을 그을 수가 없고, 담장을 쌓을 수도 없다. 그래서 국경이 분명하지 않다. 다른 나라로 가고자 할 때에도 육지처럼 인접한 국가의 영토를 반드시 통과해야 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정치적으로 제약이 훨씬 덜하고 교류가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광개토대왕은 바다까지 점령했다

저자는 우리 역사와 동아시아의 질서를 육지 위주의 영토 확장으로 파악하는 관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한반도’라는 지리적인 개념을 역사적인 개념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면서 한반도의 대륙과 해양을 동시에 아우르는 거시적인 관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국해양사’는 해양을 코드로 우리 역사를 읽은 연구서다. 먼저 해양문화의 특성을 정리하고 선사시대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해양활동을 정리했다. 해양세력은 중앙정부가 토벌하려고 하면 바다 멀리 도망을 가면 되기 때문에 통제가 용이하지 않다는 것, 해로의 요충지를 무대로 활약하기 때문에 교역을 하면서 부를 축적할 수 있다는 것 등 해양민의 특성을 명쾌하게 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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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서 발견되는 패총유적을 통해 선사시대에도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생활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해양활동의 중요성을 간파한 인물은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 4국 중에서도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두드러진다. 동아시아의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능동적으로 대처해 고구려의 국제 위상을 크게 향상시킨 그는 특히 해양을 국제질서 변화의 힘으로 활용했다. 광개토대왕의 남진정책 가운데서도 요동만을 장악한 것은 결정적이었다. 고구려가 그로 인해 요동반도와 서한만, 대동강 하구, 그리고 경기만을 잇는 황해중부 이북의 동안 해상로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통일신라 장보고의 등장은 의미가 크다. 그가 본거지를 차린 청해진은 지리학적 위치상 그 시대 가장 중요한 도시 가운데 하나가 될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청해진은 지리적으로 남북연근해항로가 통과하는 곳이고, 한반도에서는 남해와 서해가 만나는 지점이고, 중국의 강남 지역에서 한반도로 북상하는 항로가 만나는 곳이었다. 따라서 그 시대 한국, 중국, 일본을 연결하는 항로가 경유하는 중요한 항구도시가 되었으며, 주변에 섬이 많고 조류가 복잡해 외부 세력의 공격을 방어하는 데 유리한 군사도시가 되기도 했다. 이 청해진을 든든한 지역적 배경으로 삼아 장보고는 무장력과 해양력을 바탕으로 상권을 장악하면서 신라인의 저력을 확인시켰다.

저자가 무게를 싣는 또 하나의 시기는 고려시대다. 고려는 우리 역사에서 해양세력이 주도해서 세운 나라이기 때문이다. 고려를 세운 왕건의 집안은 교역권을 장악하고 상업을 이용해서 세력을 키운 가문이었다. 고려는 해양활동 능력이라는 힘을 군사문제는 물론 주변국과의 활발한 외교, 국제교역 등에 이용해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문화적으로 성숙했다. 백성들의 삶 역시 조운, 교역 등 해양과 깊은 관련을 맺었다.

조선의 운명은 기구하다. 옥포해전, 한산도해전, 명량해전, 노량해전 등 전쟁 중 주목할 만한 해양전을 통해 확인되는 것처럼 해양을 뛰어나게 잘 이용했으나 근대화의 문턱에 서서 해양정책을 제대로 추진하지 않음으로써 쇠락하게 된다. 저자는 ‘해양’으로 해석하는 한국사가 한국이라는 영토의 경계에 갇힌 역사가 아니라 동아시아 주변 국가와 관계를 맺어가면서 이어져 온 역사임을 이 책을 통해 보여준다. 또한 우리 역사의 국제 관계를 정치와 군사 관계뿐 아니라 문화와 경제 관계 등으로까지 폭을 넓혀서 보여주었다는 데서 의미가 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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