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본 이 책]“소련처럼 해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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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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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제국’ 美에 경고

◇콜로서스/니알 퍼거슨 지음·김일영, 강규형 옮김/564쪽·2만8500원·21세기북스

필자가 세계 금융사의 대석학인 퍼거슨을 처음 알게 된 때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세계가 경제난을 겪던 작년 봄이었다. 그가 세계 금융 연구에만 그치지 않고 향후 세계질서의 변화, 특히 미국의 장래에 관해 독특한 주장을 내놓아 필자는 물론이고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다. 이 책은 그가 21세기에도 미국이 콜로서스(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거대한 태양신 헬리오스 청동상으로 흔히 강대국을 비유)의 지위를 향유할 것인지를 설파한 것이다.

퍼거슨은 미국은 제국이 아니라는 기존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미국은 건국 이래 계속 제국이었으며, 특히 제국이 나쁜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미국이 건국 과정에서 북미대륙의 땅을 얼마나 많이 다른 나라로부터 사들였거나 정복하였는지를 자세히 설명한다. 또 퍼거슨은 인류 역사상에 존재했던 제국의 다양한 지배 형태를 제시하면서 미국은 과거와 달리 “자유주의 제국”이기 때문에 미국과 피지배국에 모두 이익을 가져다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퍼거슨은 미국의 자유주의 제국 프로젝트가 성공한 사례로 독일 일본 한국 등을 들고 있다. 그런데 그의 주장에서 가장 논쟁적인 사안은 미국이 제국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게 다른 대안보다 더 낫다는 것이다. 소련의 제국주의적 야망이 사라진 21세기에 만약 미국마저 제국을 포기해 무극의 국제사회가 등장하는 경우 더 많은 충돌과 격변이 일어날 우려가 크다고 보았다. 더욱이 앞으로 중국이나 유럽연합이 미국을 대체하는 제국이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미 제국이 필요한 21세기에 미국은 재정적자, 문화적 제약 등으로 인해 제국의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이 작다고 판단한다. 미국민들 간에는 다른 나라를 지배하기 위해 태어난 나라가 아니라 다른 나라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국가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에 미국이 다른 나라에 개입하더라도 빨리 철수해야 한다는 국민 여론으로 소기의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자유주의 제국 모델은 경제개방은 물론이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경제발전을 위한 제도적 기반, 즉 대의제 정부를 수립하는 게 성공의 열쇠인데, 미국민들은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장기적인 개입을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노후보장과 건강보험을 비롯한 복지예산으로 인한 방만한 재정적자가 미국이 제국의 역할을 하는 데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았다. 퍼거슨의 결론은 미국이 제국이지만 미국민들은 제국에 걸맞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장래가 밝지 않다는 것이다. 정복보다 소비에 더 관심이 많고, 다른 나라 땅에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것보다 자신들의 수명을 연장하는 데 바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미 제국이 소련처럼 어느 날 갑자기 해체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들은 퍼거슨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나? 이 책은 2004년에 출판된 것을 최근에 번역했기 때문에 그 이후의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사태는 물론이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다루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최근의 정치경제적 상황에 비추어 퍼거슨의 주장을 다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퍼거슨의 말대로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재정적자는 더욱 쌓여가고 있다. 게다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전쟁이 예상과 달리 조기에 종결되지 못해 미국민과 미군의 피로가 심각하게 누적되고 있다. 비록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라크 철군 계획을 발표했으나 아프가니스탄의 경우 조기 종결을 명분으로 8만 명의 미군을 증파하는 바람에 부담이 커졌다.

결국 퍼거슨의 예상대로 미 제국이 종말을 향해 가고 있는가? 필자는 퍼거슨의 결론이 너무 성급하다고 본다. 그 이유는 1970년대에 미국 쇠퇴론, ‘Japan No. 1’이 나왔으나 미국이 신자유주의 노선을 채택한 뒤 반등에 성공한 것처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이 다시 일어서려면 금융위기의 장본인이었던 월가가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 미국이 새로운 자본주의 발전 모델을 제시하여 미국민과 다른 나라의 신뢰를 회복해야 제국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김용호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용호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오바마 대통령은 건강보험, 자동차산업, 신재생에너지 산업, 금융산업, 교육을 포함한 경제사회 분야별 개혁을 추진하고 있으나 아직 이러한 개혁이 성공했을 때 미국 자본주의가 새롭게 발전할 수 있는 총론적인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미국이 이처럼 중대한 기로에 서 있지만 미국 의회와 언론이 양극화돼 대안이 나오지 않고 있다. 공화당은 “노(No)”만 외치는 가운데 정치권을 통째로 질타하는 공화당 성향의 티파티(Tea Party) 운동이 번지고 있다. 이번 중간선거에서 오바마의 리더십이 타격을 입게 되면 미국은 더욱 어려운 상황에 빠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퍼거슨의 예측이 적중하는 상황이 올지, 1980년대처럼 미국이 반등의 기회를 잡을지 두고 볼 일이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미국의 장래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상황에서 이 책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하나 덧붙인다면 역자들의 번역 후기가 없어 매우 아쉬웠다. 이 책의 공동번역자인 김일영 교수가 일찍 타계했기 때문에 더욱 안타깝다.

김용호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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