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부처’ 슬럼프 탈출엔 결혼이 묘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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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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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쿵제 가정 꾸린뒤 승승장구
“심리적 안정으로 성적 좋아질 것”
“10월 결혼” 발표에 바둑계 기대감

결혼이 프로기사의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될까. 이창호 9단이 올 10월 결혼한다고 발표하면서 부인의 내조로 그동안의 부진을 씻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창호 이도윤 커플, 이세돌 김현진 부부와 딸 혜림, 쿵제 천샤오윈 부부(위부터 시계 반대방향). 사진 제공 사이버오로
결혼이 프로기사의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될까. 이창호 9단이 올 10월 결혼한다고 발표하면서 부인의 내조로 그동안의 부진을 씻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창호 이도윤 커플, 이세돌 김현진 부부와 딸 혜림, 쿵제 천샤오윈 부부(위부터 시계 반대방향). 사진 제공 사이버오로
“그 사람과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열한 살이나 어리지만 나보다 어른스러울 때도 있다.”

이창호 9단은 최근 결혼 기자간담회에서 예비 신부인 이도윤 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씨도 이 9단의 말에 화답하듯 “이 국수님을 돕기 위해 요리 일본어 운전 등을 배우겠다”고 말했다. 이 9단을 위해 할 수 있는 내조는 다하겠다는 뜻이었다.

이 소식을 접한 바둑계는 이 씨의 내조가 이 9단의 부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감추지 않고 있다. 이 9단은 예민하고 대중 앞에 서는 것을 꺼려 그동안 번거롭고 불편한 일을 적절히 처리해주는 ‘매니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결혼을 통해 이 9단이 편안한 마음과 안정된 생활을 갖게 된다면 성적도 오를 것이라고 보고 있다.

승부에 대한 중압감이 큰 프로기사들에게 결혼은 좋은 보약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결혼이 기사 생활에 전환점을 가져온 대표적 사례로는 중국 쿵제(孔杰) 9단을 들 수 있다.

쿵제 9단이 후지쓰배에서 우승하고 6일 베이징 공항으로 귀국하던 날 그의 부인 천샤오윈 씨가 마중 나왔다. 그가 우승할 때마다 보는 풍경이다.

중국에선 천 씨가 “쿵제를 성숙시켰다”고 표현한다. 쿵제 9단은 침착하고 단단한 기풍으로 한때 중국 랭킹 1위도 차지한 적이 있지만 세계대회에선 힘을 쓰지 못했다. 특히 결정적인 대국에서 우세한 바둑을 패한 경우가 많아 ‘새가슴’이라는 오명을 듣기도 했다.

쿵제 9단이 천 씨와 사귀기 시작한 건 2008년 말부터. 2006년 항저우(杭州) 지역 슈퍼걸 선발대회에 출전했던 천 씨는 아마 5단의 실력으로 바둑계 인사들과 교류가 많았다.

쿵제 9단은 천 씨와 사귀기 시작한 뒤 놀라운 약진을 거듭했다. 2009년 TV아시아속기선수권전과 삼성화재배에서 우승했다. 올해 들어 중국 랭킹 1위에 복귀한 뒤 LG배와 TV아시아속기전을 따냈고 이달엔 후지쓰배마저 거머쥐었다. 특히 후지쓰배의 경우 역대 전적에서 크게 밀리던 이세돌 9단에게 완승을 거뒀다. 그의 부활에 반신반의하던 사람들도 ‘세계 1인자’라고 부르는 데 인색하지 않다.

쿵제 9단과 천 씨는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지만 삼성화재배 우승 후 혼인 신고를 해 법적 부부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 씨는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매일 쿵제 9단에게만 신경 쓴다. 그가 대국에서 패해 기분이 가라앉으면 위로해 주고, 바둑이 아닌 다른 일에서 기쁨을 찾게 해준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2006년 결혼한 이세돌 9단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그 전에도 성적이 좋았지만 2007년 이후 절정의 기량을 보여줬다. 그는 올해 초 이창호 9단의 바둑을 해설하며 “결혼해야 안정된다”고 공개적으로 조언을 하기도 했다.

최철한 9단도 2007년까지 극심한 슬럼프를 겪은 뒤 지난해부터 다시 성적을 내고 있는 것에 대해 여자친구(윤지희 2단) 덕분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창하오 9단이나 뤄시허 9단도 결혼 덕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김승준 9단은 “프로기사들이 승패의 부담을 혼자 지기 때문에 주위에 따뜻한 반려자가 있으면 심리적으로 위안이 된다”며 “특히 승부의 세계를 잘 이해하는 배우자라면 더욱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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