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하하누나’ 하쥬리 클럽콘서트 ‘우리가 사랑했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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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28일 14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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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도, 콘서트홀도 아닌 클럽에서의 공연은 처음인 터라 은근히 기대가 컸다. 홍대 앞 상상마당 인근의 클럽 오뙤르.

좁은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아담하고, 어딘지 친근감이 드는 공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오늘 공연의 주인공인 하쥬리 교수(명지대 예술종합원 기독실용음악과)가 기자를 알아보고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 공연 전 연주자와 마주치는 일은 극히 드문데, 역시 클럽 공연의 재미다. 관객이 무대 위의 주인공을 보듯, 그들도 관객을 살필 수 있는 것이다. 꽤나 공평하지 않은가.

가수이자 예능인 하하의 친 누나인 하교수는 버클리음대 출신으로 4월에 피아노 연주음반 ‘순수(unsophisticated)’를 냈다. 오늘 공연에서는 음반 수록곡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짰다.

잠시 후 하교수, 하하의 어머니 김옥정 여사가 해바라기 화분을 들고 나타나 피아노 옆에 놓고는 잠시 딸과 귀엣말을 나눈다.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 휴대폰을 꺼달라는 공지도 없이 곧바로 연주가 시작됐다.

‘우선 들어보세요’라고 말하는 듯하다. 드문드문 객석을 차지한(잠시 후에는 만석이 됐다) 관객들이 어둠 속에서 눈을 빛내며 피아노의 울림을 듣는다. 따뜻하고 풍성한 피아노 음이 클럽 구석구석까지 고르게 손길을 뻗친다.

비로소 느긋해진다. 음악을 들으러 와 있다는, 온전한 존재감에 지배당한다. 저절로 눈이 감긴다.

“뉴에이지보다 재즈에 가깝다”라고 사전에 하교수가 귀띔을 해주었지만, 첫 곡 ‘우리가 사랑했던 날들’은 전형적인 뉴에이지처럼 평화롭게 들렸다. 그녀의 ‘사랑했던 날들’이 지극히 평화로웠던 까닭일 것이다.

하교수의 곡들은 기교적으로 난해한 편은 아니다. 대신 한 음 한 음 음색의 변화가 팔레트 위의 물감처럼 다채롭다. 귀가 아닌 마음을 잡아끄는 곡들로, 듣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앞에 영상이 펼쳐진다.

그런데 그 영상이 선명하지 않다. 비 내리는 창문 너머로 희미하게 비추이는 정원같은 이미지이다.

최근 발매된 정재형의 음반 ‘르 쁘띠 피아노’의 곡들이 세부적인 이미지 묘사에 뛰어났다면, 하교수의 곡은 악센트가 강하고, 한 곡 안에서도 다수의 감정이 교차하는 에너지를 품고 있다. 분노와 용서,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면서, 단단한 밧줄처럼 얽힌다.

봄 햇살 속에 조용히 눈이 내리는, 이율배반적 판타지이다.

음반 수록곡인 ‘분홍빛 하늘이 춤추다’, ‘꿈에서 만나다’, 영화 ‘러브 어페어’의 테마곡이 차례로 연주됐다. 어느 틈에 객석이 다 메워졌다. 클럽 안에 후끈 열기가 돈다.

후반부에는 깜짝 게스트가 등장했다. 하교수의 동생 하하와 방송인 김제동이 무대로 올라왔다.
“자다가 나와 몰골이 추레한 점을 이해해 달라”고 하더니 김제동이 통기타를 잡고 고 김광석의 ‘일어나’를 열창했다. 하하도 이문세의 ‘소녀’와 자신의 신곡 ‘술병’을 노래했다.

하교수의 ‘어쩌면 사랑일까’를 끝으로 공연의 막이 내렸다. 그리고는 연주자와 관객이 모두 함께 몰려가 떡볶이 뒤풀이를 했다. 홍대 거리 노천 테이블에 둘러서서 먹는 떡볶이와 어묵의 맛이란!

하교수는 “오늘같은 연주회를 자주 열고 싶다”라고 했다. 더없이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그녀가 작곡하고 연주한 ‘우리가 사랑했던 날들’이란, 바로 이런 시간들이 켜켜이 쌓인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모두들 신나게 ‘와아’ 떠들어가며 떡볶이를 먹고, 음악과 일상을 이야기했다. 연주회의 끝은 더없이 즐겁고 달콤했다. 밤이 천천히 흘러갔다.

스포츠동아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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